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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제비를 보전하지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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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0-09-23 10:45
수정 2020-09-23 12:36

[애니멀피플] 우석영의 동물+지구 미술관
37. 찰스 터니클리프, 제비와 내성천

때론 비어 있고, 때론 주인이 있던 제비의 흙집. 그것은 흙과 흙의 만남, 집과 집의 기댐이었고, 사람과 제비 사이에 흐르던 친교의 상징이었다. 게티이미지뱅크
사회와 자연이 둘이 아니듯, 풍경과 영혼도 둘로 나누긴 어렵다. 어느 영혼의 시선은 풍경을 파고들거나 풍경에 잠기고, 그런 풍경은 시선과 기억이라는 매개물을 통해 영혼 안에 똬리를 튼다. 어느 영혼의 지하 저장고에 거하는 그것은 풍경 그 자체가 아니라 이미지라는 확장자를 가진 풍경, 즉 심상화된 풍경으로, 그 영혼의 여정에 은밀히 동행한다.

이러한 사태를 그 영혼에게 문득 일깨워주는 것은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풍경이기도 하지만 때론 예술작품이기도 하다. 그 누구도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예술작품 앞에서 우리 자신을 만나곤 하는 것이다. 어느 영혼의 여정의 동반자인 그것은 그 영혼의 삶에 절대 없어서는 안 될 어떤 것이다.

어릴 적 내가 보았던 작고 노란, 비가 오지 않는다면 마당 이곳저곳을 어김없이, 무엇이 그리 분주한지 무리 지어 돌아다니던, 위를 못 보고 언제나 아래를 보던 조무래기들. 한국어 사전은 그것들을 병아리라고 했다. 그들의 엄마며 아빠, 그리고 그들에게서 내가 있는 쪽으로 시선을 옮기면 마루와 댓돌 사이 컴컴한 지하세계에 땡 보직의 경비원, 누렁이가, 지옥문을 지키는 개처럼, 있었다.

전깃줄에 앉은 제비들. 게티이미지뱅크
발치에서 머리 위로 시선을 이동하면, 빗방울이 떨어지고 고드름이 얼곤 하던, 이 세계를 담는 프레임처럼 하늘을 받치고 있던 처마가 거기 있었고, 처마 밑엔 어김없이 또 그것이 있었다. 때론 비어 있고, 때론 주인이 있던 제비의 흙집. 그것은 흙과 흙의 만남, 집과 집의 기댐이었고, 사람과 제비 사이에 흐르던 친교의 상징이었다.

어린 내 눈에는, 제비는 병아리만큼이나 바쁜 동물이었다. 그러나 병아리들과 비교하면 세계를 마주하는 이들의 시야는 드넓었고, 집과 새끼를 돌보느라 펼치는 그들의 깃과 깃의 짓에는 어딘지 반듯하고 힘찬 기운이 흥건했다. 움직임에는 주저함 대신 엽렵함이 있었고, 자식을 대하는 태도에는 날 섬이 아니라 애틋함이 넘쳤다.

물론 사람이 자신들을 내치지 않았기 때문이겠지만, 제비들은 어떤 동물들을 일종의 ‘노예(노비)’로 거느리며 사는 무서운 동물인 사람을 그다지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계절을 따르는 노동자들인 농부들은 계절 소식을 물어다 주는 제비가 반가웠고, 제비는 그늘막이 있는 그네들의 집과 그 집의 흙벽이며, 먹을거리(주로는 나는 곤충들)가 풍족한 그네들의 마을이 마음에 찼다. 기온이 내려가고 곤충들이 사라지면 제비들은 굶주림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갔는데, 석별의 정을 느낀 쪽은 사람들이었다. 그것은 공생이었되, 얼마간의 오해 위에 세워진 공생이었던 셈이다.

철새들의 기착지인 한반도에서 형성된 이런 동물간 친교감은 ‘흥부전’ 같은 구전설화에 잘 새겨져 있지만, 구전민요에서도 우리는 그 흔적을 수월히 찾아낸다.

머리개
개 빗구서
고둑배기 산야물에
올채범벅 개가지구
응마이마장 가잣구나
붓조박을 얻으러
옛집에를 갔다가
부뚜막에 콩 한 알
흘렀기로 먹었드니
비리기두 비리다
지리기두 지리다

-신천지방민요

또 다른 재미난 민요는 제비의 언어가 아니라 인간의 언어를 쏟아낸다.

젬아 젬아 둥지를 마사라
오늘 저녁에 고양이 올라가
네 새끼 다 잡아먹는다

-성율지방민요

제비와 함께 한 이 땅의 생활감정은 이렇게 다감했다. 하건만 외국인들에게 꺼내 내놓을 만한 당당한 제비 그림이 전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야속하다기보다 차라리 기이하다. 조속(趙涑, 1595~1668)이나 허백련(許百鍊, 1891~1976) 같은 분들이 남긴 가작들이 전해지고 있으나, 지나치게 추상적이거나 조촐하다는 감을 지워내기 어렵다.

찰스 터니클리프, 제비 그림
내 안 깊은 곳에서 잠들어 있던, 어린 날 보았던 제비들의 심상을 깨워내 내가 제비와 함께, 철새들의 기착지에서 자랐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내게 새삼 환기해주는 것은 조속도, 허백련도 아니고, 20세기 영국 화가 찰스 터니클리프(Charles Tunnicliffe, 1901~1979)의 작품이다.

