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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그 겨울의 해프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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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0-11-20 07:59
수정 2020-11-20 10:11

유서 써놓고 가출했던 12살
“삶은 드라마처럼 되는 게 아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처음으로 물이 얼어붙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다. 지난밤 내렸던 빗물이 넓게 고인 그 골목의 웅덩이에서. 초겨울의 발자국처럼, 잔잔하고 매끄럽던 수면에 가로등 불빛이 작은 알갱이가 되어 떠다녔다. 물이 어는구나. 나는 불이 꺼진 어느 집 대문 앞에 쭈그려 앉아 오래 있었다. 엉덩이에도 겨울이 걸어가는지 자꾸 가려웠다. 지금 돌아보면 너무 무겁고 수없이 많아서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결론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고민이었는데, 막상 이제는 그날의 방황이 구체적으로 기억나지 않는다. 첫얼음이 얼었다는 기사를 볼 때마다 문득 숨고 싶어지는 것도 그 어린 날의 부끄러운 치기 때문이다. 열두살 즈음이던가, 아무튼 초등학교 겨울방학이 막 시작한 무렵. 시작은 비장했으나 아무도 모르게 소박한 최후를 맞았던 인생 최초의 가출이었다.

타고난 성향의 탓이었는지 아니면 세기말이라는 분위기가 던져준 어딘지 모를 혼란과 두려움 때문이었는지. 어찌 되었든 간에 나는 그때 ‘유서’를 연습하고 있었다. 탁하고 깜깜해진 기억을 들여다보면, 당대의 분위기는 ‘Y2K’로 인한 사회적 혼란이나 세계 종말에 대한 허무맹랑한 음모론 같은 이야기들이 만연했다.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수많은 정보를 찾아볼 수 있었던 때도 아니고, 어린 내게는 텔레비전 뉴스와 친구나 어른들에게 주워듣는 세상의 일들이 의심할 수 없는 진실이었으므로, 연도 표기의 네 자리 숫자 중에 가장 앞 숫자가 바뀌는 날이 오는 순간 낙관하기 힘든 미래와 함께 나 역시도 이전처럼 살 수 없으리라는 불안을 크게 느꼈던 것 같다. 그때 보았던 어느 드라마의 주인공이 가족에게 유서를 쓰고 사라졌고, 못되게 굴었던 가족들이 울부짖으며 사라진 주인공을 찾으며 깊게 반성하는 모습이 왜 하필이면 인상 깊었던 걸까. 하여간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은 모든 게 이상하리만큼 극단적으로 느껴진다. 당시 가요들의 가사들만 봐도 그렇다. ‘하늘이 널 데려가거나, 비라도 내리면 구름 뒤에 숨어서 네가 울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하거나….’ 왜 그 시절 사람들의 사랑했던 연인들은 그렇게 다 세상을 떠나갔는지. 특히 내가 좋아했던 가요는 가수 야다의 ‘진혼’이라는 곡이었는데 ‘그대를 따라서 이 세상 떠나가려 해 오 우리 사랑 영혼까지 함께해’ 같은 무서운 가사가 있다.

아마도 생명이라는 상태가 가장 본질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극단이 죽음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명을 ‘있음’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하면 죽음은 있음의 ‘없음’이 된다. 생과 사를 동양철학에서는 공존과 순환이라는 개념으로도 얘기하고 이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우며, 자연스럽다는 것은 인간과 세상에 선하고 좋은 일이라고도 얘기하는데 아무튼, 있었던 것이 없어지는 일은 그것을 소유하고 있던 주체들의 가장 큰 상실이 되고 상실은 슬픔의 가장 그럴싸한 알리바이가 된다. 슬픔을 생활에 악영향을 주는 부정적인 측면으로만 받아들이고 시급히 극복해야 할 문제점 같은 것으로 생각하지만 않는다면, 슬픔이야말로 어떤 현상과 존재를 두고 가장 깊게 침잠하여 사유할 수 있는 감정적 계기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욕망은 늘 가지지 못한 쪽을 향해 작동하면서 구멍 난 주머니처럼 끊임없이 비어버리니까. 수많은 예술가의 우울과 비참함을 빗대어 예술가들의 축제에는 폭죽에서도 울음소리가 난다고 우스갯소리를 하는 데에는 모종의 진실이 숨어 있다. 세기말 인류가 지난 세기를 반성하고 새롭게 오는 미래를 기대하거나 두려워하면서 느꼈던 주된 감정이 아무래도 상실감이었던 건 그런 면에서 타당하게 여겨지고, 그 시절 여러 장르의 문화 환경에서 지금까지 거론될 만큼 농도 짙은 수작들이 배출되었던 이유도 이해가 된다.

그러나 어린 나의 유서는 사실상 유서는 되지 못하고 엄마와 아빠를 향한 투서에 가까웠다. 어렴풋이 기억하기로는 거의 스케치북 한 권 분량을 뜯어내고 겨우 한장을 완성했는데, 효과적인 투정을 위해 빨간색 색연필로 적었던 기억이 있다. 그것도 아주 큼지막한 글씨로 날짜까지 적어서. 나름 고뇌하며 짧은 생을 회고하고 펑펑 울기도 하면서 꽤 진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용이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대충 이제 나는 죽으러 가겠다, 엄마와 아빠의 잘못이다, 빌려 온 만화책은 책방 아저씨가 반납하라고 전화하면 돌려줘라, 찾지 마라, 같은 내용을 적었던 것 같다.

