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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얼굴 그려주는 은혜씨’가 꺼낸 2500번의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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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0-04-25 15:28
수정 2020-05-10 21:44

[토요판] 인터뷰
국회 아트갤러리 ‘4월의 작가’ 정은혜

4년간 2500여명 얼굴 그린
정은혜 ‘시선을 포개다’ 전시
지하철로 혼자 통학하는 동안
장애인 향한 비수 같은 눈빛에
‘시선 강박’과 말더듬증 생겨

가족 눈빛조차 못 견뎠지만
“예쁘게 그려주세요, 은혜씨”
환대의 시선 경험하며 치유

정은혜 화가가 22일 국회 의원회관 아트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시선을 포개다’ 전시장 앞에 앉아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 31살 화가 정은혜는 서울문화재단 잠실창작스튜디오 소속 작가다. ‘시선 강박’에 시달리다가 화가가 됐다. 발달장애가 있는 그는 통학을 위해 혼자 대중교통을 이용하다가 ‘시선 강박’에 사로잡혔었다. 장애인을 보는 ‘이상한 눈빛’이 싫었다. 자신을 보는 눈빛이라면 가족이라도 싫었다. 시선에 속절없이 눌리던 그는 이제, 시선을 주고받고 활용하는 전업 화가다.

번쩍, 빛줄기가 보이는 초상화였다. 대개 연필로 얼굴을 스케치할 때 밝은 곳과 어두운 곳은 명암의 점층적 단계로 표현되는데, 화가 정은혜(31)의 스케치는 이와 달리 빛이 지나가는 선 자체로 명과 암을 명쾌하게 구분했다. 독창적이고도 과감한 ‘빛선’이다. 그는 빛과 그늘의 경계를 눈에 보이는 그대로 그려버린 것이다.

정은혜는 2500명이 넘는 사람의 얼굴을 연필 캐리커처로 그렸다. ‘빛선’을 포착하는 그가 그린 초상화 하나하나에서는, 그래서 봉합선이 보인다. 함부로 가까워지지 않으려는 빛과 그늘이 신중하게 서로를 맞댄 채 생겨난 선. 이 빛과 그늘의 틈새로, 담담한 편지가 밀고 들어온다. 2500여명의 눈을 마주보며 ‘시선 강박’을 극복한 한 젊은 화가의 이야기가 적힌 편지.

<한상옥 목사님>. 정은혜 작가가 그림을 시작한 2016년에 그려진 작품이다. 얼굴에 주름처럼 보이는 선이 특징적이다. 정 작가는 빛과 그늘의 경계를 명암으로 표현하는 대신 눈에 보이는 선대로 그린다. 정은혜 작가 제공

정은혜 작가 제공

국회 아트갤러리에서 작품전 ‘시선을 포개다’(4월6~29일)를 열고 있는 그를 지난 20일과 22일 두 번에 걸쳐 만났다. 이번 전시에는 연필로 그린 초상화(캐리커처) 462점과 채색화 22점을 선보인다. 개인전으로는 드물게 방대한 양이다. 전시를 기획한 국회 홍보담당관실 쪽은 “초상화를 주제로 한 전시는 아트갤러리 개관 이후 이번이 두 번째로, 매우 이례적이다. 초상화를 주로 그려온 정은혜 작가의 작품들은 그 수도 압도적일뿐더러, 작품의 수준도 전시 주제를 풍요롭게 하는 데 충분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정은혜는 언제나 뜨개질을 하면서 관객들을 맞이했다. 차분하고 느긋한 말투와 달리 손놀림은 무척 빠르고 거침없었다.

- 그림 말고 손뜨개 작품도 만드세요?

“네. 어릴 때부터 했어요, 뜨개질.”

발도르프 학교에서 교육받은 그는 그림보다 먼저 뜨개질을 배웠다. 목공, 원예, 바느질, 뜨개질 등은 발도르프 교육에서 강조되는 삶의 기술들이다. 몸을 직접 쓰면서 세상과 만나는 동시에 표현력을 길러주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손뜨개는 20년 가까이 해왔지만 그림을 시작한 지는 겨우 4년밖에 되지 않았다. “뜨개질을 오래 해서 손의 소근육이 발달한 덕분에 그림을 그릴 때 세밀한 표현이 가능했다고 봐요.” 만화가인 그의 어머니(장차현실)가 덧붙였다.

