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골 수의사’가 사는 법…“돈벌이 욕심에 묻힌 ‘동물 고통’ 막아야”

등록 2022-08-02 19:09
수정 2022-08-03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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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에세이집 펴낸 ‘시골 수의사’ 허은주 원장

허은주 원장이 집에서 함께 사는 앵무새와 사진을 찍었다. 허은주 원장 제공

“병원에 온 동물들을 보면 애틋한 마음이 있어요. 동물은 의사 표현을 못 하잖아요. 동물이 처한 상황은 사람의 입을 통해 전해집니다. 그런데 동물의 고통은 대부분 과소 표현됩니다. 동물은 본능적으로 아픈 것을 숨기거든요. 천적에 노출되지 않으려고요. 사람과 함께 산 시기가 짧은 고양이가 더욱 그래요. 저는 직업 때문에 동물이 숨기려는 고통에 보호자들보다 더 민감하죠. 치료가 잘 되어 동물이 걷게 되면 기쁘면서도 애틋해요. 그동안 참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해서요.”

최근 에세이집 <꽃비 내리는 날 다시 만나>(수오서재)를 낸 ‘시골 수의사’ 허은주 원장에게 ‘책을 보니 곳곳이 눈물이더라. 동물병원엔 원래 사람의 눈물이 많냐’고 하자 “다른 수의사들도 비슷할 것”이라며 이렇게 답했다.

대학 시절 학생운동을 하다 페미니즘에 눈을 떠 여성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그는 뒤늦게 수의학을 공부해 7년째 전북 정읍시에서 동물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외대 3학년 때 학내 단체인 여학생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그는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격투하는 여성의 몸-체험과 여성 주체성에 대한 연구’로 석사 논문을 썼단다. 그 뒤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3년 가까이 성평등 강사로도 활동했다. 석사 논문을 쓸 때 직접 택견 등 무예를 배워 ‘여성주의 자기훈련 방어’ 강의도 했단다.

지난 1일 전화로 허 원장을 만났다.

성평등 강사 시절 사람들과의 소통에서 무력감과 피로감을 느껴 어릴 때 꿈꿨던 수의사의 길로 들어섰다는 그는 책에서 사람이 만들어내는 동물의 고통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고통의 상당 몫은 동물을 상품처럼 거래하는 인간의 상행위에 뿌리를 둔다. 한 농장주는 펫숍의 ‘인기 상품’인 불도그 ‘생산’을 위해 생후 2개월 강아지를 마취도 하지 않고 귀를 자르는 ‘수술’을 한다. 사람이 좋아하는 모양으로 귀를 만들기 위해서다. 열흘 뒤 귀가 퉁퉁 붓고 피고름이 흐르는 이 강아지를 데리고 동물병원을 찾은 농장주는 2개월 된 강아지는 통증을 못 느낀다고 들어 그렇게 했다고 변명했다. 그는 이 ‘거짓말’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면서 이렇게 썼다. “강아지들은 백신을 위한 작은 바늘이 피부를 살짝 뚫는 것도 아프다고 소리 지르고 발버둥을 친다. 이는 통증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이고 생존을 위한 타고난 감각이다.” 한 펫숍 주인은 배꼽탈장이 있는 치와와를 아무런 설명 없이 판 뒤, 보호자가 허 원장 병원에 와서 뒤늦게 사실을 알고 반품을 요구하자 “그 병원 앞으로 잘 되나 봅시다”라고 협박하기도 했단다.

<꽃비 내리는 날 다시 만나> 표지.

“병원을 열 때만 해도 어렴풋했는데 지금은 반려동물을 상품처럼 거래하는 행위를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요. 개·고양이 농장의 지저분한 환경에서 암컷은 반복적으로 강제임신하고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펫숍 투명창에 전시되어 쉽게 팔립니다. 펫숍 주인은 어미 동물이 출산 전에 어떤 일을 겪었는지 절대 말하지 않아요.” 그는 “인간 때문에 자연선택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무릎 슬개골 탈구’와 같은 유전질환을 지닌 고양이들이 태어나 큰 고통을 겪고 있다”며 “돈벌이를 위한 동물의 강제임신도 금지해야 한다”고 했다.

