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이라는 종족공동체, 만들어진 신화

등록 2022-01-14 04:59
수정 2022-01-14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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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역사학자가 쓴 문제작
출애굽, 강제추방 등 근거 없어…
유대인은 종족 아닌 종교공동체
국가 건설 위해 민족사 창조해내

지난해 4월 이스라엘 텔아비브 시민들이 독립 73년을 맞아 폭죽 등으로 기념 축제를 벌이고 있는 모습. 텔아비브/AP 연합뉴스

만들어진 유대인
슐로모 산드 지음, 김승완 옮김, 배철현 감수 l 사월의책 l 3만4000원

제목 ‘만들어진 유대인’(원제는 ‘유대인은 언제, 어떻게 발명되었는가’)에서 쉽게 유추되거니와 이 책은 유대인이란 이름의 민족은 허구라는 주장이 뼈대다. 지은이는 이스라엘 텔아비브대학교 역사학 교수로 폴란드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2살 때 부모와 함께 이스라엘로 이주해 성장한, 유대인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좋게 말하면 내부고발이고 나쁘게 말하면 민족에 대한 배신행위다.

유목민 한 떼가 이집트를 탈출한다. 이들은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이주해 다윗과 솔로몬의 위대한 왕국을 건설한다. 이후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의 침공을 받아 오랜 노예 생활을 한다. 풀려난 이들은 돌아와 예루살렘을 재건하지만 로마 지배 하에서 자기 땅에서 또다시 추방된다. 이후 2천년 동안 세계 곳곳으로 흩어져 유랑한다. 하지만 핍박 속에서도 정체성을 유지하다가 마침내 ‘약속의 땅’에 다시 나라를 세운다. 흔히 알려진 유대인 약사다.

지은이는 이스라엘 건국으로 귀결되는 디아스포라 서사가 시온주의자들의 조작이라고 공표한다. ‘추방과 귀환’으로 요약되는 유대교 관념에 꿰맞춘 드라마라는 것.

모세가 전사 60만명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정착했다는 출애굽기. 전사 1명에 5인 가족이 딸렸다 치면 300만이 40년 동안 사막을 떠돌 이유도 없고 실제라면 흔적이라도 있을 텐데, 성서 외에 고고학 자취도 문헌 기록도 없다. 구약대로라면 그 무렵 가나안은 파라오의 지배를 받고 있었으니 모세의 무리는 이집트를 탈출해 이집트로 갔다. 진격나팔을 불어 함락시켰다는 여리고성. 당시 그곳은 성벽은커녕 별 볼 일 없는 작은 마을이었다. 지은이는 출애굽 서사를 위대한 문화 중심지에서 뿌리를 찾으려는 촌뜨기의 노력이 빚은 신화라고 본다. ‘민족의 시조’라는 아브라함이 메소포타미아 칼데아 우르에서 기원했다는 이야기와 같은 구조다. 우르는 고대 근동의 파리였다.

다윗과 솔로몬의 황금기 역시 근거가 없다. 유대인과 이슬람인이 성지로 삼는 동예루살렘 하람 알 샤리프 주변 어디를 파 보아도 기원전 13세기에 왕국이 존재했다는 흔적이 없다. 솔로몬이 재건했다는 북쪽 세 도시에서 발굴했다고 주장하는 ‘솔로몬 성문’은 기원전 10세기 이후의 건축 양식을 따른다. 구약이 영광스럽게 기술하면서도 왕국의 이름을 거명하지 않은 것도 수상쩍지 않은가. 그 무렵 유다 지역에 정치적 실체가 있었다면 작은 부족국가이고, 예루살렘은 요새화한 근거지 정도였을 거라는 추정이다. 위의 두 창작 드라마의 속내는 “우린 너희 밥풀떼기들과 달라”라는 유대인들의 종족적 으스대기일 뿐이다.