<나를 사랑스러운 딸로 태어나게 한 엄마 장차현실>(2018). 정은혜 작가 제공

2016년부터 그림을 그린 정은혜는 현재 서울문화재단 잠실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잠실창작스튜디오는 장애가 있는 예술가에게 창작 공간을 제공하고 큐레이터, 비평가, 다른 작가들과의 교류와 각종 전시를 지원한다. 서울문화재단은 지난해와 올해 연속으로 정은혜를 입주작가로 선정하면서 “기존 작업 주제나 방식을 고수하려는 태도보다 유연하게 새로운 자극을 수용하고자 하고, 개성 있는 색채와 구성을 통해 단단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특히 얼굴을 그리는 과정을 통해 작가와 관객이 치유와 소통을 주고받은 점을 높이 평가했다”고 밝혔다.

정은혜와 명함을 주고받았다. 그가 내민 서울문화재단 입주작가 명함에는 그의 자화상 <니 얼굴 은혜씨>가 한 면 가득 그려져 있었다. 한글과 함께 점자가 각인된 명함은 손과 종이 사이에 편안한 마찰을 만들어주었다. 작고 얇아서 흘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덜어주는 명함이었다.

정은혜 작가 제공

정은혜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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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예쁜 사람은 없었어요”

- 미술을 전공하지 않으셨습니다. 따로 그림을 배우셨어요?

“아니요, 그냥 그렸어요.”

뜨개질을 하면서 정은혜는 고개를 저었다. 27살에 그림을 시작한 그는 기초적인 미술 도구를 활용하는 법 외에 별도로 받은 미술 교육이 없다.

- 세상에 그릴 건 너무 많은데, 왜 하필 사람을 그리셨어요?

“예쁘니까.”

- 안 예쁜 사람도 있지 않아요? 그리기 싫은 사람 없었어요?

“없어요, 다 예뻤어요.”

- 사람들이 자기 그려달라고 할 땐 예쁘게 그려달라고 하잖아요. 억지로 웃으면서 예쁜 척도 하고요. 작가님이 속은 거 아니에요?

“다 예쁜데 뭘… 나는 보이는 대로 그리니까. 사실대로.”

- 유명인도 많이 그리셨어요.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경기도지사, 가수 양희은과 배우 양희경 자매…. 유명한 사람과 아는 사람 중에 누구를 그리는 게 더 좋아요?

“아는 사람 그릴 때 좋아요, 지금은.”

- 왜 그렇게 달라졌어요?

“그게 더 편해요.”

- 얼굴 그릴 땐 어떤 점이 가장 어렵나요? 표현하기 까다로운 부분이요. 눈빛? 표정?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특별히 더 많이 연습한다거나….

“표현하기 어려운 건 없어요.”

- 네. 그럼, 그림 그리는 일 자체는 어때요? 몸도 엄청 써야 하고 집중력과 시간도 많이 필요한데요. 4년 동안 그린 작품 수가 엄청나요.

정은혜는 두 번째 만났을 때는 이렇게 대답해줬다. “그림을 그리는 건… 사실 어려워요. 너무 힘들었습니다.”

정은혜 작가 제공

연필이나 샤프로 사람들의 얼굴을 그려준 게 그림 인생의 출발이었다.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에서 열리는 문화장터 ‘리버마켓’에서 주로 그렸다. 여기서 ‘니 얼굴 (그려주는) 은혜씨’는 가장 인기 있는 부스 중 하나가 됐다. 사람을 직접 만나서 인사를 하고, 이름을 물어보고, 눈을 마주치고, 자신을 그려달라고 부탁하는 사람들과 웃음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가 그린 초상화엔 자신의 이름과 ‘병아리’ 모양 도장, 그려준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다. 특히 ‘눈을 마주치고’. 이것은 정은혜에게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대학생이 된 그는 지하철로 혼자 통학을 했다. 왕복 1시간40분. 그렇게 3년을 보낸 뒤 가장 싫어진 게 있다. 지하철에 같이 탄 사람들이 발달장애가 있는 사람을 보는 눈빛. 다른 이를 볼 때와는 전혀 다른 눈빛. 누군가 쳐다보기만 하면 불같이 화가 났다. “시선 강박”이었다. 말더듬증과 이갈이도 찾아왔다. 가족들조차 집에서 같이 밥을 먹을 때 아무도 눈을 들 수 없을 정도로 심해진 강박은 조현병 증세로까지 이어졌다. ‘사람을 그리긴 어렵지 않지만 그림을 계속 그리는 건 어려웠다’고 말할 때, 단지 “힘들었다”는 한마디로 긴 고통을 짧게 표현할 때, 어떤 품격을 느꼈다. 자신의 고통을 과장하지 않는 이의 기품.

정은혜 작가 제공

- 얼굴을 그려주려면 눈을 봐야 하잖아요.

“…….”

- 눈을 보고 그림을 그리는 게 어려웠지만, 수천 번 용기를 내셨네요.

“네.”

