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사 담겠다” 막무가내 머물며 그린 ‘먹붓 걸작’

등록 2022-09-23 07:00
수정 2022-09-24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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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형석의 작품의 운명]
화가 박대성의 ‘불국설경’

라크마 비캄빌딩 1층 홀에 전시중인 박대성 작가의 대표작 <불국설경>(1996). 노형석 기자

“불국사를 담아야 합니다. 방 하나 주십시오. 어떻게든 여기서 1년간 살면서 절집을 그릴 겁니다.”

“허허 이렇게 막무가내로 하시면 안 되지요.”

26년 전인 1996년 11월 어느 날 새벽이었다. 안개 자욱한 경북 경주 토함산 자락의 신라 명찰 불국사 경내 사무실에서 한창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소리를 높이는 이는 쉰살을 넘어갈 즈음 미국 뉴욕에서 유학을 때려치우고 돌아온 혈기방장한 장년 한국화가 박대성. 부리나케 절집 앞으로 찾아와 문을 두드리면서 황당한 요구를 내놓은 것이다. 전날 불국사에 닿자마자 매혹돼 눈과 마음이 꽂혔으니 1년간 먹고 자면서 사찰 곳곳의 전각을 그릴 요사채 방을 달라고 떼를 쓴 것이다. 주지 스님이 출타해 대신 그를 맞은 부주지 스님은 황당해했다. 새벽에 절 문을 열고 찾아온 첫 손님이 희한한 요구를 하자 난감해하던 그가 답했다.

“절에는 묵을 요사채가 3채밖에 없습니다. 묵는 것도 주지 스님을 비롯한 절의 승려들과 대중회의를 해서 허락할지 결정해야 합니다. 회의할 테니 기다려보시렵니까?” “물론입니다.”

반드시 절 안에서 작업하면서 불국사 화업을 이루겠다고 굳게 발심한 박대성은 허락이 떨어지지 않으면 절 마당에 주저앉아 붓을 들 요량이었다. 다행히도 얼마 지나지 않아 주지 스님의 전갈이 왔다. 담담한 내용이었다. “방을 내드리기로 했소. 내 비록 그림을 모르나 심각한 사정이 있는 게 분명하니 당신의 본분을 이루도록 돕는 게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불국설경>(1996). 노형석 기자

지난 7월부터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뮤지엄(라크마)에서 열리고 있는 박대성 작가의 초대전에서 현지 관객들에게 경이와 찬탄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그의 명실상부한 대표작 <불국설경>의 내력이다. 이 대작은 절 승려들과 작가가 옥신각신하다 당시 절 주지였던 학승 설조 스님이 공간을 내어준 곡절을 거쳐 1년간의 불국사 요사채 작업 시절 완성된 걸작이다. 가로가 10m를 넘고 세로가 거의 3m에 달하는 거대한 화폭에 펼쳐진 토함산 불국토의 상징 불국사의 저 유명한 건축물 풍경을 눈 내리는 날, 10여그루의 기울어지거나 구부러진 노송이 옹위하듯 그 앞에 버티고 있는 자태로 파노라마처럼 그려냈다. 놀랍게도 일체의 물감을 쓰지 않고 오직 하얀 여백을, 날카롭고 정연한 먹물 붓질로 친 건물 윤곽 사이에 극명하게 대비시키면서 한가득 눈이 내린 어느 겨울날의 모습을 묘사했다는 것이 경이롭기만 하다.

박대성은 1979년 중앙미술대전에서 최고상을 수상하고 1988년 삼성가의 호암갤러리 개인전 작가로 전격 발탁된다. 그 뒤 이건희 고 삼성그룹 회장의 전속 화가로 활약했다. 기법과 구도, 사용하는 매체와 재료 등에서 서구의 표현주의, 근세기 중국 화단의 괴이한 구도와 필법 등을 두루 원용하면서 강렬한 터치의 한국화로 선풍을 몰고 왔다. 그렇게 화단의 기린아로 등장한 그가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실크로드와 미국, 유럽을 비롯한 세계를 돌다 뉴욕에서 화업을 새롭게 닦으려 했으나, 그에겐 생명과도 같으며 대스승으로 흠모하던 추사 김정희가 ‘문학 그 자체’라고 했던 먹을 겨우 ‘인디언잉크’라는 원주민의 재료로 폄하하는 현지 예술학교 교사의 말을 듣고 석달 만에 학업을 작파해 버린다. 이런 유학의 좌절과 그 쓰린 마음을 풀기 위해 찾은 경주 불국사에서 그는 대웅전 경내를 거닐다가 온몸이 떨리는 예술의 감흥을 느끼고 그 길로 절에 주저앉을 결심을 하고 설조 스님의 은덕을 입어 역작을 만들어내는데 그것이 바로 이 작품이다.

많은 이들이 이 작품들을 보면서 묻는다. 연중 눈이 오지 않는 경주 불국사에서 어떻게 설경을 그릴 수 있었을까. 이 또한 하늘이 내려준 인연이 있었다. 그가 불국사 요사채에 터 잡고 작업을 한창 하던 1996년 초겨울, 희부연 저녁 하늘 아래 불국사 청운교·백운교를 지나 절집으로 들어오던 작가는 “정말 눈 내린 불국사를 그려보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뇌까렸다. 그런데 그가 독백을 내뱉은 그날 밤 희한하게도 바로 함박눈이 내렸다. 그날 새벽 함께 일하던 후배 조수가 깨워 일어나 불국사 전각 앞으로 달려 나온 그는 미친 듯이 화구를 꺼내 들고 스케치를 하기 시작했다. 청운교·백운교·연화교·칠보교와 절의 기단부를 눈으로 훑었다. “얼마 안되는 새벽 시간 미친 듯이 아무도 밟지 않은 불국사 앞 눈밭과 설경을 붓에 담았습니다. 작업을 끝낼 즈음 절 문이 열리고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왔지요.”

<불국설경>은 뛰어난 화격 덕분에 작가를 대표하는 트레이드 마크 같은 명작이 됐고, 크고 작은 후속 버전의 3점이 추가로 더 나왔다. 원래의 대작은 현재 엘에이 라크마에서 전시 중이고, 지난봄 열린 국립중앙박물관의 ‘어느 수집가의 초대’ 기획전에도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에 이어 교체 전시품으로 이건희 컬렉션 소장 <불국설경>의 좀 더 작은 후대 그림이 내걸렸다. 이 작품은 이건희 회장의 생일을 기념해 삼성그룹 쪽에서 구매해 회장에게 증정한 선물이었는데, 이건희 컬렉션에 포함돼 화제를 모았다. 겸재의 <인왕제색도> 이상으로 관객 반응이 뜨거워 관람객들이 가장 긴 시간 머무르며 감상하는 출품작으로 꼽히기도 했다.

로스앤젤레스/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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