바빌론 집단 이주와 로마 시대의 추방도 ‘뻥’이다. 유다왕국을 정복한 바빌로니아인들은 그들의 정복지로부터 주민 전체를 이주시키는 일을 하지 않았다. 농작물을 생산하고 세금을 바치는 ‘땅의 사람들’을 그 땅에서 뿌리 뽑는 일은 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백만명을 한꺼번에 장거리 이동시킬 수단도 없었다. 물론 전 지역에 걸쳐 엘리트들을 골라서 이주시켰을 수는 있다. 로마 시대도 마찬가지다. 기원후 로마에서 일어난 유대전쟁과 바르 코크바 반란 뒤에도 추방은 없었다. 이러한 추방 신화는 후발 종교인 기독교에서 흡수했다는 게 지은이의 주장이다. 예수를 십자가에 매단 데 대한 징벌로서의 유랑이 그것이다.

2천년 유랑의 산 증거라는, 유대인의 전세계적 분포에 대하여 지은이는 다른 견해를 제시한다. 이들은 핏줄을 공유하는 유대인이 아니라 유대교로 개종하여 종교를 공유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헬레니즘 세계에 속하지만 최초의 일신교 국가인 하스몬 왕조(기원전 142~63년). 제사장들은 천년 이상 정체성을 유지해온 모압, 암몬, 에돔인을 유대교로 강제 개종시켰다. 아랍인의 스페인 정복 때 북아프리카 베르베르인들과 함께 스페인에 들어간 유대교가 ‘세파르디’ 유대인의 기원이 됐다. 동방의 코카서스에 있던 유대왕국 하자르가 동유럽 ‘아시케나지’ 또는 이디시어를 쓰는 유대인의 기원이 되었다. 유대인들이 그토록 배척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따지고 보면 유대인과 다르지 않다. 7세기경 아랍인이 팔레스타인을 점령한 뒤 이슬람으로 개종한 수십만 유대 농민들의 자손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지난 7일 요르단강 서안에 위치한 헤브론의 도심에서 이스라엘 군인이 팔레스타인 시위자들을 구금하는 과정에 몸싸움을 벌이고 있는 모습. 이스라엘은 헤브론에 있는 정착민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이곳에 군대를 주둔시켜 왔다. EPA/ABED AL HASHLAMOUN/연합뉴스

종교공동체로서의 유대인이 종족공동체로 탈바꿈한 배후에는 시온주의자들이 있다. 19세기 독일 아리안주의, 러시아와 동유럽의 슬라브주의가 소수자 유대인을 타자화하여 탄압하자 그에 맞선 사람들이 일으킨 거울상이다. 1940년대 말 세계는 나치의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유대인을 위한 피난처로서 국가 설립에 공감했다. 시온주의 국가의 첫 임무는 토착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몰아내는 일이었다. 그리고 구약 신화의 사료화와, 땅을 팔 때마다 신화와 일치하는 증거를 찾아낸 고고학자의 노력으로 자랑스러운 민족사를 창조해냈으며 유전학자의 맹활약으로 유대인의 고유한 디엔에이(DNA)를 추출해 냈다.

현재 이스라엘은 민주주의 국가라고 보기 힘들다. 시민의 ‘민족’은 국가가 결정한다. 이교도와의 결혼은 허용되지 않으며 토요일과 유대인 축제일에는 대중교통이 운행하지 않는다. 아랍계의 토지소유권은 종종 무시된다. 이스라엘 사회는 ‘선택된 백성’ 이미지를 폐기할 용의가 있을까? 상상에 가까운 역사나 미심쩍은 유전학의 이름으로 자신을 고립시키고 타자를 배제하는 일을 그칠 수 있을까? 지은이의 생각은 부정적이다.

유대인과 이스라엘 이야기인데 자꾸 한국을 돌아보게 한다. 단일민족 신화와 외국인 혐오, 그리고 우파 기독교인의 행태.

임종업 <뉴스토마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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