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TPP는 자유이용권…탈 때마다 표 끊는 양자FTA와 달라”

등록 2022-01-17 04:59
수정 2022-01-17 09:22
텍스트 크기 조정
글자크기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 인터뷰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 14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회의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다음 달 1일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RCEP·알셉)이 국내에서도 발효된다. 아세안 10개국과 한·중·일, 호주, 뉴질랜드를 포괄하는 세계 최대 자유무역협정(FTA)이다. 한국은 이어 3월 이 협정에 버금가는 초대형 에프티에이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신청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같은 달 15일엔 한국의 통상 역사에서 한 획을 그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발효 10주년을 맞는다.

선 굵은 통상 현안이 이어지고, 공급망, 기후변화, 코로나19 대유행 같은 보건 문제, 백신 수급 문제까지 통상 이슈와 얽히고 있다. 인공지능(AI), 5G(5세대 이동통신), 6G(6세대 이동통신) 같은 새로운 기술의 표준을 정하는 ‘기술 통상’이 부각되는 양상은 여기에 덧붙는 새 흐름이다.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한겨레>와 만난 자리에서 “통상의 패러다임이 전환되고 있다”며 “이제 ‘국부창출형 통상’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에프티에이 협상하고, 시장 개방 협상하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는 설명이다. “소부장(소재·부품·장비)을 튼튼히 하고, 공급망을 살리고, 일자리를 창출하고, 우리 기술을 보호하고, 기업에 유리한 기술표준을 만들고, 산업패권을 가질 수 있게 지원하고, 국부창출에 직접 기여해야 하는 시대다.” 인터뷰는 지난 14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 회의실에서 1시간 남짓 진행됐다.

― 지금 이 시기에 시피티피피 가입을 추진하는 이유는?
“지난 8~9년 동안 검토해온 사안이다. 그동안 글로벌 환경이 불안정했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미국이 (시피티피피의 모태인 TPP에서) 탈퇴했다. 본격 확대 분위기가 안 잡혔다. 지금은 ‘코로나 이후’ 새 질서를 논의하는 과정이다.

아·태 지역 경제 성장은 빠른데, 미국을 비롯해 전체적으로 참가한 글로벌 통상의 룰이 생기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중에 여러 나라가 시피티피피에 새로 들어가려고 하면서 통상환경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실기하면 안 된다. 버스 떠나기 전에 잡아야 한다. 우리가 버스 출발하라 마라 할 수 없다. 새로운 아·태 질서가 짜여지려는 판이다. 빨리 들어가는 게 좋다고 판단한 거다.”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 14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회의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RCEP 다음달 국내 발효 이어
CPTPP 가입 신청서 3월 제출
한·미 FTA 발효 10주년 앞둬
새 아·태 질서 짜여지려는 판
CPTPP 버스 떠나기 전 잡아야

― 티피피 시절 가입하지 않은 것을 두고 실기한 것, 판단 착오였다는 지적도 있던데.
“통상정책이란 게 글로벌 외부 환경, 국내 정치 환경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성사되는 거다. 티피피, 처음부터 크게 시작한 게 아니다. ‘P4’(브루나이, 칠레, 싱가포르, 뉴질랜드)라고 4개 작은 나라들에서 시작해 미국, 캐나다, 일본이 가세해 확 커졌다. 그게 2011~12년이다. 국내적으로 우린 한·미 에프티에이 비준 과정서 국민적 고통과 갈등을 겪고 에너지를 많이 소모한 때였다. 두 정권에 걸쳐 하지 않았나. 진보정권서 협상을 끝내고, 보수정권서 재협상과 비준을 하면서 국내 정치적인 갈등을 많이 겪었다. 미국 주도의 거대 에프티에이에 또 들어가기 전에 한·미 에프티에이를 이행하면서 추후 논의해보자고 한 것이었다.”

― 당시 한·중 에프티에이 협상 중이었던 사정 때문 아니었나?
“중국 눈치 보느라고 그런 건(가입 보류) 아니었다고 알고 있다.”

