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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가짜’ 조종사들이 착륙 때마다 급하강한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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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0-07-31 09:59
수정 2020-07-31 15:52

최현준의 DB_Deep
여객기 민가추락 등 잇단 항공사고 원인 조사해보니
조종사 860명 중 262명이 가짜 또는 부정 면허
조종사 6명 ‘알자지라’ 인터뷰서 충격적 실태 고백

5월22일 파키스탄 남부 카라치의 여객기 추락사고 현장에서 의용 구조대원들이 생존자를 찾고 있다. 카라치/AP연합뉴스

지난 5월 파키스탄 남부 도시 카라치의 주거 지역에 여객기 한 대가 추락했다. 승객·승무원 99명 중 97명이 사망했다. 다행히 주민 중 사망자는 없었다. 사건을 조사한 파키스탄 당국은 조종사의 비행 실수, 즉 인재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충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사고 조사 과정에서, 2018년 파키스탄 정부가 항공 사고를 계기로 시작한 조종사 면허 조사 결과 일부가 발표됐다. 파키스탄 전체 조종사 860명 가운데 262명이 가짜 면허이거나 면허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

전 세계 항공 업계가 충격에 빠졌다. 미국·유럽 등 세계 각국이 파키스탄 항공사의 취항을 금지하고, 파키스탄 국적 조종사 면허의 진위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최근 파키스탄 조종사 6명은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아랍 언론 <알자지라>와 인터뷰해, 파키스탄 항공 산업에 만연한 안전불감증을 고백했다. 5월 민가 추락 사고도 연료를 아끼기 위한 ‘급강하 착륙’ 과정에서 발생한 것일 수 있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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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번 착륙 시험 실패해도 ‘통과’…“부정행위 너무 쉬웠다”

조종사들은 비행 면허와 관련한 부적절한 관행이 파키스탄에서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말한다. 조종사 ㄱ씨는 <알자지라>와 인터뷰에서 “2009년 조종사 면허 시험을 볼 때, 항공협회 쪽에 돈을 내면 부정 행위를 할 수 있었다”며 “부정행위를 하지 않는 것보다 하는 것이 훨씬 쉬웠다”고 말했다.

2011년 유럽 기준에 맞춰 조종사 면허 시험의 횟수가 늘고 컴퓨터 시험이 도입되자, 아예 시험을 치지 않고 통과시켜주는 부정행위가 생겨났다. 조종사 ㄴ씨는 “인증 절차를 거치지 않고, 면허증에 사인하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비상 착륙 시뮬레이션 시험에서 11차례 추락 사고를 일으켰지만 문제없이 통과한 조종사가 있었다”며 “나중에 이 조종사가 본인의 수법을 나에게 얘기해 줬다”고 말했다.

2008~2019년 파키스탄 항공 사고율. 1백만건 당 발생 회수.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파키스탄 항공업의 안전 불감증은 당국-항공사-조종사 모두에 만연했다. 비정상적 비행 조작이나 비행 패턴을 식별하기 위해 설치된 안전관리시스템이나 비행데이터관리시스템은 일상적으로 무시됐다.

조종사 ㄷ씨는 “파키스탄민간항공청(PCAA)은 일상적으로 항공사의 안전 무시 행동을 묵인했다”며 “감독 당국과 운영자가 한 침대를 썼다”고 말했다. 그는 “규정대로 부품을 싣지 않은 채 비행기가 이륙했고, 정해진 인원보다 적은 수의 승무원이 탑승했다”며 “민간항공청과 항공사 경영진이 공모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규정상 정해진 최대 비행근무 시간을 어긴 경우도 적지 않았다. 파키스탄 항공 규정상 조종사는 최대 18시간 이상 비행근무를 할 수 없도록 돼 있는데, 19~24시간 근무한 경우가 올해만 최소 8건에 달했다.

총체적 부실은 높은 사고율로 나타났다. 파키스탄은 최근 10년 동안 5차례 대형 추락 사고가 발생해 모두 445명이 사망했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자료를 보면, 지난해 파키스탄 항공사의 사고 발생률은 1백만 건당 14.88건으로, 전 세계 평균(3.02건)보다 5배 가까이 높았다. 2014~2016년에 12~15건을 기록했고, 2012년에는 55.35건이나 됐다. 한국은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연간 4건 이하를 유지했고, 2011년이 3.62건으로 가장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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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보다 절약 먼저…연료 아낀 조종사에 최고 노선

파키스탄국제항공(PIA) 소속 조종사들은 높은 고도로 비행하고 착륙할 때는 급하게 하강하도록 교육받는다. 이른바 ‘핫 앤 하이’ 방식으로, 연료를 절약하기 위해서다. 문제는 이렇게 할 경우 안전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조종사 ㄴ씨는 “항공사는 조종사들에게 얼마나 연료를 썼고, 절약했는지 이메일로 기록하게 했다”며 “가장 연료를 많이 아낀 조종사에게 최고의 노선이 배당됐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파키스탄국제항공 조종사들의 착륙 실수가 자주 일어난다. 조종사 ㄴ씨는 지난해 착륙 목표 지점을 벗어난 것만 30차례 이상이고, 3차례 이상은 활주로 자체를 벗어났다고 주장했다. 파키스탄국제항공은 이를 부인했다.

지난 5월 발생한 카라치 주택가 추락 사건도, 항공기가 활주로에서 28㎞ 떨어진 지점에서 관제 센터의 권고보다 2㎞ 높은 3㎞의 고도를 유지했다. 당시 사고가 ‘핫 앤 하이’ 방식의 결과일 가능성이 적지 않은 것이다.

40년 경력의 국제 항공 컨설턴트인 데이비드 그린버그는 “이런 방식은 본질적으로 위험하다. 마치 불안정한 계단을 내려가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지난 5월 사고 여객기와 같은 기종인 파키스탄국제항공의 에어버스 A320 여객기.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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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비상…한국은 파키스탄 취항도, 조종사도 없어

파키스탄과 항공편을 교류하는 국가들은 비상이 걸렸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파키스탄국제항공의 취항을 금지했다.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파키스탄인 조종사가 일하는 국가는 이들의 비행을 금지하고 면허의 진위 여부를 가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 16일 파키스탄 항공부는 외국 항공사에 근무하는 자국 조종사 176명 중 166명은 문제가 없고 10명은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한국은 어떨까? 한국은 현재 파키스탄과 직접 교류하는 항공편이 없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국내 항공사가 파키스탄에 취항하지도 않고 있고, 파키스탄 항공사가 국내로 바로 들어오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중간에 경유편으로 파키스탄 항공사를 이용할 수 있지만, 현재 각국이 조사를 하고 있어 과거처럼 위험한 상황으로 보긴 어렵다.

또 국내 항공사에는 파키스탄 국적 조종사가 한 명도 없다. 국토교통부 통계를 보면, 지난 3월 기준 국내 항공사에는 총 70개국 586명의 외국 국적 조종사가 근무하는데, 이 중 파키스탄 국적 조종사는 없었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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