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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을린 코알라, 미리 본 야생동물의 ‘기후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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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0-01-12 11:39
수정 2020-01-12 13:14

[애니멀피플] 호주 산불과 코알라 그리고 기후변화
서식자와 산불 발생지 80% 겹쳐, 개체 수 30% 사망 추정
근본 원인은 기후변화…“먼 나라 일 아닌 우리에게 닥칠 미래”

호주 고유종인 코알라는 산불 지역이 서식지와 겹친 데다 움직임이 굼떠 특히 큰 피해를 봤다. 지난 7일 산불이 휩쓴 호주 애들레이드 남서부의 캥거루섬에서 야생동물 구조요원이 코알라를 구조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산불을 피해 대피하던 차에서 내린 한 중년 여성이 검게 탄 나무를 움켜쥐고 어찌할 줄 모르던 코알라 한 마리를 모포로 감싸 떼어낸다. 코알라는 생수병을 붙잡고 허겁지겁 물을 마신다. 몸에 물을 뿌려 식힌 코알라를 태우고 차는 병원으로 달린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사우스웨일즈에 사는 토니 도허티로 밝혀진 이 여성의 구조 영상은 11월20일 영국 매체 <더 선>이 유튜브에 올려 조회수 870만 건을 기록하며 화제가 됐다. 그러나 ‘엘렌버러 루이스’란 이름을 얻은 이 코알라는 병원에서 끝내 숨을 거뒀다. 화상이 너무 심해 고통을 줄이기 위해 안락사한 것이다. 포트 매커리 코알라 병원은 11월26일 보도자료를 내어 “우리 병원의 첫째 목표인 동물복지에 기초해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산불 지역에서 구조 직전의 코알라 ‘엘렌버러 루이스’. 심한 화상으로 결국 병원에서 숨졌다.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코알라 루이스는 지금도 기세를 누그러뜨릴 기색이 없는 호주 동부와 남부의 기록적인 산불 때문에 죽거나 죽을 천문학적인 야생동물의 하나일 뿐이다. 검게 그을린 채 애타게 인간에게 물을 받아먹는 코알라에서 많은 이들이 산불의 근본 원인인 기후변화와 그로 인해 마찬가지 운명에 놓일 지구촌 야생동물의 ‘종말’의 모습을 발견한다. 호주의 산불은 미리 만난 섬뜩한 ‘기후 미래’의 모습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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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 없는 재앙적 사태”

지난 9월부터 계속되는 호주 산불은 12일까지 남한 면적을 넘어서는 1100만㏊를 태우면서 28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2000채 이상의 집을 잿더미로 바꾸었다. 숲 속에 살던 야생동물 피해도 막대하다. 크리스 디크먼 시드니대 교수는 “이번 산불로 뉴사우스웨일즈에서만 8억 마리, 호주 전체로는 10억 마리 이상의 포유류, 새, 파충류 등 야생동물이 죽을 것”이라고 6일 <호주 공공라디오>와의 회견에서 말했다.

그는 2주 전 피해 야생동물 수를 4억8000만 마리로 추정했지만 산불 확산에 따라 수정했다. 이 추정은 2007년 세계자연기금(WWF)이 지역개발의 영향을 평가한 보고서에 근거를 두었다. 그는 “당시에는 개구리, 곤충, 무척추동물은 계산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 산불 피해는 예측보다 훨씬 클 것”이라며 “피해의 규모나 속도, 면적에서 전례 없는 재앙적 사태”라고 평가했다.

1월12일 현재 호주의 산불 현황(위)과 코알라 서식지. 대부분 겹친다. 파이어 워치, 호주 코알라 협회 제공.

코알라는 최대 피해자가 될 전망이다. 호주 고유종인 이 동물의 서식지는 유칼리(유칼립투스) 숲이 펼쳐진 호주 동·남부로 이번 화재 지역과 80%가 겹친다. 하루 20시간을 자며 동작이 굼떠 들불에 속절없이 죽어갔다. 거센 산불을 직접 만난 코알라는 형체도 남지 않아 그 수가 얼마나 될지 짐작조차 어렵다. 디크먼 교수는 “불을 피해 나무구멍이나 땅속에 피하더라도 연기에 질식했을 것이고, 설사 살아남아도 먹을 것이 남아있지 않은 데다 외래종인 여우의 침입 등으로 죽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호주 남부의 캥거루 아일랜드는 주머니쥐인 더나트와 검은 앵무새 등 세계적인 희귀동물이 많이 서식하는 곳인데, 이번 화재로 섬의 절반(지리산 국립공원 면적의 1.5배에 해당)이 불타 섬에 살던 코알라의 절반인 2만5000마리가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뉴사우스웨일즈 전체로는 코알라의 약 30%가 이번 화재로 죽었을 것이라고 수전 레이 환경부 장관이 3일 오스트레일리아 공영방송 <에이비시>와의 회견에서 말했다.

