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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티어하임, 반려동물의 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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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0-05-18 09:49
수정 2020-05-20 16:53

[애니멀피플] 르포/동물들 입소 마친 카라 ‘더봄센터’
산책길로 옥상까지, 사람과 동물 자연스레 어울리는 구조
오는 10월 정식 개관…“결국 모든 동물이 이곳을 떠났으면”

교통사고로 뒷자리에 장애를 얻게 된 ‘자람이’는 더봄센터에서 휠체어 생활을 하고 있다. 동물권행동 카라 제공

“한 마리의 손도 놓치지 않고 다 데려 오겠다 했었거든요.”

5월14일은 ‘약속의 날’이었다. 이날은 지난해 개농장과 애니멀호더에게서 구조된 개 29마리가 동물권행동 카라가 최근 건립한 반려동물복지센터 ‘카라 더봄센터’로 이동하는 날이었다. 이사는 오전 일찍부터 시작됐다. 개들이 구조뒤 1년 여간을 보낸 경기 고양시 위탁처에서 파주시 더봄센터까지는 차로 40여 분 거리였지만, 활동가들의 움직임은 부산스러웠다. “아침부터 굶었을 개들에게 빨리 아점이라도 챙겨주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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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쟁이 ‘로다’도 새 보금자리로

이날 이동하는 29마리의 개들은 한 마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중대형견들이었다. 지난해 3월 전남 보성군 벌교읍 개농장에서 구조된 개들과 사설보호소였지만 애니멀호딩 학대를 당했던 ‘희망이네’ 개들, 하남 개도살장에서 구조된 개들까지, 대부분이 진도 믹스견들이었다.

겁을 먹어 켄넬에 들어가길 꺼려하는 개도 보였지만 대부분은 큰 말썽 없이 활동가들의 손에 몸을 맡겼다. 평소 산책가듯 나와서 ‘쿨하게’ 이동장으로 옮겨 앉는 친구도 눈에 띄었다.

5월14일 오전 경기 고양시 위탁처에서 파주시 카라 더봄센터로 입소하는 구조견들. 동물권행동 카라 제공

1시간 여만에 트럭 화물칸에 이동장이 차곡히 쌓였다. 카라 활동가들은 개들의 이름을 하나씩 확인한 뒤, 안전을 위해 켄넬 문을 한 번 더 고정했다. 사람이 반가운지 좁은 이동장 안에 앉아서도 코를 갖다대는 개들이 많았지만, 구석에 납작 엎드려 유난히 벌벌 떨고 있는 개가 있었다. 벌교 개농장에서 구조된 ‘로다’였다.

개농장에서 구조된 개들은 거의가 상태가 좋지 못했지만 로다는 유난히 소심하고 겁이 많은 개였다. 구조 당시 심각한 피부염을 앓고 있었고, 사람 손을 두려워했다. 뜬장에서 벗어나 8시간을 달려 도착한 위탁처에서도 로다는 늘 구석자리에만 궁둥이를 붙였다. 4개월 만에 산책에 성공하기도 했지만, 로다는 여전히 겁이 많고 사람이 무섭다.

이날 위탁처에서 더봄센터에 입소한 벌교 개농장 구조견 ‘서미’가 테라스에서 옆방 개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김지숙 기자

전진경 카라 이사는 이날 이동한 개체들을 “오랜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이라고 표현했다. 사회화가 특히 어려운 개체들이 마지막으로 더봄센터로 입소하는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백구 혼종들은 굉장히 영리해요. 그런데 열악한 환경에서 사람에게 학대받다 보니, 적대적으로 변한 거죠. 사람이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에요.” 그는 이 개들을 최후까지 포기하지 않고, 다시 반려동물로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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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외실 구분된 방에 테라스도

오전 11시, 1200여 평 부지 위에 지어진 더봄센터의 널찍한 앞마당에 이동장들이 내려졌다. 열댓 명의 활동가들이 개들을 맞았다. 멀미 탓에 켄넬 안을 토사물이나 대소변으로 더럽힌 개들도 있었지만 대체로 안정된 모습이었다. 입소는 신속하게 이뤄졌다. 개체 크기와 성격에 맞춰 정해진 ‘짝꿍’들이 미리 배정된 견사로 차례로 들어갔다.

견사 테라스 옆으로는 자작나무 산책길이 조성되어 있었다. 김지숙 기자

지난 4월 초 입소가 시작된 더봄센터에는 현재 130여 마리의 동물들이 살고 있다. 1층과 2층 견사에는 110여 마리의 개가, 2층 묘사에는 고양이 20여 마리가 지내고 있다. 이날 입소한 29마리 중대형견들은 1층 견사에서 지내게 된다. 방 한 칸을 두 마리의 개가 나눠쓰고 있었다. 견사는 내실과 외실로 구분되어 있었다. 내실은 평소 개들이 쉬고 잠들 수 있는 방이었고, 외실은 펜스 사이로 바깥 구경을 하며 바람을 쐴 수 있는 테라스 같은 곳이었다.

