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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_진리에게_복숭이가…우리의 우울은 왜 가라앉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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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0-10-18 08:42
수정 2020-10-18 09:04

[토요판] 기획
가수·배우 설리 1주기

그가 세상을 떠나도 변하지 않은 세상
애절하게 그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
아이유는 설리 향한 노래를 불렀고
티파니는 여성 아이돌 고통을 전했네

코로나 이후 늘어나 10~20대 여성
우울증, 자살률 수치는 무얼 말하나

설리 인스타 갈무리

▶ 가수 겸 배우였던 설리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지났다. 지난해 가을, 설리의 죽음 이후 여성들은 서로를 향해 구조 신호를 보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해야 한다는 다짐이 이어졌지만, 설리의 절친 구하라는 친구와 다르지 않은 이유로 세상을 떠났다. 지난 14일 설리의 1주기를 즈음해 국회의원부터 청소년까지 설리를 기억하고 사랑하는 이들의 추모가 이어졌다. 미디어 스타트업 <뉴닉> 에디터 천다민(안평)이 그 분위기를 전한다.

한 사람을 잃었다고 단번에 세상이 바뀌는 것도 이상하지만, 비슷한 이유로 여럿을 잃고도 세상이 여전하다는 것도 참 이상한 일이다. 가수 겸 배우로 활동했던 설리(본명 최진리·25)가 세상을 등진 지 1년이 지났다. 세상은 여전하다. 이상하고, 혼란하다. 변하지 않았다.

당당하고 용감했던 이 시대의 셀러브리티(유명인) 설리가 지난해 세상을 떠나던 날엔 여성들의 추모와 안부 묻기가 메아리처럼 울렸다. 며칠 전이었던 그의 첫 기일(14일)에는, 아직 그를 잊지 않은 사람들의 메시지가 에스엔에스(SNS)를 타고 흘렀다. “#사랑하는_진리에게_복숭이가 #Remember_sulli” 그를 기억하겠다는, 당신 이름을 마음에 꼭 박아두겠다는 수많은 이들의 목소리가 웅성거렸다. 설리는 떠났지만, 기억과 상처는 그대로 남아 있어서 우리는 마치 빚을 다 갚지 못한 사람들처럼 그의 이름을 여전히 부른다. 고인과 절친했던 가수 아이유는 그가 죽기 전, 고인을 모티브로 한 노래를 두 곡 만들었고 그 노래들은 설리의 찬란하던 시절을 대변하듯 사람들의 입에서 되풀이된다. 그는 가고 없고, 그를 향한 노래만 남아 흐른다. “뭐랄까 이 기분 널 보면 마음이 저려오네 뻐근하게/ 오 어떤 단어로 널 설명할 수 있을까 아마 이 세상 말론 모자라”(아이유, ‘복숭아’ 중).

그들을 잃을 수밖에 없는 이유

설리가 떠난 지 49일도 되지 않아 세상은 설리의 친구였고, 동료였던 여성 한명을 더 떠나보냈다. 그의 영전에서 “그 세상에서 진리가 하고 싶은 대로”라고 추모했던 구하라였다. 죽기 며칠 전, 에스엔에스에 올린 ‘잘 자’, 그게 마지막 인사가 될 줄은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걸그룹 출신 가수 ㄱ씨가 투신을 시도하려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 소방구조대원들에게 구조되는 일도 있었다. 그는 연습생 때부터 팀원들에게 따돌림을 당해 우울증과 공황장애, 불면증에 시달렸다고 폭로했다. 하지만 대중은 도리어 그를 향해 악플을 달았다. 대중의 관심은 손쉽게 폭력과 무자비함으로 치환된다. 하지만 세상이 그들을 잃거나, 잃을 뻔한 것이 비단 악플 때문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설리 인스타 갈무리

“초등 시절부터 아이돌로 키워지면서 몸의 통제를 많이 겪었을 것이고, 무성적 존재이기를 기대받으면서 끊임없이 성적 대상화가 되는 모순의 정중앙에 있는 어려움도 컸을 것입니다.” 설리의 1주기를 맞아 그를 애도하며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의 일부다. 한국 사회는 여성 아이돌을 향한 폭력에 익숙하다. 브래지어를 하지 않는 자신의 일상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는 이유로 설리에게 돌을 던졌고, 왕따 피해를 호소하는 여성 연예인에게 ‘관심을 끌고 싶은 거냐’며 악플을 달았다. 가혹했고, 혹독하다. 그들이 내내 아름답기를 바라면서도, 팬들이 아닌 다른 누군가와 연애 감정을 주고받거나 연애 관계를 맺는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워하며 비난을 장전한다.

