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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이재명 재판과 표현의 자유/ 박용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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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0-05-27 13:54
수정 2020-05-28 02:13

선거 과정에서 허위사실을 공표한 행위는 모두 처벌받아야 할까? 답이 뻔한 질문이라고 여기는 이들도 있겠지만, 미국에서는 꽤 오랫동안 법적 논쟁이 이뤄지고 있는 주제다.

하나의 전환점이 된 것은 2012년 연방대법원의 ‘알바레즈 사건’ 판결이었다. 선거와는 관련이 없는 사건이었지만, ‘어떤 경우에 국가가 거짓말을 처벌할 수 있느냐’는 문제를 다룬 판결이다. 한 지방정부 위원회 소속이던 알바레즈는 회의에서 자신이 해병대 출신이며 훈장도 받았다는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기소됐다. 훈장 수여 경력에 대해 허위사실을 말하면 처벌하는 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연방대법원은 알바레즈의 거짓말은 단지 주위 사람들의 존경을 얻으려는 목적이었다며, 허위사실로 경제적 이득을 취하거나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거짓말에도 표현의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우리 헌법재판소는 이보다 2년 앞서 ‘미네르바 사건’ 결정을 통해 ‘허위사실의 표현’도 헌법이 규정하는 언론·출판의 자유의 보호 영역에는 해당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주목할 것은 알바레즈 사건 판결문에서 이 판결의 취지가 ‘선거 과정’의 허위사실 공표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암시했다는 점이다. 브레이어 대법관은 선거 후보자가 과거의 직책을 현직인 것처럼 홍보물에 표현했다가 피소된 사례 등을 언급하면서, 이런 경우엔 법적인 제재를 하기보다 정확한 사실로 반박하면 해결될 것이라고 했다. 정치 공간에서는 다른 어떤 영역보다 표현의 자유가 강하게 보호돼야 하고, 처벌 가능성 때문에 활발한 토론이 위축되면 민주주의가 위협받는다는 오랜 법리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선거 때 한 말의 허위 여부를 따져 처벌하게 되면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선택적 기소를 할 위험이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알바레즈 사건 판결 이후 실제로 오하이오주 선거법의 허위사실 공표 금지 조항이 위헌 판결을 받았다. 한 시민단체가 후보자를 잘못된 사실로 공격하다 소송 위협을 당하자, 해당 조항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 위헌이라고 맞섰다. 1·2심은 이 경우 표현의 자유를 주장할 수 없다고 판결했으나, 연방대법원은 이를 파기환송했고 결국 하급심 법원의 재심리 끝에 2014년 위헌 판결이 나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우리는 정치적 진실을 정부가 결정하는 걸 원치 않는다. 정부는 이런 권한으로 비판세력을 탄압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민주사회에서는 유권자가 결정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미국의 많은 법학자들이 알바레즈 사건 판결 이후 허위사실 공표를 포괄적으로 금지하는 선거법은 위헌으로 판정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캘리포니아주립대 어바인 로스쿨의 리처드 헤이슨 교수는 허위사실의 유형을 나눠 각각의 제재 필요성을 차등화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첫째, 선거 일시나 장소, 투표 자격 등에 관한 허위사실 유포로 선거 자체를 훼방하는 행위는 표현의 자유가 보호하는 선거운동의 ‘내용’과 관련이 없기에 이를 처벌하더라도 위헌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적다. 둘째, 허위인 줄 알면서 상대 후보의 명예를 훼손하는 발언을 하는 것도 규제가 가능하다. 고의적인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이 표현의 자유를 벗어난다는 건 이미 확립된 법리다. 셋째,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 허위사실(예를 들어 후보자 본인에 관한 허위사실)이 있는데 판단하기가 쉽지 않은 부분이다. 헤이슨 교수는 단순한 사실(본인의 학력, 경력 등)에 대한 거짓말은 표현의 자유로서 보호할 가치가 적은 한편, 상대 후보가 쉽게 반박하고 오히려 거짓말한 행위를 역공할 수 있기에 처벌할 실익도 적다고 한다. 이와 달리 본인에 대한 발언 중 허위 여부를 확연히 가늠하기 어렵거나 입증이 어려운 경우는 정부의 선택적 기소나 교묘한 개입의 위험성이 크기 때문에 이를 처벌하는 법 조항은 위헌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우리도 이런 문제에 대한 법적 판단을 앞두고 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지방선거 당시 토론회 발언이 본인에 관한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돼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 이 지사의 발언은 1·2심에서 유무죄가 엇갈린 만큼 허위 여부에 대한 대법원 판단을 받아야 한다. 나아가 해당 선거법 조항(공직선거법 250조 1항)의 위헌성 여부도 판단을 받게 된다. 이 지사 쪽은 이 조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한 데 이어, 지난 22일 공개변론을 신청하면서 중대한 헌법·법률적 쟁점이 있고 비교법적인 검토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판결 결과에 의하여 1300만명이 넘는 경기도민의 선거를 통한 정치적 결정의 효력이 부인될 가능성”도 근거로 들었다. 앞서 헌법재판소도 해당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 청구를 받아들였다. 대법원이 공개변론을 통해 각각의 쟁점을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박용현 논설위원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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