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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려 하지 않는 야구는 불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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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1-07-16 04:59
수정 2021-07-16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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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문학상 수상작 ‘불펜의 시간’

불펜의 시간
김유원 지음/한겨레출판·1만3800원

스포츠의 핵심에는 경쟁과 승부가 있다. 상대를 눌러 이기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는 점에서 운동경기는 전쟁을 닮았다. 스포츠 중계에 전쟁 용어가 난무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다만 정해진 규칙 안에서 경쟁을 벌이고 그 규칙을 어기면 처벌을 받는다는 점에서 스포츠는 전쟁과 자신을 구분한다. 스포츠를 가리켜 승화된 전쟁이라 이르는 것이 그런 맥락에서다.
“이기는 것을 욕망하지 않는 스포츠를 하기로” 마음먹은 프로야구 선수를 등장시킨 소설 <불펜의 시간>으로 제26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김유원 작가. “무너지지 않고 나아간 세 인물 덕분에 내 안에도, 그리고 누구에게나 눈 둘 곳이 있단 걸 알게 되었다”고 ‘작가의 말’에 썼다. 한겨레출판 제공

그런데 여기, 이기는 것에 관심이 없는 운동선수가 있다. “패배자를 만드는 일에 소극적이기로” 결심하고 그 결심을 실행에 옮기는 프로야구 선수가 있다. 제26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김유원의 소설 <불펜의 시간>의 주인공인 투수 권혁오의 이야기다. 그 어느 분야보다 경쟁이 치열하고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프로 스포츠에서, 상대를 패배자로 만들지 않으면서 자신을 입증하고 유지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아니 그것이 타당한 일이기는 한 걸까. 권혁오는 어쩌다가 ‘미션 임파서블’에 가까운 야구 철학을 지니게 된 것일까. <불펜의 시간>은 이렇듯 엉뚱해 보이는 질문들의 연원과 답을 찾아 나선다.

소설의 중심에는 권혁오가 있지만, 그를 둘러싼 두 인물이 서사를 풍성하게 만든다. 혁오의 중학 시절 야구부 동료였지만 지금은 투자금융 회사의 6년차 주임으로 있는 준삼, 초등학교 야구선수였지만 중학 이후로는 여자 야구부가 없다는 이유로 야구선수의 꿈을 포기하고 대신 스포츠신문 기자가 된 기현이 그들. 소설은 세 사람의 이야기를 번갈아 가며 권혁오식 야구 철학의 원형과 변주를 보여준다.

고졸 최고 연봉을 받으며 프로에 입단한 혁오는 신인왕을 거쳐 엠브이피까지 일찌감치 ‘예약’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기대주. 그러나 선발 데뷔 경기에서 단 하나의 스트라이크도 잡지 못하고 3실점한 뒤 1회에 강판당하고 만다. 신인선수가 긴장한 탓이라 여긴 투수 코치가 며칠 뒤에는 선발이 아닌 계투로 그를 마운드에 올렸지만, 역시 세 타자 연속 볼넷을 내주고 교체된다. 연습할 때에는 그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하며 까다로운 볼을 뿌리던 혁오가 막상 경기에 나서면 전혀 다른 선수로 돌변하는 데에는 엄마 친구의 아들이었던 진호의 존재가 있다. 재능 있는 타자로 어려서부터 혁오를 라이벌로 여기며 경쟁하고 도발했던 그가 고교 마지막 경기에서 혁오에게 완패한 뒤 불의의 사고로 죽게 되자 그의 환영이 마운드의 혁오를 쫓아다니게 된 것. 진호의 환영을 뿌리치기 위한 숱한 시행착오를 거친 뒤 혁오는 마침내 답을 찾는다.

“경기 중간에 등판해 한 이닝, 많으면 두 이닝을 던지고 내려가는 계투, 앞서 던진 투수가 자신에게 넘겨준 점수를 그대로 다음 투수에게 넘겨주는 걸 목표로 하는 투수가 되기로 했다. (…) 스스로에게 내리는 벌인 동시에 죄책감과 회의를 느끼지 않고 야구를 계속하기 위한 규칙이었다.”

진호와 같은 불행한 패배자를 만들지 않으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야구를 계속하기 위한 ‘자기만의 리그’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이기는 것을 욕망하지 않는 스포츠를 하기로” 마음먹자 컨디션도 회복되어 원하는 대로 공을 던질 수 있게 된다. 그렇지만 점수가 1, 2점 차로 박빙인 경기나 마지막 회 마무리 투수로 등판해서는 전혀 딴판으로 볼넷을 남발하는 바람에 “멘탈이 약해서 결정적일 때 무너지는” 투수로 각인된다.

결정적인 순간에 어처구니없는 볼넷을 남발하는 그에게서 승부조작의 냄새를 맡고 기현이 접근한다. 기현은 혁오의 팀 후배들이 연루된 실제 승부조작 녹음 파일을 제시하며 혁오의 ‘자백’을 요구하지만, 혁오의 이야기를 듣고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기사를 작성한다. “이기는 것의 가치만 강조해온 사회에 경종을 울릴 만한” 이 인터뷰 기사는 그러나 편집장의 손질을 거쳐 혁오의 승부조작 고백으로 둔갑해 발표되고, 그에 항의하던 기현은 결국 신문사를 그만두기에 이른다.

휴대폰 영상으로 혁오의 아름다운 투구 폼에 감탄하며 하루를 시작하곤 하던 준삼은 “침전되어 있는 관행과 악취 나는 비리”로 얼룩진 회사의 현실에 실망하고 좌절한 끝에 자의 반 타의 반 퇴사하고 만다. 복수노조 허용 법안을 악용한 회사 쪽의 노조 분열 공작, 실적 저하를 빌미 삼은 구조조정과 비열한 퇴사 압박은 프로야구의 살벌한 경쟁과 잔인한 도태 시스템을 빼닮았다. 기현을 비롯한 기자들에게 끊임없이 압박을 가하는 특종과 클릭 수의 부담도 마찬가지.

“기자님, 이기는 게 중요할까요? 얼마나 중요할까요? 무엇보다 중요할까요?”
제26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장편 <불펜의 시간>의 작가 김유원. 한겨레출판 제공

기현에게 던진 혁오의 질문들에 이 소설의 핵심이 담겼다. 스포츠에서 이기는 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만’ 중요한 것은 아닐 테다. 이기는 것에 최우선적 가치를 두는 태도에 반기를 든다는 점에서 <불펜의 시간>은 박민규 소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떠오르게 한다.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는 철학(?)으로 1할 2푼 5리의 경이로운 승률을 기록했던 삼미슈퍼스타즈의 사례에서 우리는 배울 것이 있지 않겠는가. <불펜의 시간>과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함께 읽으면 흥미로운 독서 경험이 될 법하다.

<불펜의 시간>의 세 주인공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그러나 본질에서는 통하는 이유 때문에, 각자의 자리에서 물러나 새 길을 찾는다. “야구를 그만둬야 할 위기에 처한 이들의 패자부활전”이라 할 독립 리그에 둥지를 튼 혁오의 사례는 그렇다 치더라도, 신문사를 그만두고 에스엔에스(SNS) 기반 활동을 택한 기현의 경우에 특히 마음이 쓰인다. “SNS에만 올려도 파급력이 있는데 왜곡의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언론을 만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기성 언론은 ‘왜곡’과 연결되고 에스엔에스가 파급력을 보장한다는 이런 인식은 물론 기현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2021년 현재 한국 언론의 상황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겠기 때문이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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