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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문제는 오늘날 제도화된 성차별·성폭력의 연결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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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0-08-18 04:59
수정 2020-08-18 20:33

젊은 연구자·활동가 좌담

지난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사옥에서 ‘위안부’ 운동의 젊은 연구자·활동가들에게 바람직한 운동 방향과 ‘포스트 피해자 시대’에 대한 의견을 묻는 좌담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최나현 한베평화재단 활동가, 백시진 전 정대협 활동가, 최성용 문화비평가.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지난 5월7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 이용수 할머니가 30년간 함께해온 정의기억연대(정의연)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연 뒤 ‘위안부 운동’은 전례없이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정의연의 ‘회계부정’ 의혹을 제기하는 보도가 쏟아지고, 한편에선 30년 위안부 운동의 방향을 되묻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이 할머니에게 정치적 배후세력이 있다고 음모론을 내놨고, 누군가는 위안부 운동이 피해자를 이용해왔다고 비난했다.

공방이 이어지는 동안 운동의 미래를 고민하는 젊은 연구자와 활동가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이들은 없었다. 위안부 피해 생존자가 사라져가는 시기에 운동에 뛰어든 이들은 최근 몇달 동안의 사태를 어떻게 바라봤을까. <한겨레>는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려 운동하고 연구해온 세 사람을 초대해 의견을 들어봤다. 중앙대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와 일본군 ‘위안부’ 연구회에서 활동해온 백시진(31)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전국 대학생 프로젝트 동아리 평화나비네트워크에서 활동한 최나현(27) 한베평화재단 활동가, 위안부 운동을 고민해온 최성용(31·성공회대 국제문화연구학과 박사과정) 문화비평가가 좌담에 함께했다.

증언에 나설 수 있는 위안부 피해자가 대부분 사라져가는 시기에 이 운동에 뛰어든 젊은 연구자·활동가들은 “피해자만이 증언자는 아니다. 우리 모두 그들을 기억하는 2차 증언자가 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아울러 “위안부 문제는 여성에 대한 성착취와 폭력의 문제이므로 오늘날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여겨지는 일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고 짚었다.

진행 “정대협이 피해자를 이용했다”는 이용수 할머니의 발언 뒤 기존 위안부 운동이 피해자의 뜻을 제대로 존중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어떤 마음으로 지켜봤나?

백시진 안타까웠다. 특히 답답했던 건 ‘피해자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며 ‘피해자 중심주의’를 강조한 언론이나 사람들 역시 각자의 입맛과 주장에 맞춰 할머니 말씀을 부분적으로만 인용했다는 점이다. 2차 기자회견에서 할머니가 예정에 없던 발언을 40분 동안 이어갔다. 할머니의 의도를 더 깊이 이해하려면 그렇게 긴 발언 가운데 각자 의도에 맞는 대목만 선택적으로 인용하지 말고 할머니의 과거 발언들이나 생애사 등을 함께 고려하며 고민하고 해석해야 한다. 하지만 정작 쏟아진 건 무의미한 스트레이트 기사뿐이었다.

최성용 할머니가 하고자 했던 말씀의 본뜻이 아니라 할머니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진영화된 욕망만 발견한 시간이었다. 정의연을 비판하기 위해 할머니의 발언을 끌어왔던 세력들은 정작 할머니가 지난 7월 이나영 정의연 이사장을 만나 대화하고 손잡았던 것에 대해선 언급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 뒤에 배후가 있다는 의견도 할머니의 주체성을 무시한 주장이다. 피해자 중심주의를 강조한 이들이 되레 피해자를 가장 납작하게 만들어 무시하지 않았나 싶다.

진행 기존의 위안부 운동을 비판하는 쪽에선 피해자 중심주의를 굉장히 강조하고 있다. 연구자, 활동가로서 고민이 될 것 같다.

최나현 피해자 중심주의는 ‘피해자의 관점’을 강조하는 접근법이지, 피해자에게 판단 전체를 위임하거나 피해자의 말이 전적으로 옳다고 믿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피해자와 활동단체 사이에 당연히 이견이 발생할 수 있고, 이번 이용수 할머니의 발언처럼 피해자가 활동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설 수 있다. 갈등이 빚어졌을 때 피해자와 활동가는 대화를 통해 서로 오해를 풀어나가고, 사회는 그런 협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더 나은 지향점을 찾는 데 동참해줘야 하지 않을까. 갈등 상황 자체를 문제시하고 피해자와 활동단체의 관계가 완전무결해야 한다고 여길수록 그 안에서 피해자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제한적으로 생각하게 될 위험이 있다.

