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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북조선 당국자께, ‘적과의 대화’를 권함 / 권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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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0-06-30 15:13
수정 2020-07-01 02:40

로버트 맥나마라 전 미국 국방부 장관. <한겨레> 자료사진

북조선 당국자께,

북조선은 대남사업을 대적사업으로 전환했다고 밝혔고, 남쪽을 겨냥해 “적은 역시 적”이라며 “갈 데까지 가보자”고 말했습니다. 저는 북조선 당국자에게 “적을 이해하고 계속 대화하라”고 권유하고 싶습니다. 이 말은 베트남전쟁 당시 미국 국방장관이던 로버트 맥나마라가 했습니다.

북조선 당국자께 <적과의 대화>란 책을 추천합니다. 이 책에는 맥나마라 등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과 베트남의 고위 당국자 등 26명이 1997년 6월 베트남 하노이에 모여 3박4일간 벌인 토론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20여년전 총부리를 맞댄 이들이 벌인 토론 주제는 ‘베트남전쟁을 피하거나 혹은 조기에 끝낼 수 있는 기회는 없었는가’였습니다. 이 토론은 ‘하노이 대화’라고 불립니다

<적과의 대화>는 베트남 전쟁이 무지와 오해가 낳은 비극이라고 강조합니다. 미국은 1965년 2월 북베트남에 대한 본격적인 공습(북폭)을 개시하고 베트남에 대규모 지상군을 보냅니다. 1965년 2월6일 미국 대통령 안보보좌관 등이 베트남 정책을 결정하기 전 베트남에 현지 조사를 하러 왔습니다. 다음날인 2월7일 베트남 중부 지역 한 공군기지가 북베트남군의 공격을 받아 미군 8명이 숨졌습니다. 미국은 조사단 도착에 맞춰 북베트남 정부가 벌인 계획적 도발로 단정했습니다. 미국은 이 공격을 계기로 베트남전에 전면 개입했다고 하노이 대화에서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베트남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했습니다. 당시 공군기지 공격은 불과 30명 규모인 게릴라 지휘관이 알아서 결정했고, 북베트남 정부는 전혀 몰랐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에 대해 하노이 대화 미국 참가자들이 ‘못믿겠다’ 고 하자, 베트남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미국은 통신수단이 우수해 군대 지휘명령계통이 집중돼 있지만, 당시 우리는 통신수단이 발달하지 않아 지휘명령계통이 분산돼 있었다. 정부가 어디서 누구를 공격하라고 자세하게 지시하지 않았고, 현장 지휘관이 판단했다. 우리와 미국은 전혀 달랐다.”

하노이 대화 뒤 맥나마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교훈을 두 가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는 우선 적을 이해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적을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비록 상대가 적이라고 할지라도 최고지도자끼리의 대화를 계속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게을리했습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교훈입니다.”

<적과의 대화>는 판단 실수와 오해가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고, 지속적인 대화로 오해와 편견, 무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지난 5월10일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3주년 연설에서 남북협력을 강조했고, 5월12일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이 탈북자 등을 인터뷰해 <북한 인권백서 2020>을 펴냈습니다. 북조선은 말과 행동이 따로노는 남쪽에 대해 ‘엄중한 정치적 도발이며 남북관계를 파국으로 몰아가는 대결 망동’이라고 반발했습니다. 그런데 남쪽이 계획적으로 꾸민 일은 아닙니다. 통일연구원은 지난 1996년부터 매년 <북한인권백서>를 발간해왔고, 올해는 하필 문재인 대통령 연설 이틀 뒤에 책이 나온 것뿐입니다. 당이 선전선동 업무를 장악한 북조선과 달리 남쪽은 각 기관이 알아서 사업하다 생겨난 일입니다.

탈북자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비판한 북한 <노동신문> 기사.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남북관계에서 역지사지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북조선은 지난 21일 통일전선부 대변인 담화를 통해 대남전단 살포 계획을 밝히며 “이번 기회에 남조선 당국자들이 늘상 입에 달고 사는 역지사지의 립장에서 똑같이 한번 제대로 당해보아야 우리가 느끼는 혐오감을 조금이나마 리해하고…”라고 밝혔습니다. 역지사지는 ‘너도 한번 당해보라’는 속좁은 앙갚음이 아닙니다. ‘내가 그런 처지였으면 나 역시 그랬을 것이다’라는 폭넓은 배려입니다.

끝으로 북조선 당국자께 권고하건대, 남쪽을 향해 발언할 때에는 단어를 사려깊게 선택하고 상대를 보아가며 말을 가려서 하기 바랍니다. 남쪽 사람들은 길고 험악하게 말하지 않고 짧고 정중하게 이야기해도 말귀를 알아듣습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권혁철 논설위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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