이곳에서 1만2000km가 넘게 떨어져 있는 지구의 반대편에서, 터니클리프는 나처럼 농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거기서 제비를 보며 자랐다. 터니클리프가 자란 곳은 런던 남부에 있는 서튼(Sutton)으로, 전직 신발 제조공이던 그의 아비는 이 마을에서 소작으로 농사를 지으며 가족을 부양했다.

터니클리프는 수채화, 유화, 에칭, 목각화 등 다방 면에서 기량을 발휘한 발군의 작가였는데, 책에 삽입되거나 표지를 채울 일러스트 그림(illustration)도 많이 그렸다. 그러나 터니클리프라는 이름과 먼저 매칭되어야 하는 사실은 이런 것들이 아니다. 터니클리프, 그는 새에 매혹된 영혼이었다.

찰스 터니클리프, 제비 그림
이것은 ‘여름에 봐야 할 것’(What to Look for in Summer, 1960)이라는 소책자(총 52쪽)의 표지로 쓰인 작품이다. 어디든 산이 강처럼 흐르고 있는 한반도의 산야도 아니고, 농부가 모는 농기계도 낯선 것이지만, 제비만은 내가 어릴 적 보던 바로 그 녀석들이다. (전 세계 제비의 종은 약 90종으로, 이들은 남극과 바다를 제외한 지구 전역에서 살아간다) 그러니까 제비집을 올려다보며 내가 던졌던, 저 녀석들은 집 밖에서는 대체 무얼 하고 지내는 걸까? 라는 어릴 적의 의문을 풀어주고 있는 그림이다.

생존의 압력이 자아내는 성마름이나 생존 자체의 처절함은 이 작품에서 말끔히 소거되어 있다. 대신 유희가 곧 생존의 노동이고, 생존의 노동이 곧 유희인 시간이 형상화되어 있다. 그러나 그 시간은 제비에게는 휴가와 같은 특별한 시간이 아니라 일상생활에 건실히 구축된 존재양식이다. 제비는 그렇게 살아가는 족속이다. 터니클리프는 그런 것을 붙잡았다.

90종이 넘는 제비 종 가운데에는 무리를 지어 사는 녀석들도 있는데, 조류학자가 아닌 내게 그 사실을 알려준 것도 다름 아닌 터니클리프의 그림이었다. 이런 녀석들이 조선 땅에도 찾아왔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흥부전’의 내용도 필시 달라졌을 것이다.

새끼에게 먹이를 주는 어미 제비. 게티이미지뱅크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우리는, 터니클리프 같은 외방인의 그림 속에서만 보던 제비떼를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있다. 2014년과 2015년, 제비떼 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하지만 수만 마리의 제비떼를 보았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은 정확히 2년 전, 2018년의 가을 초입이었다.

소식의 발원지는 경상북도의 한 천변의 숲이었는데, 공교롭게도 그곳은 댐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의 불협화음이 시끄러운 곳이었다.(▶▶[영상] 내성천에 3만마리 제비떼가 나타났다) 정확히는 2009년 4대강 사업과 함께 착공되어 2016년 완공된 영주댐의 현장, 그 주변 숲으로 수만 마리의 제비들이 떼 지어 깃든 것이다. 댐은 짓고 있지만, 담수(湛水)는 안 하고 있던 기간, 수몰 예정지는 내륙 습지와 숲으로 변모했고, 철새들이 보기에 그곳은 최적의 기착지였다. 철책을 놓고 사람들이 떠나자 동식물이 만개했던 비무장지대의 생태적 기적이 재현된 것이 아니면 무엇인가.

설화와 민요는 남아 있되 그림은 턱없이 빈곤한 이 땅에 새로운 제비들이 도깨비처럼 나타났다. 이제 이 제비들을 어찌할 것인가? 흥부전을 잇는 새로운 제비 동화를 쓰고, 제비 구전민요를 이어 새롭게 쓰며, 전과는 다른 제비 그림을 그려 후손에 전할지 말지는, 우리 안의 제비의 심상을 온전히 보전할지 말지는, 앞으로 이곳을 어떻게 관리할지에 관한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우석영 환경철학 연구자·작가

내성천과 영주댐 그리고 제비

영주댐 건설 이전인 2010년 9월 녹색연합의 ‘사귀자’(4대강 귀하다 지키자) 캠페인에 참가한 이들이 내성천에서 댐 건설 반대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모습. 대구환경운동연합, 박용훈 생태사진가 제공
2020년 8월28일 ‘내성천 제비 숙영지를 지키기 위한 시민조사단’이 발족했다. 내성천은 경북 봉화군 선달산(1236m)에서 발원하여 110km를 넘게 아래로 내려가다 문경시 영순면에서 낙동강에 합류하는 하천이다. 내성천 지키기 운동을 하고 있는 ‘내성천의 친구들’에 따르면, 2018년 9월 내성천 둘레의 숲에서 개체 수가 수만에 달하는 제비떼가 발견되었는데, 이처럼 대규모의 제비 떼가 나타난 건 해방 이후 첫 사례였다.

현재 환경부는 환경지표종(환경오염 또는 환경 구성 요소의 변동상황을 평가하는 데 이용되는 생물) 목록에 제비를 포함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간 한반도에서 목격된, 사회생활을 하지 않는 제비 종의 개체 수는 계속 감소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다면 환경부는 제비 종들의 보호에 힘쓰고 있는 걸까? 환경부가 영주댐 주변 수몰 예정지의 제비 숙영지를 보호하지 않고 도리어 파괴했다는 놀라운 이야기를 우리는 ‘내성천 지킴이’들로부터 들을 수 있다. 이에 관한 더 자세한 이야기는 ‘내성천의 친구들’에서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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