반려동물의 고통을 키우는 데는 충동적인 입양 결정도 한몫한단다. “동물의 생장 사이클을 잘 알고 거기에 맞춰 준비하면 사실 큰 문제가 없어요. 개는 5살까지는 병원에 올 일이 없어요. 그 뒤로 한두 군데 아프기 시작해요. 하지만 예방 접종을 하고 당뇨와 같은 질병을 조기 발견하면 나이 들어도 치료에 큰돈이 들지 않아요. 그런데 오랫동안 신경 쓰지 않다가 종양을 키워 병원에 와선 ‘24시간 응급실’로 가야 한다고 하면 개한테 큰돈 들이고 싶지 않다면서 안락사시켜달라고 해요.”

‘격투하는 여성의 몸’ 여성학 석사 받고
한국성폭력상담소 ‘성평등 강사’ 활동
뒤늦게 수의학 공부해 동물병원 7년째

“동물들 본능적으로 통증 숨기는 습성”
“수익 위한 반복적 강제임신 금지를”

“동물학대 의심 때도 의무신고해야”

그는 병원에서 의사가 아동학대로 의심할 만한 정황을 확인하면 반드시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것처럼 동물병원에서도 의료진의 신고 의무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최근 경험인데요. 한 고교생이 비료 포대 안에 담긴 고양이를 데리고 왔어요. 한쪽 눈 각막이 예리하게 찢겼더군요. 수술했지만 눈을 살리지 못했어요. 그때 어어 하다 지나갔는데 그 학생이 다시 비슷하게 눈이 다친 고양이를 데리고 왔어요. 처음에 신고했더라면 두 번째 피해를 보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더군요.”

어릴 때 역시 동물을 좋아한 아버지가 여기저기서 데려온 반려동물들 덕분에 “충만하고 완벽한 시간을 느꼈다”는 그는 지금 앵무새 한 마리, 개 두 마리와 함께 산다. 지금도 성평등 사회 구현을 위해 애쓰는 상담소의 옛 동료들에게 미안함을 느낀다는 그는 수의사로서 현재 삶에 대체로 만족한다고 했다. “제가 병원에서 만나는 보호자들은 대부분 말 못하는 동물에 대한 연민이 있는 분들입니다. 어제는 잘 걸었는데 오늘은 오른쪽 다리를 살짝 절었다고 걱정해 병원에 데리고 오는 분들이죠. 그래서 그분들과 편하고 부담 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요. 아주 작은 차이가 있다면 ‘어디까지 치료할 것인가’ 문제이죠.”

동물병원에서 가장 힘들었을 때와 가장 즐거웠을 때를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길고양이가 늘 가장 큰 문제입니다. 한번은 캣맘이 돌보는 길고양이 다섯 마리가 연이어 이웃이 담에 설치한 유리 조각 때문에 복부를 다쳐 왔어요. 수술하기 힘들 정도로 내부 장기 손상이 심했죠. 끔찍했어요. 기아와 탈수로 죽을 것 같던 어린 고양이가 병원 치료를 받고 고개를 들어 올릴 때는 너무 좋아요. 심장이 두근두근하죠.”

그는 인터뷰 끝에 반려동물을 만나고 싶다면 유기동물구조센터에서 인연을 만드는 것을 권한다고 했다. “반려동물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함께 사는 동물을 세상에 하나뿐인 특별한 존재,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존재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니까요.”

서울에서 난 허 원장은 전북대 수의대를 나와 정읍에서 동물병원을 열었다. “수의대 시절 고창 선운사에 흠뻑 빠졌어요. 거기에 가면 너무 좋아 제가 생각하고 느낀 게 다 포맷(삭제)되는 것 같았죠. 병원 개업 장소로 선운사 근처를 찾다 가장 가까운 정읍에 열었죠.” 허은주 원장 제공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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