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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동물권, 채식 모두 개가 물어다 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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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0-07-30 13:59
수정 2020-07-30 16:26

[애니멀피플] 반려툰 ‘노견일기’ 정우열 작가

2013년 제주로 이주한 올드독 정우열 작가는 늙은 개 풋코와의 소소하고 따뜻한 일상을 만화로 그리고 있다. 정우열 작가 제공
풋코는 17살 제주 개다. 빵과 카페를 좋아하고, 바다 수영과 해변 달리기를 즐긴다. 풋코의 반려인 정우열 작가는 ‘올드독’ 캐릭터로 유명하다. 올드독은 정 작가의 필명이기도 하다. 스누피 다음으로 인기 많은 개(?) 올드독은 2004년부터 영화와 제주 생활 등을 주제로 한 웹툰에 출연해왔다.

올드독의 길쭉한 주둥이, 쫑긋한 귀,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는 까만 눈은 어딜 보나 풋코와 닮았다. 6년 전 세상을 떠난 풋코의 어미 ‘소리’ 같기도 하다. 영화와 제주를 이야기하던 올드독의 세계에 ‘노견’이란 주제가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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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보다 구구절절한 사연들

정우열 작가는 늙어가는 개 풋코와의 일상을 그린 에세이툰 ‘노견일기’를 네이버 동물공감판 동그람이에 2018년부터 연재하고 있다. 그 사이 15살이던 풋코가 17살이 되었고, 일주일에 한 번씩 연재하던 에피소드가 120회차를 넘어 지난 5월 세 번째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지난달부터 휴재기를 갖고 있는 정우열 작가를 7월13일 제주 서귀포시 자택에서 만났다.

-휴재 기간을 어떻게 보내고 계세요?

“한가하게 바다나 다니려고 했는데, 또 일하고 있네요. 국가인권위에서 혐오표현 방지에 관한 논문을 낸 것이 있는데 논문은 아무래도 많은 분이 시간내 읽기 힘드시잖아요. 논문을 만화로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너무 바쁘다 보니, 일정을 못 맞춰서 폐를 끼치고 있네요.”

-마감이란 게 원래 그런 게 아닌가요,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하는 것?

“불이 지금 너무 활활 타서 발이 없어졌습니다(웃음)”

-노견일기 마감만 2년 넘게 하셨잖아요. 1권은 5쇄가 나올 정도로 팬도 많으신 거로 알아요.

“요즘은 산책하다가 가끔 ‘어, 너 풋코 아니니’ 하고 알아봐 주시는 분들을 만나기도 해요. 대부분 나이가 좀 있으신 분들이죠. 아무래도 한국 반려문화가 이제 20여년 정도 되다 보니 나이 든 개를 키우고 계시다거나, 아픈 개를 키우는 분들 또는 개를 먼저 보내신 분들도 많더라고요. 그런 분들이 많이 공감해주시죠.”

노견일기 에피소드 120화 중 한 장면. 정우열 작가 제공

-최근 에피소드 중에 특히 ‘등 뒤에서 혼자 많이 늙은 내 강아지’란 내용이 많은 공감을 얻었어요. 댓글도 챙겨보시는 편인가요?

“사실 만화보다 댓글이 더 구구절절해요. 치매를 앓는다거나, 눈 먼개를 키우고 있다거나. 그런 댓글을 보면 앞으로 나한테도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다고 하죠. 아마 이런 독자분들이 저보다 경험에서는 선배일 테니까요. 간혹 도움이 필요하신 분들이 있으면 SNS 다이렉트 메시지 통해 소통하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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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늙어서 좋은 점도 있죠

정 작가의 ‘노견일기’에는 먼저 떠나 보낸 반려견 소리가 꿈에 등장하는 에피소드가 여러 번 등장한다. 에피소드 ‘벌써 10년’은 꿈속에서 사과를 깎던 정 작가가 실수로 소리를 베는 장면이 나온다. 정 작가의 꿈 얘기를 들은, 지인은 얼마 전 새벽에 반려묘 걱정에 잠을 깬 경험을 나눈다. 그의 반려묘는 이미 10년 전 세상을 떠났다는 말과 함께. 노견일기 3권의 프롤로그도 꿈 이야기로 시작한다. 풋코와 소리가 바다 위 보트에서 즐거워하는 모습이다.

-‘개꿈’을 자주 꾸시나 봐요?

“개는 늘 꿈에 나와요. 주요 등장견물로 나온다기보다 늘 주변에 함께 있다고 할까요. 주로 악몽을 꾸거든요. 누군가에게 쫓기거나 자동차 브레이크가 말을 안 든다거나 그럴 때도 곁에 개가 있는 식이죠.”

-반려동물과의 이별, 어쩌면 예정된 일이잖아요. 펫로스를 앞둔 노견 가족에게 한마디 해주신다면.

“쉽게 말씀드리기 어려운 문제죠. 아마 흔히 하는 말은 이런 걸 거예요. 어릴 때 많이 놀아주세요. 그건 아무 소용 없는 말이에요. 제 경험은 오직 저의 경험뿐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다른 분께 ‘한 마디’ 하고 싶은 말 같은 건 전혀 없어요. 우리가 비슷한 슬픔을 겪는다고 했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뭘까요. 서로 위로하고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주는 게 아닐까요. 저는 그걸 만화로 하고 싶은 거고요.”

