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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은 왜 ‘정가’가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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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0-08-01 16:19
수정 2020-08-01 16:33

[토요판] 신지민의 찌질한 와인
25. 와인 가격은 왜 ‘비공개’일까

대형마트에서 와인을 고르는 고객의 모습. 롯데마트 제공, 연합뉴스

“와인 가격은 쪽지나 카카오톡으로 문의 부탁드립니다.”

블로그, 카페 등에서 와인을 홍보하는 글에 항상 등장하는 문구다. 굳이 와인숍의 아이디를 카카오톡에 추가해 가격을 물어보는 일들이 번거롭고 귀찮기도 하지만 ‘특가라면 놓칠 수 없지’ 하는 마음에 가격 문의를 해본다. 그런데 몇달에 한번씩 있는 와인숍의 장터기간엔 더욱 번거로워진다. 어떤 와인을 할인가로 판매하는지, 이름만 목록에 올려놓고 정작 가격이 얼마인가 보면, 직접 문의해달란다. 한두개도 아닌데, 몇백개 되는 와인 중에 특정 와인만 골라서 물어보는 것도 꽤 수고로운 일이다. 게다가 이 기간엔 전화를 해도 통화 중이거나, 카카오톡 답장도 늦는 경우가 많다. 이쯤 되면 둘 중 하나다. 직접 와인숍에 방문해서 눈으로 확인하거나, 포기하거나.

와인 가격은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최대 관심사다. 누군가는 10만원에 산 와인을 누군가는 5만원에 사기도 하기에. ‘호구’가 되지 않기 위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열심히 눈팅하고, 정보를 수집한다. 단, 소비자들끼리도 가격을 공개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역시나 쪽지로 알려주겠다고 한다. 좀 더 저렴하게 맛있는 와인을 마시자고 모인 사람들끼리 왜 가격을 공개하지 않는 걸까.

와인은 권장 소비자가는 있지만, ‘정가’가 없기 때문이다. 공개적으로 저렴하게 산 가격을 밝혀버리면, 이를 알게 된 와인 수입사에서 판매처에 항의를 하게 되고, 결국 판매처는 그 가격으론 팔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소비자들은 지켜주고 싶은 거다.

수입사에서 항의를 하는 이유는 뭘까. 한 수입사 관계자 ㄱ씨에게 물어봤다. “판매처마다 판매 물량과 규모가 다르기 때문이죠. 또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는 가정 아래, 같은 가격으로 납품했어도 해당 숍에서 마진을 더 낮춰서 팔아버리는 경우도 있고, 또 다른 딜(예를 들어 물량을 늘리거나 다른 상품 추가 매입 등)을 해서 조건을 걸게 되면 가격을 더 낮출 수도 있어요. 그런데 이런 조건들이 고려되지 않은 채 하나의 가격이 노출되면, 전체 가격 체계가 흐려지기 때문이죠.”

결국 판매처들은 소비자들이 정확하게 가격을 알 수 없는 방법을 쓰게 됐다. 두가지 이상의 와인을 묶어서 팔거나, 와인 한병과 에어레이터 등 와인 관련 용품을 묶어서 판매하는 식이다. 이렇게 하면 각각의 와인이 정확히 얼마인지 소비자는 알 수가 없다.

수입사는 가격 체계가 흐려지는 걸 걱정해야 하고 판매처는 항의를 받지 않으면서도 싸게 잘 파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고 소비자는 어떻게 하면 더 싸게 살까 고민해야 하는 이런 ‘삼중고’를 겪지 않기 위해 처음부터 정가로 팔면 안 되는 걸까. 다른 수입사 관계자 ㄴ씨는 이렇게 말한다. “현실적으론 어려운 일 같아요. 와이너리에서 어떤 조건으로 수입해오느냐에 따라 다르고, 판매처와 어떻게 딜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구조라서요. 수입사에서도 권장 소비자가를 기준으로 가격이 두세번 더 내려갈 것을 전제하고 가격을 붙이기도 하고요.”

최근엔 와인도 온라인 판매가 가능해졌다. 아직은 온라인 결제만 가능하고, 직접 찾아와야 하고, 와인 종류도 많지 않다. 그래도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가격을 공개한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와인 수입과 유통, 판매 등 복잡한 과정이 있겠지만, 와인 소비자 입장에서 가장 궁금한 것은 단 하나! 그래서 대체 얼마냐고요? 이제 더 이상 ‘가격 문의’는 그만 좀 하고 싶다.

<한겨레21> 기자 godji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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