10년 전인 2010년 여성가족부의 조사에 따르면 연예인으로 활동하거나 연예인을 지망하는 이들 중 상당수가 다이어트와 성형수술, 특정 신체 부위의 노출을 강요당했다고 한다. 설문에 참여한 여성 청소년의 60%가 다리, 가슴, 엉덩이 등의 신체부위 노출을 강요당했다고 응답했다. 학교에 다니고 있는 응답자 중 50%에 가까운 이들이 한 학기 동안 1주일에 반나절 이상 학교 수업을 받지 못했다고 답하는 등 실태도 열악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극한의 경쟁 상황 속에 놓여 있는 아이돌 연습생들이 제대로 된 학교 교육을 받으며 사회적인 인간으로 성장할 기회를 얻도록 구조적 개선을 하는 대신 성적 대상화와 외모지상주의가 강조되는 업계의 관성대로 두는 한, 이들을 근본적으로 안전하게 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우리 사회가 여성 아이돌을 비롯한 여성에 대한 폭력에 고민과 관심이 더 깊어져야 할 것입니다. 한편 설리가 어려움을 이겨내려고 노력했던 방향은 다른 여성 아이돌에게 힘과 용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브래지어는 액세서리일 뿐이다’라는 선언같이 자신을 공격하는 혐오적 편견을 패러다임을 바꾸는 방식으로 대응하면서 여성주의적 자의식으로 단단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정리해내는 모습이 좋아 보였습니다.”(권인숙 의원 페이스북 글 일부)

설리 인스타 갈무리

자꾸만 죽는다, 여자들이

친구 같던 스타들을 잃은 뒤에는 백신 없는 질병이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피폐하게 하는 계절이 이어졌다. 자꾸만 죽는다. 여자들이.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전달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은 이들 중 10대 여성은 3년간 250%, 20대 여성은 240% 넘게 늘었다. 올 상반기 여성 자살률 역시 적지 않게 늘었다. 총 1924명이 목숨을 잃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7.1% 늘었다. 남성이 6.1% 감소하고, 전체 사망자가 2.4% 줄어든 걸 고려하면 극적인 수치다.

“친구들이 밤중에 전화를 걸어오면 ‘같이 있어 줄까?’ 하고 바로 물어봐. 그냥 두는 게 더 불안해. 무슨 일이 생길 수도 있단 걸 본능적으로 안다고 해야 하나.” 20~30대인 내 주변의 많은 친구들도 우울증을 앓고, 병원에 다닌다. 서로를 걱정하며 손을 뻗어보지만, 근본적인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고서는 우리의 우울도 쉽사리 가시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다.

2020년 10월15일, 뉴스 하나. 고 구하라를 폭행하고 협박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최종범(29)씨가 징역 1년형을 확정받았다. 동의 없이 신체 부위를 촬영한 혐의는 유죄로 인정되지 않았다. 뉴스 둘.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배포한 텔레그램 대화방에 현직 교사들도 돈을 내고 들어가 있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이들은 모두 담임 교사를 맡은 적이 있는, 초등학교·고등학교·특수학교 교사였다. 뉴스 셋. 집 곳곳에 놓인 해바라기 조화 뒤에 카메라를 숨겨 두 딸을 불법 촬영한 새아버지가 경찰에 붙잡혔다.

살고 싶다는 느낌표보다,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물음표가 먼저 온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늙은 여자가 될 수 있을까. 죽지 않고 함께 늙어갈 수 있을까. 그나마의 위안이 있다면, 싸우는 여자들이 여전히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거다.

여전히 최진리를 그리워한다

지난 9월10일 방영된 문화방송(MBC) <다큐플렉스> ‘설리가 왜 불편하셨나요?’ 편에는 스물다섯에 삶을 마감한 설리의 생애가 담겼다. 동료이자 친구였던 가수 티파니와 설리의 어머니가 출연해 여러 이야기를 풀어놨다. 다큐멘터리에는 설리의 여러 면모가 담겼다.

월경할 때는 좋은 걸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5억원어치의 생리대를 어려운 가정 환경에 있는 아이들에게 기부하며 여성과 약자에게 연대했던 설리, 갑자기 키가 확 커버려 몸무게가 늘어났다며 울상이었던 어린 연습생 설리,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연인을 만난다는 이유로 성적인 악플에 시달려야 했던 20대 초반의 설리, 인스타그램에 노브라 사진을 올리며 ‘브래지어는 액세서리라고 생각한다’며 당당히 말하던 설리, 인스타 라이브 방송에 나와 “오해하지 마, 나 나쁜 사람 아니야”라고 쓸쓸히 말하던 설리. 그 모든 모습이 설리의 것이라는 걸,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했던 설리 그 자체였다는 걸 사람들은 왜 그를 보내고 나서야 곱씹을까.

걸그룹 소녀시대로 10년 넘게 활동을 이어온 티파니의 한마디는 어쩌면 설리를 포함한 수많은 여성 연예인이 현장에서 겪고 있는 고충을 함축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알고 보면 저를 포함해서 모두가 도움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을까요.”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설리가, 최진리가 그립다. 이름 모를, 여전히 도움이 필요한 수많은 설리들의 슬픔이 아쉽다.

천다민(안평) 미디어 스타트업 <뉴닉>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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