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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모든 아이들을 위한 학교, 가능하다 / 이병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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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0-09-16 17:11
수정 2020-09-17 02:42

이병곤 ㅣ 제천간디학교 교장

교육제도는 아이들의 삶과 배움을 지원하기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현실은 앞뒤가 뒤바뀐 채로 흐른다. 아이들은 제도의 그늘 아래 시들어간다. 진심으로 교육 변화를 원한다면 변죽만 울리지 말고 핵심을 치고 들어가야 한다. 두 가지에 주목해 보자.

첫째, 모든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에 집중하라. 전국 유초중등 교육기관에는 610만여명의 아이들이 재학한다. 교사는 49만여명이다(교육통계연보, 2019). 올해는 48만여명의 대입 수험생들이 ‘하늘대학’(SKY) 입학 정원 1만여 자리를 포함하여 상위권 대학 합격을 두고 경쟁을 벌일 것이다. 서열에서 밀려난 98% 학생들은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정부 예산의 18.7%인 7조5천억원을 공교육비로 사용하고 있음에도 공평하게 점심 급식을 제공하는 일 외에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좌절감을 안겨주고 있다.

이 역설을 뒤집기 위해서는 누구든지 자신의 성장 목표를 이루도록 학교교육 체제를 바꿔야 한다. 교육 당국의 숱한 연구보고서에 이미 나와 있다. 학생과 학부모들은 ‘인격체로서 존중받는 민주학교’ ‘개인의 개성과 관심사를 중심으로 배우는 학교’를 선호한다. 이들의 요구를 실현할 학교를 만들도록 혁신해야 한다. 쉽지는 않겠지만 사례가 없지도 않다. 국가 도움 없이 풍찬노숙하며 새로운 교육문화와 교육방식을 자발적으로 일궈온 비인가 대안학교들의 실천이 대표적이다.

며칠 전 고2 아이들 다섯명과 함께 ‘300단어로 도전하는 영어회화’ 수업을 진행했다. 한 아이가 ‘화장실 가고 싶다’는 표현을 무척 독특하게 했는데, “그 정도면 화장실 못 가고 당장 실례해야 할 정도로 급한 것”이라고 말해줬더니 모두 깔깔대며 웃었다. 다 큰 녀석들 데리고 이제 겨우 초등영어 수준 말하기를 하고 있는 거 아니냐며 독자들은 비웃을지 모른다. 그렇지 않다. 얼마 전 줌(Zoom)으로 열린 국제 민주교육 세미나에 토론자로 초청되었던 우리 졸업생 한 명이 당당하게 자기 이야기를 영어로 표현했다. 인생은 실전이다. 자기 삶을 펼쳐갈 때 영어나 기예, 인문학 등이 꼭 필요한 요소로 떠오르면 아이들은 배움에 굶주렸던 사람인 양 폭발적으로 학습량을 쌓아간다.

둘째, 아이들의 잠들어 있는 내면세계를 깨워 각자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찾도록 한다. 오늘날 한국에서의 학교는 배움으로부터 가장 안전한 도피처가 되었다. ‘수능 포기. 건들지 마셈!’이란 팻말을 세워두고 책상 위에 엎어져 있는 고3 아이를 그 누가 흔들어 깨울 수 있으랴. 그 아이는 단지 시험을 포기했을 뿐인데, 왜 배움까지 멈췄을까. 시험 바깥에 존재하는 배움을 경험한 적이 없던 탓이리라.

우리는 대개 교실이나 학교 밖에서 삶의 디테일을 배운다. “우리들은 교사의 개입 없이도 말하는 것, 생각하는 것, 사랑하는 것, 느끼는 것, 노는 것, 저주하는 것, 정치에 관여하는 것, 그리고 일하는 것을 학습했다.” <학교 없는 사회>의 저자 이반 일리치가 오래전 했던 말이다. 아이들은 알기 원한다. 그것을 왜 배워야 하는지, 자신에게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그것을 해낼 만한 시간이 충분한지, 그 배움이 자신의 삶과 얼마만큼 연관이 깊은 것인지. 그것을 말해주거나 시도할 마음이 생길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고, 시험이라는 제도부터 들이밀며 다그친다.

나는 보았다. 무너진 가정과 학교의 싸늘한 눈 흘김 사이에서 자존감을 잃고, 공부의 이유를 상실한 어린 영혼들을. 그들을 뒤늦게라도 돌보고자 마련한 전국의 ‘위탁형 대안교육기관’과 ‘공립 대안학교’ 및 숱한 ‘위(WEE) 센터’들을. ‘영혼을 끌어모아’ 분투하느라 스스로의 마음에 큰 생채기를 안고 사는 도시형 비인가 대안학교 현장의 교사들을.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우리 교육 현장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다. 학교는 두 개의 ‘대란’ 앞에 직면했는데, 돌봄과 대학입시 문제가 그것이었다. 긴 가정학습 기간 동안 학생들은 ‘학교 급식과 친구들이 그립다’는 반응을 많이 보였음에도 ‘교과 지식이나 선생님과의 교감이 목말랐다’는 증언을 발견하기 힘들었다. 자본이라는 수레바퀴가 잠시 멈춘 사이 세상의 기반이 크게 흔들렸다. 덕분에 우리는 짤막한 ‘철학의 순간’을 맞았다. 미래가 불투명한 시대에 학교는 왜 존재하는가? 모든 아이들의 성장을 보장하는 행복한 교육체제를 구체화시켜 보자. 케이(K)-교육, 불가능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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