커들 크리크에서 구출된 코알라가 한 손에 생수병을 움켜쥔 채 소방대원이 건네주는 물을 마시고 있다. 오크뱅크 밸라나 카운티 소방대 제공.

호주 코알라 협회가 2018년 발표한 코알라의 개체 수는 최대 8만6000마리, 최소 4만8000마리인데, 이미 개발과 산불 등으로 멸종위기에 놓여 있다. 협회는 “서식지의 80%가 사유지여서 보호가 제대로 안 되는 데다 해마다 차나 개로 인해 죽는 개체가 4000마리에 이른다”며 연방정부 차원의 보존대책을 촉구해 왔다.

곤경에 빠진 야생동물을 돕기 위한 시민단체의 손길도 바빠지고 있다. 동물단체들은 산불이 지나간 곳에 왈라비 등을 위한 고구마 주기와 새들에게 필요한 급수대를 설치하고 있다. 야생동물 구조단체인 포나(FAWNA)는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지 말자는 이제까지의 관례를 깨고 적극적으로 사료와 씨앗을 살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산불 지역에서 구조한 캥거루 새끼들에게 우유를 주는 구조 자원봉사자들. 레스큐 콜렉티브스 페이스북 제공.

코바늘 뜨개질로 야생동물을 돕는 운동도 한창이다. 화상 입은 코알라의 손에 씌울 벙어리장갑, 어린 캥거루가 들어갈 주머니, 어린 포섬·웜뱃 등 유대 동물용 주머니 등 집 잃고 고아가 된 어린 동물을 위한 물품을 만들기 위해 호주 전국의 뜨개질 모임이 나서고 있다.

지난해 4월 설립된 호주 동물구조 수공예협회(www.facebook.com/arfsncrafts)는 페이스북에 긴급하게 필요한 물품 목록을 올려 수공예 지원을 요청하고 있는데, 호주는 물론 유럽과 미국, 아시아 등에서 10일 현재 18만3000명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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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맞이할 기후재앙’

이번 산불 재앙은 기록적인 가뭄과 고온·강풍이 겹친 데다 말라 쌓인 덤불이 불쏘시개 구실을 하면서 악화했다. 이상 가뭄과 고온 현상은 기후변화가 원인임이 과학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호주 기상청은 역대 가장 더웠던 6일이 모두 12월에 나타났으며 그달의 강수량 또한 역대 최저라고 밝혔다.

애들레이드 산불 지역에서 불을 끄는 소방대원 곁으로 불을 피한 코알라 한 마리가 다가와 앉아 있다. 에덴 힐스 카운티 수방대 페이스북 제공.

호주 대륙의 평균 최고기온이 40도를 넘은 날이 12월에 11일이나 됐다. 호주 기상청의 2018년 ‘기후 보고서’는 “1910년 이후 평균 기온이 1도 상승했고, 극단적 화재기상과 화재 계절의 길이, 발생 면적이 호주의 많은 지역에서 장기적으로 증가했다”고 결론 내렸다.

이지연 동물해방물결 대표는 “호주의 산불은 남의 문제가 아니라 기후변화에 따라 우리가 머지않아 맞을 기후재앙을 미리 보는 것”이라며 “기후위기에 대응해 ‘탈 육식’ 등 실질적 행동에 나설 때”라고 말했다.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인네스 호 자연보호구에서 화상 입은 채 구조된 코알라 ‘피터’. 포트 매커리 코알라 병원 페이스북 제공.

♣코알라는 어떤 동물?

-곰과는 거리가 먼 유대류로 호주에만 서식한다. ‘코알라’란 말은 원주민 말의 ‘물을 마시지 않는’에서 기원했다.

-유칼리(유칼립투스) 잎만 먹는다. 700종에 이르는 이 나무 가운데 한 종 또는 2∼3종만 먹어, 그 종이 사라지면 굶어 죽는다.

-유칼리 잎은 독성이 있고 섬유질이 많으며 영양가가 낮다. 독성을 분해하고 큰창자에서 섬유질이 발효되길 기다리며 하루 18∼22시간 잔다.

-먹이의 영양가가 낮아 체중 대비 두뇌의 크기가 가장 작은 동물에 속한다. 환경 변화에 재빨리 적응하지 못한다.

-거친 잎을 씹느라 이가 쉽게 닳지만 새로 나지 않아 결국 굶어 죽는다. 수명은 야생에서 10년가량으로 짧다.

-태어난 새끼는 2㎝에 불과하다(어미는 60∼85㎝, 4∼15㎏). 주머니 속에서 6∼7달 젖을 먹고 자란 뒤 1∼3년 동안 어미의 등이나 배에 붙어 지낸다.

-먹이 조달이 힘들고 비용이 많이 들어(마리당 연간 2억원) 호주 밖에선 일본 등 6개국 동물원에만 있다. 우리나라엔 없다.

*자료=호주 코알라 협회,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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