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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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75m 굴뚝 위…여기 사람이 있다

홍기탁과 박준호, 이 땅의 어떤 노동자에 대한 기록이다.

금속노조 파인텍(옛 스타케미컬)지회 해고노동자. 둘은 2017년 11월 12일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에 올랐다. 이들은 회사가 임금협상과 단체협상에 대한 2016년 합의 사항을 이행해야 한다며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파인텍의 고공농성은 처음이 아니다.

'2016년의 합의 사항'도 국내 최장기 고공농성 기록이라는 408일 간의 투쟁으로 끌어낸 결과였다.

2014년 5월 차광호 스타케미컬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대표는 더 이상 “땅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며 하늘에 올랐고, 그가 굴뚝 끝에서 버티는 동안, 땅에서는 동료들의 치열한 투쟁이 이어졌다.

2년4개월이 흐르고서야 회사는 노조와 새 법인 설립, 고용·노조·단협 승계에 합의했다.

이 합의로 만들어진 법인이 현재 파인텍이다.

그러나 2016년 1월 재가동된 공장에서 회사와 노동자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견디다 못해 그해 가을, 노동자들의 파업이 시작됐고, 공장은 문을 닫았다.

일터에서 내쫓긴, 아무도 봐주지 않는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누구나 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

굴뚝으로 향하는 길 밖에 없었다.

홍기탁, 박준호 씨가 경북 구미 한국합섬(스타케미커의 전신)에 입사한 때는 각각 1995년, 2003년, 푸르던 20대 청춘이었다.

굴뚝에선 두 사람도, 그 동료도 이제 중년이 되었다.

Chapter 2
굴뚝의 하루

오전 7시- 제자리 뛰기와 스트레칭, 좁은 공간이지만 가벼운 운동으로 일상을 시작한다. 물티슈로 땀을 닦고 땅에서 올려준 옷으로 갈아입는다.

오전 10시- 동료들이 올려준 아침 겸 점심을 먹는다. 얇은 끈에 매달려 굴뚝을 오르는 이 도시락.

식사 뒤에는 전력질주 제자리뛰기와 팔굽혀펴기, 앉았다 일어나기를 200개씩 하며 다시 굳은 몸을 푼다. 운동을 마치고 책을 펼치나 집중하기는 쉽지 않다.

10~20분씩 끊어서라도 책을 읽는다. 오후 5시 저녁식사를 마치고 해가 저물면 굴뚝 아래 동료들과 지지 문화제를 연다. 이들의 하루는 매일 생활계획표처럼 일정하다.

“시간표를 짜서 철저하게 지키지 않으면 몸도 마음도 무너진다.”

먼저 굴뚝에 올랐던 차광호의 당부였다. 굴뚝집의 하루도 금세 간다며 밝게 말하는 홍기탁의 목소리가 견고한 그의 마음으로 들렸다.

Chapter 3
이 땅, 맨 처음 고공농성

“고무 공장에서 일하는 우리는 고무 냄새 때문에 늘 코가 얼얼하고 머리가 아픕니다. 그렇게 열심히 일했는데 회사에서 우리들의 임금을 내리겠다고 합니다.

우리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파업을 시작했습니다. 파업을 시작한 뒤 우리는 계속 공장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돈을 못 받아 굶어 죽으나 파업하다가 굶어 죽으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싸웠습니다.

그러자 회사는 5월 28일 경찰을 불러 밤 11시에 우리들을 회사 밖으로 내쫓았습니다.

나는 시장에서 광목을 사서 줄을 만들었습니다. 그 줄을 타고 12미터나 되는 을밀대 지붕 위로 올라와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나는 이곳에서 9시간 반이나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우리들 임금이 깎이는 것만 걱정하지 않습니다. 우리 임금이 깎이면 다른 고무 공장 노동자들의 임금도 깎일 것입니다. 나는 많이 배우지는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권리를 포기해서 다른 사람에게까지 피해를 줄 수는 없습니다”

1931년 5월28일,

평양 평원고무공장 여성노동자 강주룡이 임금삭감 철회를 요구하며 평양 을밀대 지붕에 올라 호소한 말이다.

이는 ‘체공녀(滯空女·하늘에 머물러 있는 여성)’로 불리는 최초의 고공농성 기록이다.

