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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중동 2개국 수교…새로운 ‘평화’일까 ‘전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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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0-09-17 04:59
수정 2020-09-17 07:47

이스라엘-아랍에미리트-바레인 3국
백악관서 관계정상화 ‘아브라함 협정’ 조인
이스라엘 26년 만에 아랍국 수교
중재한 트럼프 “분쟁 끝에 새벽…
적어도 5~6개국 곧 따라올 것”

팔레스타인 문제는 도외시
서안 합병 중단 약속했지만
공식의제로는 포함 안돼
팔 “동료 아랍국가들이 칼 꽂아”

사실상 수니파 국가와 이스라엘
‘반이란 연대’가 귀착점

15일(현지시각) 이스라엘 수도 텔아비브 시청에 히브리어로 ‘평화’라는 단어가 쓰여 있다. 이스라엘은 이날 미국의 중재로 워싱턴 백악관에서 걸프 지역 아랍국가인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과 외교관계 정상화를 위한 합의인 ‘아브라함 협정’에 서명했다. 텔아비브/AP 연합뉴스

‘새로운 중동의 새벽’은 중동에 새로운 평화인가 전선인가?

15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UAE) 및 바레인의 관계정상화 협정 조인식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수십년의 분열과 갈등 끝에 우리는 새로운 중동의 여명을 맞고 있다”고 말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평화의 새로운 새벽의 도래를 알린다”고 평가했다.

이스라엘이 1979년 이집트, 1994년 요르단에 이어 26년 만에 아랍 국가와 정식 수교를 맺은 것은 분명 중동에 ‘새로운 새벽’을 의미한다. 아랍에미리트와 바레인의 뒤를 이어 “적어도 5~6개 국가들이 곧 따라올 것”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처럼, 다른 중동 무슬림 국가들도 이스라엘과 관계정상화의 길로 접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트럼프는 중동 무슬림 국가의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적당한 때에” 이스라엘과 협정을 타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2차대전 뒤 지금까지 70년 넘게 이스라엘과 중동 국가 사이의 적대관계가 중동분쟁의 핵심이었고, 이제 새로운 전기에 들어선 것은 분명하다. 다만, 이번 관계정상화에서 이들 국가의 적대관계와 중동분쟁의 원인인 팔레스타인 문제는 도외시됐다. ‘새로운 중동의 새벽’의 성격을 새로운 평화만으로 볼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전후 중동에서는 두 개의 획기적인 ‘평화협정’이 있었다.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 사이 첫 관계정상화인 이스라엘-이집트의 캠프데이비드 평화협정, 그리고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약속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오슬로 평화협정이다. 두 평화협정은 모두 중동분쟁의 불씨인 팔레스타인 문제가 핵심 의제였다.

이번 협정에서 이스라엘의 서안지구 합병 중단이 언급되기는 했다. 아랍에미리트의 셰이크 압둘라 빈 자이드 알나흐얀 외무장관은 조인식에서 합병 ‘중단’에 대해 네타냐후 총리에게 사의를 표했으나, 네타냐후는 단지 ‘유보’된 것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서안 합병 문제는 양국 협정의 15개 조항에서도 공식의제로 들어가지 않은 단지 사전 약속일뿐이다.

네타냐후에 비판적인 자유주의적 친이스라엘 로비단체인 ‘제이 스트리트’의 제러미 벤아미 대표가 <뉴욕 타임스>에 “분쟁 해결이 아니고 평화도 아니다. 사업계약이다”라고 말한 이유다. 그는 “이스라엘과 이들 국가 사이에 공통된 이익이 있다는 것은 아주 명확하다”며 “군사·안보·외교·경제적 그런 이익들은 20년 동안 있어왔다”고 지적했다.

그가 말한 20년 전은 이라크전쟁 전후를 말한다. 이때부터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의 관계와 중동분쟁은 질적인 변화를 겪기 시작했다. 팔레스타인 문제를 둔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 사이의 적대관계라는 중동분쟁의 성격이, 아랍 국가 대 비아랍 국가 사이의 대결로 본격적으로 바뀌었다. 이런 변화는 1979년 이란의 이슬람혁명과 곧이어 일어난 이란-이라크전쟁에서 이미 싹텄다.

이란의 이슬람혁명은 사우디 등 왕정 국가나 이집트 등 세속주의 권위주의 정권 등 중동의 무슬림 국가들에 이슬람주의 위협을 조성했다. 특히 이란이 무슬림 소수종파인 시아파 국가인데다 비아랍 국가여서, 중동 수니파 무슬림 국가들에는 종파 및 민족 분쟁 위협도 제기했다.