정 작가는 제주, 채식, 동물권 이슈가 모두 개가 물어다 준 주제라고 말했다. 정우열 작가 제공
-늙는다고 나쁘기만 한 건 아닐 것 같아요. 노견만의 매력이 있을까요?

“이제 차분한 대화가 가능하다는 점? 풋코는 8살 때까지만 해도 3시간 이상 운동장에서 뛰고 와야 제대로 된 훈련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활동적인 개였어요. 소리도 10살이 넘어서야 점잖은 개가 됐고. 워낙 혈기왕성해서 에너지를 모두 쏟아내야만 차분한 의사소통이 됐는데 이제 그런 과정이 없이도 소통이 되니까요. 개도 연륜이 생긴 거죠. 어쩌면 개가 늙어서 찾아낸 위안거리인지도 몰라요.”

-‘개를 키우면, 개를 그리게 된다’ 정 작가님을 대표하는 문장이기도 하죠. 개를 반려하며 결정적으로 달라진 자신의 모습이 뭘까요.

“모든 것이 바뀌었죠. 아마 개를 키우지 않았다면 제주로 이주하지 않았을 거예요. 개를 키우면서 캠핑도 다니게 되고, 바다에 관심도 갖게 됐어요. 그러면서 ‘개랑 실컷 바다 수영 할 수 있는 제주로 가자!’ 하게 된 거니까요. 개가 제 운명을 바꾼 거죠. 제주, 동물권, 환경에 대한 관심 모두 개가 물어다 준 이슈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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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비에 옷 젖듯 시작한 채식, 환경활동

프리다이빙 강사이기도 한 정 작가는 최근 해양환경단체 핫핑크돌핀스와 함께 제주 앞바다에서 해양 쓰레기 수중조사 활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 5월31일 바다의 날을 맞아 이들이 서귀포시 대정읍에서 벌인 수중조사에서는 1시간 만에 해양쓰레기 200점 이상이 수거됐다. 매월 정기적으로 펼쳐지는 핫핑크돌핀스의 수중조사 활동에 정 작가는 자원활동가로 참여하고 있다.

-수중조사 활동이란 게 뭔가요?

“바닷속에 어떤 쓰레기들이 얼마나 버려지는지 수거해서 통계를 내는 활동이에요. 바닷속에 쓰레기가 엄청나거든요. 아무리 치워도 끝이 없어요. 그래서 ‘해양정화’라고 하지 않고 ‘수중조사’라고 표현해요. 쓰레기를 가지고 나와서는 다 분류 하고, 목록을 작성해요. 그 기록을 담당부처나 기업에 보내는 거죠. 이보시오, 당신들의 산업 쓰레기가 이만큼이나 버려집니다. 해당 쓰레기를 발생시키는 산업에 적절한 규제와 제도를 마련하라고 부처를 압박하는 거죠.”

정 작가의 자택에서 진행된 1시간여 인터뷰는 풋코의 철저한 참관 아래 이뤄졌다.
-10년 전부터 페스코 베지테리언이신 걸로 알아요. 환경 동물권 실천인가요?

“어떤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 가랑비에 옷 젖듯 시작했죠. 처음에는 그거였어요. 나는 개를 친구이자 가족으로 키우는데, 어떤 사람들이 내 친구를 먹어요. 그만 먹었으면 좋겠는데 그럼 소 돼지는 괜찮은 걸까. 그런 의문에서 시작하게 됐죠. 그즈음 동물자유연대와 한 캠페인에도 그런 아이디어를 담았어요. 슬로건이 ‘낫 푸드 벗 프렌드’(Not Food, But Friend)였거든요.”

-플라스틱 프리, 채식 모두 마음은 있지만, 실천이 힘들잖아요.

“맞아요. 전 그 생각을 자주 했어요. 내가 나쁜 것을 덜어내는 사람인가, 보태는 사람인가. 저는 개인의 윤리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채식 초기엔 부대찌개, 탕수육 못 먹는 게 힘들기도 했어요. 그런데 다시 먹어보잖아요. 제가 기억하고 있는 그 맛이 아니에요. 수중조사도 그렇고, 채식도 그렇고 작은 실천으로 시작했지만, 점차 생각과 경험이 누적되니까 수월해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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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외면 않고 연대했으면…

-마지막 질문은 거창한 거로 할게요. 개를 키우기 좋은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요?

“저는 늘 바다를 보고 살고 환경에 관심이 많지만, 세상에 너무 많은 문제가 있잖아요. 기아, 노동, 성평등 문제 등. 동물권 기사 가장 많이 달리는 악플 ‘사람도 먹기 힘든데 무슨 동물이냐’가 대표적이겠죠. 문제의 우선순위가 다른 거예요. 그렇다고 당장 학대받는 동물을 모른 척해도 좋을까요. 전 당면한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연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어떤 문제든 노력은 늘 부족해요. 그래도 노력을 보태야죠. 개 키우기 좋은 사회란 것도 결국 반려라는 삶의 한 양태를 서로 이해하는 거라고 생각하고요.”

동물자유연대 제공
1시간여 진행된 정 작가와의 만남은 철저히 풋코의 참관 아래 이뤄졌다. 정 작가가 ‘올드독의 노견일기’를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 추천한 에피소드는 대사 한마디 없이 반려동물과의 웃픈 생활을 표현한 ‘너 때문이야’. 특별히 애니멀피플 독자들에게는 언젠가 ‘너와 추는 춤’ 이연수 작가와의 교차 연재 등으로 인사를 드리면 좋겠다는 인사도 전했다.

제주/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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