어렸던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이유로 아빠는 거의 집에 오지 않거나 집에 오는 날이면 엄마와 싸웠고, 밤이면 안방에서 들리는 고성이나 물건들이 깨지는 소리에 심장이 눈꺼풀에 달린 것처럼 콩닥거리는 두 눈을 이불로 가리고 필사적으로 자는 척을 하던 날들이었다. 아침이면 깨진 유리 조각을 말없이 쓸어 담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처음에는 무서웠고, 슬펐고, 나중에는 화가 났다. 지금까지도 노동하는 엄마는 그때도 마찬가지로 아침에 나가서 저녁이 되어서야 집으로 왔다. 오후의 빈집에서 동생과 둘이서 군대 다녀온 사촌 형이 가르쳐준 ‘뽀글이’(봉지 라면에 그대로 뜨거운 물을 부어 먹는 군대 간식)를 끓여 먹으려다가 엎지르는 바람에 부엌을 난장판으로 만든 날, 엄마는 동생을 화상의 위험에 빠뜨린 나를 격하게 질책했고 여러모로 최선은 내가 스스로 목숨을 인질로 잡는 편이 아닐까 하는 어리석은 생각에 도달한 것이 계기였다. 부모가 없는 부재의 시간을 그래도 동생과 함께 씩씩하게 견디려던 마음이 일순간에 무시당했다고 여겨졌다. 사실 뽀글이는 동생이 먹고 싶다고 한 건데. 나는 가족과 세상을 향한 고통과 증오에 진지하고 엄숙했다.

다음 날, 엄마가 출근한 후에 완성된 유서를 책상 위에 아주 잘 보이게 올려놓고 나는 가출했다. 이제 죽으러 가야 한다는 현실에 서러움이 복받쳤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는 막막함에 오열했다. 모은 용돈을 다 털어서 그동안 한 번도 1등이 나오지 않던 문방구 호박엿 뽑기에 올인했다. 그런데도 1등이 나오지 않았고, 세상이 나를 정말 버렸다는 확증을 그 문방구에서 실감했다. 더러운 세상. 나는 겉옷 주머니에 5등짜리 작은 호박엿을 가득 쑤셔 넣은 채로 이 죽음에 기필코 성공해서 가족과 세상에 복수하리라 다짐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하지? 당시에는 아파트들에 현관 출입 장치 같은 것이 없었으므로, 아파트 옥상에 먼저 올랐다. 아찔했다. 고소공포증 때문에 포기. 도로에 뛰어들까? 그러다 어설프게 살아나면 끔찍하다. 포기. 독약이 가장 깔끔하고 고통스럽지 않은 방법일 텐데. 살충제를 생각하고 꽃집 앞을 어슬렁거렸으나 뽑기에 돈을 전부 털어 넣었으므로, 포기. 어느덧 겨울 해가 넘어가고 있었고 종일 돌아다닌 나는 지쳐서 어느 집 대문 앞에 앉아 호박엿을 까먹으며 물웅덩이만 보고 있었다.

늘 그렇듯이 삶은 드라마처럼 되는 게 아니다. 그 주인공은 목숨을 끊으려는 찰나 가족에게 발견되고 마음을 돌린다. 서로를 향한 반성과 위로와 고백이 교차하고 주인공의 삶은 간신히 화목에 도달한다. 그러나 나는 아직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았다. 나를 찾고는 있는 걸까? 초등학생이 외박을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시간을 확인할 방법이 없어 꽤 깊은 밤이 되었다고 생각했고 지금 집에 가면 무심하고 바쁜 엄마가 자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혹시나 나의 유서를 보고 엄마와 아빠가 눈물을 흘리며 밖을 돌아다니고 있을지도. 날이 너무 추웠고 배가 고팠다. 당시 집은 지상 주택이었고 창문으로 분위기를 염탐할 생각에 돌아가던 차에, 집 앞에서 퇴근하던 엄마와 마주쳤다. 겨울의 낮은 짧았고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흐르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엄마는 내 유서를 발견도 못 한 셈이다. 추운데 왜 나와 있냐고 밥 먹게 들어가자는 말에 나는 자연스럽게 집 안으로 들어갔다. 문제는 동생이었다. 내가 말도 없이 나가버리자 궁금했던 동생은 기어코 내 책상 위의 유서를 발견했고 혼자 가슴을 졸이고 있었던 것이다. 동생은 내가 감행했던 범행을 엄마에게 모조리 고발했고, 엄마는 이 어이없는 협박범과 대화할 가치도 느끼지 못했다. 김치찌개를 한가득 끓여 놓은 밥상에서 그래, 너도 죽고 나도 죽자, 한마디로 훈방 처분을 받은 나는 그날 밤에 조용히 유서를 찢어 버렸다.

그 어떤 문제라도 시간이 약이라는 말과 세월이 해결해준다는 말을 가장 싫어한다. 어떤 불행은 돌덩이를 쪼개는 식물의 뿌리처럼 시간을 따라 천천히, 그렇지만 분명하게 사람의 마음을 쪼갠다. 불행 앞에 시간과 세월을 처방으로 들이미는 말은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관심에서 치워버리려는 의도를 포장하기도 하니까. 그러나 유년의 두렵고 절박했던 어느 겨울을 피식 웃으며 말할 수 있게 된 지금은 조금 믿기도 한다. 이 모든 일이 해프닝이었음을. 앞으로 겪을 모든 삶이 어느 날에선가 전부 해프닝이었다고 말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때의 누군가에게 만약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다면, 우리의 식탁에는 촛불 한자루와 얼음이 녹고 있는 아이스커피가 놓여 있을 것이다. 체온은 얼음을 녹이는 법이다. 허망하고 안타까운 죽음이 도처에서 보이는 요즘, 나는 당신이 오래 해온 결심을 번복할 수 있는 용기 없고 우유부단한 사람이기를 바란다. 그래도 괜찮다. 그게 훨씬 괜찮다.

최현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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