미국은 중동의 최대 동맹국이었던 이란이 반미로 돌아서자, 사우디와 손잡고 걸프만 안보를 챙겼다. 국경문제를 이유로 이란을 상대로 개전한 이라크 뒤에는 미국과 사우디의 종용과 지원이 있었다. 전쟁 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이 완전히 반미로 돌아서고, 쿠웨이트까지 점령해 1991년 걸프전이 일어났다. 미국은 걸프전 뒤 이란과 이라크를 봉쇄하는 ‘이중봉쇄 전략’을 취하다가, 2001년 9·11 테러를 계기로 중동 지정학의 핵심 지대에 자리한 이라크의 ‘체제 교체’를 시도했다.

하지만 2003년 일어난 이라크전쟁은 미국 대외정책 역사상 가장 큰 재앙으로 귀결됐고, 이 와중에 시리아 내전까지 일어났다. 중동의 핵심지역인 레반트 지역에 ‘전선 없는 전쟁’이 벌어지는 거대한 세력공백이 발생했다.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과 시리아의 바샤르 아사드 정권은 반미이기는 했으나, 중동에서 이슬람주의 세력을 막는 세속주의의 방패였다. 이런 국가에서 정권이 붕괴되거나 약화되는 세력공백이 생기자,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이 이슬람국가(IS)라는 준국가세력으로까지 성장하는 혼란이 벌어졌다.

이런 세력공백과 이슬람국가 퇴치 전쟁 와중에 이란이 비약적으로 세력을 넓혔다. 터키 역시 중동에서 세력 회복에 나섰다. 이라크에서 시아파 정부의 수립, 시리아에서 시아파의 분파이자 친이란인 아사드 정권의 회복, 레바논에서 시아파인 헤즈볼라의 득세, 예멘 내전에서 시아파의 분파인 후티 분리주의 세력의 약진 등은 사우디 및 걸프 왕정국가들의 ‘이란 공포증’을 극대화했다.

특히 버락 오바마 전 미국 행정부가 이란 봉쇄를 철회하고 이란의 평화적 핵개발을 허용한 국제적 이란핵협정인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을 타결했다. 사우디는 자신들도 핵개발에 나서겠다고 반발했고, 이라크전쟁 이후 이란을 주적으로 삼은 이스라엘은 이란 핵시설을 폭격하겠다고 위협했다.

사우디와 이스라엘 사이에 명확한 공동의 적과 이익이 공유된 것이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중동에서 수니파 동맹 구축에 나서고 이란핵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면서 가속화됐다. 트럼프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보좌관이 추진한 중동평화구상은 아랍 수니파 국가들을 내세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타협을 이루는 것이다. 이 타협의 대가로 이스라엘에는 수니파 국가와의 관계정상화, 팔레스타인에는 경제지원을 주려고 했다. 이스라엘과 사우디 등 수니파 국가의 반이란 연대가 귀착점이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이 ‘동료 아랍 국가들이 우리의 등에 칼을 꽂는다’고 반발하면서, 트럼프의 중동평화구상은 평화가 빠진 ‘사업과 연대’만이 남는 조약으로 출범했다. 트럼프는 조인식 전 <폭스 뉴스>와 회견에서 팔레스타인은 결국 이스라엘과 평화를 이루거나, 아니면 “추운 곳에 버려질 것이다”고 말했다.

압둘라티프 빈 라시드 알자야니 바레인 외무장관(왼쪽부터)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압둘라 빈 자예드 알나흐얀 아랍에미리트 외무장관이 15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바레인의 관계를 정상화하는 ‘아브라함 협정’ 문서를 보며 활짝 웃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팔레스타인 동참 여부와 상관없이 이번 협정이 중동에서 새로운 전선과 층위를 공식화하는 것은 분명하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중동의 지정학적 동력을 근본적으로 바꿀 폭넓은 반이란 정렬의 기초”라고 평가했다. 시리아 내전에 개입해 쿠르드족 문제로 미국과 충돌한 터키는 자원 탐사 등을 놓고 서방과 알력을 격화하고 있다. 터키는 이번 협정을 팔레스타인 대의에 대한 새로운 타격이며 이스라엘을 대담하게 만드는 아랍 국가들의 배신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유대인이나 아랍족 등 셈족, 그리고 3대 유일신 종교의 선조 이름을 딴 ‘아브라함 협정’이라는 명칭이 상징적이다. 인도유럽어족의 이란과 튀르크족의 터키는 이 구상에서 제외된다. 이스라엘-아랍 대 비아랍의 대결 구도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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