긴 복도를 따라 늘어선 견사는 한눈에도 깔끔하고 정돈돼 보였다. 기존 동물보호소라는 단어가 주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칸마다 물청소가 가능한 타일과 배수구가 설치돼 있고, 유리문 바깥으로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자작나무 산책길이 보였다. 문 마다 개체 이름과 성격, 정보가 단정히 적힌 카드가 달려있었다.

목 매달린 어미개와 함께 구조된 개 ‘디아나’가 더봄센터에서 산책을 하고 있다. 동물권행동 카라 제공

새 방을 배정받은 개들은 낯설어하면서도 연신 새 공간을 탐색하기 바빴다. 성격 좋은 진도 믹스견 ‘트루’와 ‘러브’는 이전 시설보다 사람이 많은 것이 좋은지 연신 유리문으로 다가와 꼬리를 흔들었다. 얼마 전부터 더봄센터에서 지내고 있는 ‘디아나’도 외실에 나와 사람들을 반겼다. 목 매달린 어미개 곁에서 살아남은 구조 사연을 떠올리면 놀랄 만큼 편안하고 밝은 모습이었다.(▷관련기사: 이름 없이 죽어간 ‘어미 누렁이’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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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타고 옥상정원으로

더봄센터에는 동물과 사람에 대한 배려심이 묻어나는 공간이 많았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시간을 실내에서 보내게 될 동물을 위한 이동과 산책을 고려한 시설들이 돋보였다. 2층 건물의 옥상은 개도, 사람도 언제든 올라가 산책을 할 수 있는 정원으로 꾸며졌고, 건물 가운데 정원에선 산책을 나온 동물들이 언제든 자연스럽게 봉사자나 활동가들과 만날 수 있는 구조였다.

더봄센터 건물 가운데는 중정으로 이루어져 동물들이 산책을 하며 옥상으로 올라갈 수 있는 구조로 지어졌다. 김지숙 기자

“센터를 방문한 사람들이 동물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공간이 되었으면 했어요.” 전진경 카라 이사는 제일 중점을 둔 부분이 ‘봉사를 통한 인식개선’이라고 말했다.

“언제든지 동물들을 만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곳. 동물에게 도움을 줄 뿐 아니라, 사람도 치유를 받고 행복해질 수 있는 공간이 되는 거죠.” 그는 이런 긍정적인 경험들이 전파력을 갖게 되면, 결국 동물을 사지 않고 입양하는 문화가 자리잡을 수 있을 거라고 설명했다.

중앙정원에서 옥상까지 긴 경사길이 마련되어 있는 점도 눈에 띄었다. 계단을 거치지 않고 옥상으로 이동이 가능하도록 만든 것이다. “장애인이나 장애동물도 쉽게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더봄센터에서 지내고 있는 진도믹스견 ‘자람이’는 이 길을 이용해 센터 이곳저곳을 다닐 수 있었다. 자람이는 교통사고 뒤 방치된 채 구조됐다. 더이상 뒷다리를 쓸 수 없게 된 자람이는 반려견용 휠체어를 사용한다. 네 다리로 걸을 수 없지만, 경사길과 휠체어 덕에 다시 산책하러 다닐 수 있게 됐다.

견사 테라스에서 봄볕을 쬐고 있는 ‘자람이’. 동물권행동 카라 제공

‘디테일’은 엘리베이터에서도 엿보였다. 지하를 포함해 총 층수가 3층인 곳에서 엘리베이터가 필요하냐는 질문에 김나연 카라 활동가는 “개들의 사회화를 위해 설치한 측면이 있다”고 답했다. “입양을 희망하는 대부분의 반려인들이 아파트에 거주하다 보니, 엘리베이터 타는 것도 익숙해지도록 훈련이 필요해요.” 개농장에서 구조돼 산책도 낯설어하는 개들에게는 엘리베이터 이용이나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것과 같이 기초적인 생활도 재사회화가 필요하다는 설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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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동물이 결국 이곳을 떠났으면

센터에는 동물병원, 반려동물 미용실, 돌봄 준비실 등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동물의 사회화를 책임질 훈련사 출신 활동가도 새로 채용했다. 유기동물의 보호뿐 아니라 복지까지 고려한 시설이다.

전진경 카라 이사는 “동물보호소가 어떤 공간이 되어야 하는지 좋은 모델을 제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표준화된 보호소를 짓기 위해 5년의 세월이 걸렸어요.” 국내 동물보호소가 어떤 입지와 조건, 시설을 갖춰야 하는지 연구가 전무했기 때문이다.

1층 중대형견 견사는 한 방을 두 마리의 개가 나눠쓰고 있었다. 위탁처에서 이동한 개들이 새 방을 배정받고 있다. 김지숙 기자

“더봄센터가 한국의 티어하임(Tierheim·동물의 집)이 되는 게 목표죠.” 독일 티어하임은 유럽 최대규모 동물보호시설로, 입양률 90%로 알려진 곳이다. “아무리 이곳에서 동물을 잘 보살피더라도 여긴 집이 아니예요. 결국은 모두가 여길 떠나길 바라요. 새 가족을 만나는 장소가 더이상 펫숍이 아닌 동물보호소가 되는 것, 그게 저희 꿈이에요.”

파주/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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