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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농성’의 추억과 현실 / 곽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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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0-05-31 17:36
수정 2020-06-01 02:40

‘농성’의 뜻은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한자리를 떠나지 않고 시위하는 것”이다. 한국 민주화운동에서 농성은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1970~80년대 학생운동의 대표적인 저항 방식은 기습적으로 시설을 점거해서 농성하는 것이었다. 학내에서는 주로 도서관이 이용됐다. 1983년에는 서울대 황정하 학생이 수십미터 높이의 도서관 난간에서 “독재 타도”를 외치다가 추락사했다.

학외에서는 정치적 상징성이 큰 시설이 목표였다. 1985년 미문화원 점거농성이 대표적이다. 대학생 73명이 “미국은 광주 학살 책임지고 공개 사죄하라”고 요구해 파장이 컸다.

노동운동에서는 와이에이치(YH) 사건이 유명하다. 1979년 8월9일 여성 노동자들이 야당인 신민당에서 일방적 폐업에 항의하며 농성에 돌입했다. 경찰이 강제진압하는 폭거를 저질렀다. 이는 10월4일 김영삼 신민당 총재의 의원 제명, 10월16일 부마항쟁, 10월26일 박정희 암살로 이어져, 유신정권이 막을 내렸다.

지금으로서는 이런 일들이 낯설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1987년 민주화 이전에는 권력과 자본의 횡포에 맞서기 위해 사회적 약자나 운동가가 선택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었다.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씨가 지난 29일 서울 강남역 철탑에서 벌이던 고공농성을 끝냈다. 지난해 6월10일 이후 8520시간(355일) 만이다. 1995년 부당해고로부터는 25년째다.

김씨를 지원하는 ‘공동대책위원회’(대표 임미리 교수)는 삼성과의 협상이 하염없이 늦어지자 지난 24일 이재용 부회장 집 앞에서 시위농성을 했다. 보수언론은 이들이 돗자리에 앉아 삼겹살을 먹고, 술까지 마셨다며 ‘삼겹살·음주가무 투쟁’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김씨가 고공농성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끝내 외면했다.

노동계에서는 여전히 농성이 이어진다. 파인텍 노동자들은 고용보장을 요구하며 2014년부터 830여일 동안 고공농성을 벌여, 세계 최장 기록을 세웠다. 민주화를 이뤘지만 한국 사회가 아직도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구제하는 데 부족함을 보여준다. 당장 삼성전자서비스 등 다른 삼성 해고자 문제도 풀리지 않았다.

곽정수 논설위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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