진행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논란이 일어난 뒤 지난 5월 페이스북에 “무조건 피해자 앞에서는 고개를 숙여라”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최나현 사실 피해자만큼이나 활동가도 주체적인 의지와 욕망을 지닌 사람인데 아직 사회에서는 물론이고 활동단체 안에서도 이런 생각을 갖기 어려운 것 같다. 사람 두 명이 만나도 서로의 생각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게 당연한데, 활동가는 ‘피해자에게 한발 양보해야 한다’, ‘피해자를 대하기 위해선 도덕적 결함이 전혀 없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자기검열을 많이 하는 편이다. 어떻게 하면 피해자·활동가 모두의 주체성과 다양성을 건강하고 투명하게 드러내면서 운동을 이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 꾸준히 고민을 이어나가야 할 것 같다.

최나현 한베평화재단 활동가.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피해자와 활동가 이견 조율 사회가 지켜보며 동참해 주길 가족들·연대자·가해자 등 증언 주체 확장 노력도 필요

진행 피해자와 활동가가 갈등할 수 있다는 점을 받아들인다 해도 지향이 다르거나 단체에 등 돌린 피해자를 운동은 어떻게 껴안아야 할까. 국민성금으로 세워진 ‘기억의 터’에서 정의연을 배척한 일부 할머니 이름이 지워지는 등 정의연이 입장에 따라 피해자를 선별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백시진 피해자의 의견을 하나로 통일할 수 있다는 기대를 버려야 한다. 특히 위안부 피해자는 현재 살아 있는 생존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김학순의 첫 증언으로 위안부 피해가 공론화되기 전에 숨진 이들, 피해를 세상에 알리고 나서지 못한 이들까지 모두 포함하면 피해자를 하나의 집단으로 상정하는 건 불가능해진다. 모든 위안부 피해자가 운동단체 한 곳에만 속해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최성용 사실 처음 피해자를 ‘선별’한 건 활동단체가 아니라 일본 정부다. 1995년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을 받겠다고 동의한 피해자에게만 당시 일본 총리의 사죄 편지가 전달되는, 이른바 ‘조건부 사죄’를 하고 피해자를 일본 정부의 의향에 따라야 할 객체로만 여겼다. 여기서 피해자 간의 분열, 피해자와 활동가 간의 갈등이 빚어진 측면이 크다. 이런 측면을 배제한 채 일본 정부를 비판하던 활동단체에 되레 피해자를 선별했다는 혐의를 덧씌우는 것은 부적절한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진행 정의연 중심의 기존 위안부 운동이 지나치게 민족주의적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백시진 위안부 문제를 민족주의적 관점으로만 접근하는 것도 문제지만, ‘민족’이라는 변수를 제외하면 사안을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일본 제국이 위안부를 동원·대우한 방식 등이 인종, 민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1948년 인도네시아 바타비아에서 열린 전범재판에서는 아시아 여성을 제외한 네덜란드 여성에 대한 폭력만을 처벌하기도 했다. 이처럼 인종, 민족 열쇳말을 고려하지 않으면 폭력의 양상이 왜, 어떻게 다르게 나타났는지 간과할 위험이 있다. 운동 초기에 한국교회여성연합회와 윤정옥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위안부 문제를 처음 파고들게 된 계기도 일본인들의 ‘기생관광’ 문제다.

백시진 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활동가.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할머니들 말씀 이해하려면 과거 발언·생애 함께 고려를 민족주의 관점 빼고 본다면 폭력의 양상 포괄적 이해 못해

진행 그럼에도 기존 운동이 ‘친일’과 ‘반일’의 이분법으로 위안부 문제를 접근했다거나, 대중의 민족주의 정서에만 호소해왔다는 비판은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최나현 기존 운동에서 ‘순결한 민족의 딸이던 피해자들이 일제에 짓밟혔다’는 식의 민족주의 수사가 쓰였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이유로 운동이 모두 민족주의적이었다고 얘기하는 건 수십년 운동의 역사를 지워버리는 것이다. 운동도 당대 사회적 상황과 인식에 영향을 받다보니 시기별로 목표나 활동 양상이 다르게 나타난다. 지금보다 더 한국 사회의 민족주의가 공고하던 시기에는 운동 역시 민족주의적 지향을 나타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의연을 중심으로 한 기존 운동이 대중의 지지와 동력을 얻기 위해 사회 저변에 깔린 민족주의 정서를 활용하려고만 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정의연의 운동은 젊은 활동가들의 문제 제기와 기존 활동가·증언자들의 끊임없는 성찰을 통해 민족주의적 관점의 한계를 지적하고 보편적 여성인권 차원으로 시야를 넓혀 전세계의 또다른 성폭력 사안과 연대해왔다. 가령 김복동·길원옥 할머니의 의지로 결성된 ‘나비기금’은 콩고, 우간다, 베트남 등의 전시 성폭력 피해 여성과 아동을 지원하는 데도 쓰이지 않았나. 평화나비에서 한베평화재단으로 넘어가 활동하고 있는 나 자신도 산증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최성용 “정의연을 공격하는 자가 토착왜구”라는 식으로 극단적인 구호를 외치는 소수 진보진영 지지자들 외에는 위안부 문제 해결에 실질적인 관심을 기울이는 이들이 소수였다. 이 점은 우리 사회 한계이기도 하지만, 운동이 뼈아프게 자각하고 나아가야 한다.

