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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연인이다’ 성우의 가수 데뷔…“나의 꿈은 노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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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0-06-30 05:00
수정 2020-06-30 08:21

“내가 위로받았던 것처럼
누군가 위로할 수 있었으면”

가수로 데뷔한 성우 정형석. 핏어팻 제공

음악은 친구이자 위로였다. 강원도 인제에 사는 부모님과 떨어져 서울 외삼촌 집에서 생활하던 사춘기 중학생은 혼자 시간을 보낼 때가 많았다. 외삼촌의 보살핌은 더할 나위 없이 따뜻했지만, 부모님의 품처럼 마냥 편하지는 않았다. 외로움이 느껴질 때면 노래를 찾았다. 누군가 ‘괜찮다 다 괜찮다’고 위로해주는 것 같았다. 학교를 마치면 곧장 집으로 가지 않고 어둠이 질 때까지 길에서 서성대며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들었다. 고등학생이 돼서도 다르지 않았다. 노래를 듣고 있으면 외롭고 적적한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이 좋았다. 가수가 되고 싶었다.

“어릴 적 꿈은 성우가 아니었어요. 노래에 빠져 살았죠.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보다는 혼자서 조용히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내는 내성적인 아이였어요.” 지난 26일 서울 이태원에서 만난 성우 정형석이 광고 내레이션과도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수로 데뷔한 성우 정형석. 김경욱 기자

중저음의 목소리가 걸림돌이었을까. 가수로서의 기회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서울예대 연극과를 졸업한 뒤, 1998년부터 연극 무대에 섰다. 2000년부터는 논버벌(비언어) 퍼포먼스 <난타>로 세계 곳곳을 누볐다. 그런 생활을 5년 정도 하자,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강점인 목소리를 쓸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고민하던 차에 함께 공연하던 선배가 말했다. “너는 목소리가 좋으니, 말과 대사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성우를 해봐. 잘할 것 같아.” 그 말이 계기가 돼 <한국방송>(KBS) 공채 성우 시험을 봤고, 합격했다. 2006년의 일이다.

일이 없을 때도 있었지만, 그는 ‘스타 성우’로 우뚝 섰다. 그의 이름을 모르는 이도 “<나는 자연인이다>(엠비엔)의 내레이션을 하는 성우”라고 하면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그의 목소리는 대중에게 각인돼 있다. 그는 이 프로그램을 9년째 맡고 있다. 삼성전자·현대자동차·케이티(KT)·포스코·대한항공·두산·엘지(LG)전자 등 50개가 넘는 주요 기업의 텔레비전 광고에도 목소리로 출연했다.

가수로 데뷔한 성우 정형석. 김경욱 기자

그가 이번에는 가수로 변신했다. 재즈평론가 남무성의 제안으로 오랫동안 간직해온 꿈을 이룬 것이다. 그는 지난 19일 두 곡의 싱글 음원을 발매했다. ‘하얀 나비’와 ‘사랑 그대로의 사랑’이 그것이다. ‘하얀 나비’는 고인이 된 싱어송라이터 김정호가 1975년 발표한 곡을 모던록으로 재탄생시켰고, ‘사랑 그대로의 사랑’은 1990년대 인기를 끈 그룹 푸른하늘의 유영석이 작사·작곡·노래한 곡을 재즈사운드로 리메이크했다. ‘록의 대부’ 신중현의 아들인 기타리스트 신윤철을 비롯해 피아니스트 조윤성, 베이시스트 전성식 등이 참여했고, 준비하는 데만 2년여의 세월이 걸렸다. 그는 “이 두 곡과 함께 신곡을 포함해 올가을과 겨울에 각각 2~3곡씩 순차적으로 발표한 뒤, 올해 안으로 한장의 음반으로 묶어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음반을 내겠다고 했을 때, 그의 아내는 처음에 반대했다고 한다. “‘성우로 이름 알렸으니, 음반 한번 내 볼까’하는 마음으로 접근한 줄 알았대요. 그런데 2년동안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는 ‘해도 되겠다’고 하더라고요.” 그의 아내는 성우 박지윤이다. 성신여대에서 성악을 전공한 박지윤은 애니메이션 <겨울왕국>(더빙판)에서 안나 목소리를 맡아 노래까지 소화하며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아내의 인정을 받으니 자신있었죠.”

가수로 데뷔한 성우 정형석. 핏어팻 제공

‘하얀 나비’는 부모님이 좋아하시던 노래였다. 이 노래를 부를 때면 아련한 기억이 떠오른다. “동생과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나요. 혼자 방황하던 학창시절 생각도 나고. ‘음~ 생각을 말아요’라는 노랫말이 삶의 아픔을 치유해주는 것 같아서 참 좋아요.” 그가 6살 때, 3살 터울 여동생은 세상을 떠났다. 심장이 좋지 않아서였다. “아픈 동생을 안고 부모님이 택시를 타고 인제에서 서울 병원으로 가던 모습들이 스쳐 지나가요. 동생이 살아 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동생이 떠나고 그는 2년 동안 경남 마산(지금의 창원) 친척 집에 보내졌다. “부모님이 슬픔을 견디기 힘드셨을 거예요. 그때 이 원곡 노래가 부모님께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그는 자신의 노래가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자신이 노래를 통해 위로받았던 것처럼 말이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에게 물었다. 좋은 목소리는 어떻게 내는 거냐고. “좋은 마음에서 좋은 소리가 나오는 것 같아요. 싸울 때를 생각해보세요. 절대 좋은 목소리가 나올 수 없어요.” 좋은 마음을 담은 목소리로 그가 노래한다. 가수 정형석의 노래는 이제 시작이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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