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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 총리, 야스쿠니 문제도 ‘아베 계승’…첫 공물 봉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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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0-10-17 11:41
수정 2020-10-17 20:12

관방장관 7년8개월 거리 두다가 총리되자 공물 보내
외교적 부담 덜고 정치적으로 참배 효과 노림수
야스쿠니 한국·중국 등 일본 ‘침략 전쟁’ 상징처럼 인식

일본 도쿄 지요다구에 있는 야스쿠니신사. 도쿄/AFP 연합뉴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17일 태평양전쟁 A급 전범 14명의 혼령을 함께 제사 지내는 야스쿠니신사에 공물을 봉납했다. 스가 총리는 아베 정부 시절 관방장관 7년8개월 동안 야스쿠니신사를 참배는 물론, 공물도 보내지 않는 등 거리 두기를 하다가 총리가 되자, 태도를 바꾼 것이다.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은 스가 총리가 야스쿠니신사 가을 큰 제사를 맞아 이날 제단에 비치하는 비쭈기나무(상록수의 일종)인 ‘마사카키’를 바쳤다고 보도했다. 스가 총리가 공물을 봉납한 것은 직접 참배에 따른 외교적 부담을 덜면서 국내 정치적으로는 사실상의 참배 효과를 노린 것으로 분석된다. 직접 참배할 경우 한국과 중국의 거센 반발로 외교적 갈등이 커질 수 있는데, 공물 봉납으로 이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공물 봉납으로 일본 내 우익 세력에는 어느 정도 성의를 표시하는 모양새를 취한 셈이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17일 태평양전쟁 A급 전범 14명의 혼령을 함께 제사 지내는 야스쿠니 신사의 가을 큰 제사(추계예대제)에 “마사카키”(木+神)로 불리는 공물을 봉납했다. 이날 한 여성 참배객이 야스쿠니신사 제단에 비치된 스가 총리 명의의 ''마사카키'' 앞에서 예를 올리고 있다. 도쿄 교도/연합뉴스

아베 전 총리의 경우 제2차 집권을 시작한 이듬해인 2013년 12월26일 한 차례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고, 이후 재임 중에는 한국과 중국을 의식해 봄·가을 큰 제사와 8.15 패전일(종전기념일)에 공물만 봉납했다. 아베 정부를 계승하겠다고 밝힌 스가 총리가 야스쿠니신사 문제도 그대로 답습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도쿄 지요다구에 세워진 야스쿠니신사는 1867년의 메이지 유신을 전후해 일본에서 벌어진 내전과 일제가 일으킨 여러 침략전쟁에서 일왕을 위해 목숨을 바친 246만6천여 명의 영령을 떠받드는 시설이다. 이 가운데 약 90%는 일본의 태평양전쟁(1941년12월~1945년8월)과 연관돼 있다. 이 전쟁을 이끌었던 A급 전범 14명이 1978년 합사 의식을 거쳐 야스쿠니에 봉안됐다. 이 때문에 야스쿠니신사 참배 등은 일본이 침략전쟁을 반성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돼 주변국들의 반발을 불러왔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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