최성용 문화비평가.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30년전 김학순 용기있는 증언 한국 미투운동의 소중한 자산 지금 성폭력 피해자들에 힘돼 위안부 문제해결 되레 현재형

진행 이번 논란 이후 피해자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시민사회의 요구는 더욱 커졌다. ‘포스트 피해자 시대’의 운동이 넘어야 할 벽은 더 높아진 느낌이다.

백시진 위안부 문제를 소수의 개인에게만 벌어진 피해로 생각하지 말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제도화된 성차별·성폭력으로 인식해야 한다. 일본군 위안부 제도 이전에는 국가가 합법적으로 또는 암묵적으로 여성의 몸을 관리하고자 했던 ‘공창제’가 존재했다. 이후엔 ‘군인들의 성욕은 해소돼야 한다’는 인식 아래 국가 차원에서 기지촌 여성들의 성매매가 묵인되고 적극 장려되기도 했다. 이런 역사는 오늘날 많은 남성들이 룸살롱 등 성매매 업소에 가서 결속을 다지는 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위안부 운동이 과거에서 현재까지 이어지는 성차별·성폭력의 연결고리를 더 구체화해 세상에 알려나갈 필요가 있다. 위안부 문제가 오늘날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여겨지는 일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

최성용 김학순의 증언은 한국 미투운동의 소중한 자산이기도 하다. 지금도 많은 여성들이 두려운 와중에 성폭력 피해를 증언하고 공론화해야 할 상황에 놓인다. 이들에게 30년 전부터 이미 용기 내어 피해를 알려온 이들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면 큰 격려가 되지 않을까. 위안부 피해자와 활동단체가 함께 협력하고 충돌하며 연대를 통해 성장해온 지난 수십년의 역사 역시 많은 성폭력 피해자·연대자들에게 소중한 교육 자료가 될 수 있다. 김학순의 증언을 단순히 ‘최초의 미투’라고 수식하는 것을 넘어서서 이들의 경험을 끊임없이 오늘날의 언어와 감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최나현 ‘증언’의 주체를 확장해나가는 방식도 생각할 수 있다. 증언은 피해자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피해자의 생애를 옆에서 지켜봐온 가족들, 오랫동안 피해자 곁에 서서 증언을 돕고 연대해온 이들, 직접적 피해를 입진 않았지만 피해자의 증언을 통해 자신 안의 비슷한 트라우마를 발견한 이들도 위안부 문제의 훌륭한 증언자가 될 수 있다. 심지어 그간 ‘가해자’로 규정돼온 사람들 역시 ‘말하기의 장’에 초대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베평화재단도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피해자와 함께 참전 군인들의 목소리도 수용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국가가 초래한 전쟁 상황에서 피해자와 가해자를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데는 무리가 있지 않은가. 실제로 위안부 운동 역시 자신의 가해 경험을 고백하고 위안소의 위치나 운영 방식 등을 알린 일본군 남성들의 증언을 통해 일본 정부의 책임을 더 명확히 규정할 수 있었다.

진행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에 연구·활동의 초입에 섰다.

최나현 평화나비 운동을 2013년 시작했다. 운동가로서 운 좋게 피해자를 직접 만날 수 있었던 마지막 세대다. 그래서인지 대학생들과 얘기를 나눠보면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아도 내 또래보다 더 위안부 문제를 과거의 문제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위안부 문제를 기억과 추모의 대상으로만 접근해 과거에 묶어둬선 안 되겠다고 절감한다. 과거와 현재, 위안부 문제와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등 또다른 성폭력 문제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경계인이 되려 한다.

백시진 선배 활동가가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알아버린 책임이 있다”는 말이다. 나는 이미 위안부 문제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성폭력의 고리를 알아버렸다. 이렇게 된 이상 ‘알아버린 책임’을 이행할 수밖에 없다.

최성용 인종학살 범죄에 묵인·동조해온 독일 사회에 대한 내부적 비판도 당대가 아닌 68혁명 이후 청년 세대에 의해서였다. 위안부 문제 해결도 이미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일이다.

진행·정리 박윤경 기자 yg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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