평양 경찰서로 끌려간 강주룡은 76시간 단식 등 농성을 이어갔지만, 옥살이의 후유증 탓에 1932년 서른 살의 나이로 요절했다.

Chapter 4
평범한 일상을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들

이정윤 씨(41)는 아침 7시 고1 홍은솔, 중1 석범, 초등학교 6학년 이솔이를 깨운다. 오늘 아침상엔 잡곡밥과 콩나물국, 김치가 올랐다.

엄마가 차린 상 주위로 눈곱을 매단 아이들이 올망졸망 앉았다. 국에 밥을 말아, 후루룩후루룩 식사를 마친 아이들은 각자 등교 준비를 하고, 차례대로 집을 나선다. 그렇게 아이들이 집을 나선 뒤에야 비로소 정윤 씨는 자신의 출근을 준비할 수 있다.

아버지의 부재로 세 남매의 돌봄은 오롯이 그녀의 몫. 간단한 집 정리와 설거지를 마치고 나면 출근 준비라고 해봐야 간단한 화장 정도.

어린이집 교사인 그녀가 꽉 찬 하루를 보내고 종일 함께 한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갈 무렵, 기다렸다는 듯이 엄마의 퇴근 시간에 맞춰 막내 이솔이에게 전화가 온다.

“엄마, 나 집 앞 주차장이야. 같이 올라가요.”

“응, 그래”

그녀는 웃으며 막내를 ‘엄마 스토커’라 불렀지만,

모두 안다.

한참 동안 돌아오지 못하는 아빠 대신 엄마 품이 더더욱 간절한 막내의 마음을.

저녁을 준비하려는 정윤 씨의 전화기가 울렸다. ‘미시타홍’이란 발신자명.

“아무래도 내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잖아. 정윤이가 주말에 부모님 좀 찾아뵈었으면 해서.”

한참 동안 돌아오지 못하는 아빠 대신 엄마 품이 더더욱 간절한 막내의 마음을.

어버이날이지만 부모님도 찾아가지 못하니, 주말에라도 인사를 드렸으면 한다는 말이다. 굴뚝 위 마음을 헤아리는 정윤 씨는 “알았어요”라고 답한다. 짐을 함께 나눠질 이는 부재해도 자식으로서, 또 부모로서의 도리는 고스란히 그녀의 몫으로 남아, 남편 없이 지내는 올해 5월은 더욱 만만치 않다.

이정윤 씨는 굴뚝 위 홍기탁 씨의 아내다.

Chapter 5
내려오는 길을 만드는 연대

“저 일상 속으로 들어가는 게 참… 쉽지가 않네.”

말수 적은 박준호 씨가 지난 겨울 굴뚝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한 말이다.

“땅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며 올라간 그 길도 험하디 험했지만 내려오는 길은 찾을 수조차 없다.

Chapter 6
벌써 1년이 지났다

두 차례의 장기 고공농성이 이어지며 몇 번의 계절이 무심히 바뀌었다. 새로운 요구 사항도 아니다. 했던 약속을 지키라는 노동자들의 외침에 회사는 모르쇠로 외면하고 있다.

자유로운 지상에서도 견디기 힘들던 혹한과 폭염을 택할 수밖에 없던 이들. “노동자들이 굴뚝까지 올라가야 했던 절박한 마음을 많은 분들이 알아줬으면 한다”라는 박준호 씨의 바람은 여전히 한결같다.

차광호 파인텍지회장, 김옥배, 조정기씨 등 동료 노동자들은 모회사인 서울 목동 스타플렉스 본사 사무실에서 김세권 스타플렉스 대표의 면담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노동·시민사회단체 연대체인 ‘스타플렉스(파인텍) 투쟁 승리를 위한 공동행동’은 목동 스타플렉스 사무실과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가고 고공농성장 지킴이 등으로 활동하는 ‘파인텍 하루 조합원’ 운동과 온라인에서 파인텍 노동자들을 응원하는 ‘#파인텍하루조합원’ 해시태그 달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사람이 설 수 없는 곳에, 함께 살자 절규하며 두 사람이 올라간 지

지금도 그들을 저 굴뚝에 둔 채 계속 시간이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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