지금의 정은혜는 처음 만난 이와도 눈을 잘 마주치고, 말을 분명하게 하고, 이를 갈긴커녕 자주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는다. 비수 같은 시선으로 생긴 증상들이 싹 사라진 것이다. 수많은 사람의 얼굴을 그리는 동안 생긴 엄청난 변화다. 혐오의 시선을 던진 건 사람이지만, 환대의 시선을 건넨 것도 사람이었다. 그림을 부탁하면서 자기 얼굴을 맡길 때의 순한 눈빛들이 햇빛처럼 쏟아진 4년 동안, 상처 입은 마음은 소독되고 젖은 곳이 보송보송 말라갔다. 강박은 대표적인 불안 증세다. 안전한 시선 속에 머물러야 강박을 벗어날 수 있다는 걸 그는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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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당신을 아물게 하는 선

화가 정은혜에게서처럼, 안정감은 창작하는 이에게나 감상하는 이 모두에게 핵심적인 효능이다. 예술은 간섭받지 않는 공간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감정을 표현해도 괜찮은 이해의 장소, 예술이라는 완충지대에선 차별과 편견을 포함해 드러내기 힘들었던 주제를 얼마든지 다룰 수 있다. 창작을 통해 자신의 감정에 형태를 부여하는 동안에도 놀라운 일이 생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자신의 힘’을 인정하게 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곧, 자기 자신이 변화의 주인이라는 주체성을 가지게 된다.

- 그림 그리다가 실수하면 어떻게 하세요. 지우고 다시 그려요? 수정하나요?

“실수 없어요. 틀린 적 없어요.”

- 실수를 과정의 일부로 통합할 줄 아는 능력으로 읽힙니다.

“네, 실수란 없는 거예요.”

반려견을 그린 <알랑방구 지로>(2020). 캔버스 위에 펜, 아크릴. 정은혜 작가 제공

실제로 정은혜의 스케치를 자세히 뜯어볼수록, 분명하고 확고한 느낌을 받는다. 얇은 선을 여러 번 쓰기보다 굵은 선을 단번에 긋기 때문이다. 연한 선은 약한 빛에만 쓰이는 편이고, 대부분의 선이 진하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기 확신이 뿜어져 나온다. 창조성에는 상상력과 표현력뿐 아니라 믿음이 반드시 동반된다는 점을 정은혜를 통해 다시 한번 확신하게 되었다. “만나는 사람들과 그림으로 그리면서 저한테는 잘되었는지 (…) 지금은 정말 대단합니다. 저는 멋진 사람인데 훌륭하고 좋은 것 같습니다. 저한테는 이런 생각이 좋습니다.”(4월7일 정은혜 페이스북)

지난해를 기점으로 확연히 커진 그림 사이즈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번 전시회에 나온 대표작 <니 얼굴 은혜씨>(2019), 반려견을 그린 <알랑방구 지로>(2020)의 크기는 각각 60.5㎝×72.5㎝, 90.5㎝×72.5㎝. 최근에 아크릴로 그린 채색화 대부분이 이 정도 규모다. 2016년에 나온 그림들은 182㎜×257㎜로 B5용지 크기다. 이렇게 작은 그림은 관객이 그림 가까이에 머물도록 요청한다. 멀리서는 자세히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점점 커지는 정은혜의 그림은 더 이상 관객에게 가까이 다가오라고 요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면서 종이에서 캔버스로, 연필에서 채색으로 바뀌어가는 그의 그림은 정지해 있으면서도 스스로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오히려 관객 쪽으로 다가간다. 전에 없던 붓질과 채색의 동선은 간섭받지 않는 더 넓은 공간에서 그의 육체가 남긴 자유로운 흔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정은혜 화가가 22일 국회 의원회관 아트갤러리 <시선을 포개다> 작품전에서 자화상 <니 얼굴 은혜씨> 앞에 서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볼 것이 너무 많아서 자기만의 눈으로 보는 법을 잃기 쉬운 시대. 사람을 집요하게 바라봄으로써 상처를 치유하고 자기의 우주를 확장해온 정은혜의 삶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자기만의 눈으로 보는 사람과 그에게 보이는 대상은 반드시 서로를 변형시켜 놓는다고.

- 다른 사람 그릴 때와 나 자신을 그릴 때, 언제가 더 좋아요?

“사람만 그려서 되겠어요? 사람도 그리고, 동물이랑 꽃, 자연 풍경도 그려야지요.”

정은혜의 ‘빛선’이 지나가면 봉합되듯 살갗이 맞붙는다. 저 아름다운 생명들에게 정은혜의 ‘아무는 선’이 오래오래 지나가기를.

석진희 기자 nin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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