― 시피티피피, 우리에게 어떤 득이 있는가?
“비유하면 놀이공원 ‘자유이용권’을 사는 것이다. 양자 에프티에이는 ‘바이킹’이나 ‘청룡열차’를 탈 때마다 표를 끊는 방식이다. 자유이용권을 사면 그 안에서 자유자재로 돌아다닌다. 요새 중요해진 공급망을 보면 두 나라 간에만 연결된 게 아니다. 일부 부품은 A국, 일부는 B국, C국 이런 식으로 다자 순환고리로 엮여 있다. 시피티피피 같은 다자 에프티에이를 통하면 역내 밸류 체인(가치사슬), 서플라이 체인(공급망)이 발달할 수 있다.”

― 알셉도 그런 성격 아닌가? 차이는?
“알셉은 (개방도 면에서) 깊지 않고 넓다. 시피티피피는 넓지 않지만 깊다. 알셉 15개국은 역내 공급망에서 완전한 형태를 이룬다. 아세안 10개국에 중국, 일본, 한국을 체인 하나로 엮는다. 시피티피피에 비해 (개방도) 높지는 않은 수준이나, (회원) 국가 면면이 다양하다. 1인당 지디피(GDP·국내총생산) 2천달러 수준의 캄보디아부터 5만~6만달러의 싱가포르까지 들어 있다. 사회주의, 공산주의, 자본주의 나라가 다 들어 있다. 종교적으로도 힌두교, 이슬람, 기독교로 다양하다. 시장도 시장이나, 자유무역협정 원산지 규정 같은 룰(규칙)에서 15개국을 하나로 묶고 있다. 하나의 룰을 적용하기 때문에 기업들에는 비용 절감, 행정 단순화, 비즈니스 촉진 효과를 준다. 시장을 다변화하고 다양한 국가들을 하나로 모으는 효과다.”

기술·산업 강국 한국 들어와야
공급망 완성되고 강해질 수 있어
일본 다자 틀 속 책임 다할 것 기대
한·미FTA, 우리에겐 ‘게임 체인저’
한동안 국제통상 기준…TPP 모체

이에 견줘 “시피티피피에는 개방도에서 수준 높은 나라들이 참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띤다고 여 본부장은 설명했다. “자유화 수준이 높고, 최신의 규정을 담고 있다. 지적 재산권이나 디지털 측면, 국영기업 관련에서 세계 통상 질서를 이끌어가는 최신의 높은 규정들이 다 담겨 있다. 우리로선 둘 다 해야 한다. 둘 다 장·단점을 갖고 있다.”

여 본부장은 “(시피티피피의) 높은 수준의 규범과 개방도는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한테 이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화장품, K-콘텐츠, 진단키트, 농·수산 식품 이런 중소기업 제품들에 새로운 시장이 열리는 기회”라는 설명과 함께 “지식재산권을 높은 수준에서 보호하는 협정”이란 점도 유리한 요인으로 꼽았다.

― 농업 분야 같은 피해 영역에 대한 대책은?
“정부로선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거대 규모 자유무역협정에 참가할 때마다 피해받는 계층, 소외당하는 계층의 부담은 아픈 부분이다. ‘파이’(몫)를 키우는 과정서 피해받는 농·어업, 축산 분야 경쟁력(제고)을 지원하고, 피해보상 지원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범부처 차원에서 면밀하게 준비 중이다.”

― 시피티피피에 가입하면 한·일에프티에이 맺는 것과 같아 대일 무역적자가 커질 것이라는 지적에 대한 생각은?
“(한·일 모두 가입해 있는) 알셉에 이미 한·일 에프티에이 체결 효과가 있다. 높은 수준은 아니다. 시피티피피의 경우 개방도가 높아 우려가 있을 수 있다. 거꾸로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일본의 수출규제 때 우려가 컸지만, 수년간 못한 (소부장) 국산화를 하고, 일본 의존에서 벗어나 다변화하지 않았나. 쇼크(충격) 강하게 받은 위기를 기회로 삼은 계기였다. 우리 산업이 강해져 정책적 노력으로 충분히 지원할 수 있다. 시피티피피에 가입하면 우리 기업들이 더 뻗어 나가는 계기가 될 거라 본다.”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오른쪽)이 지난 14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회의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 한국의 가입 신청에 일본이 거부할 가능성은?
“11개국 컨센서스(만장일치) 방식이라 그런 부분 우려하는 분들 있지만 일본도 11개국 중 일원이다. 우리가 지난 7~8년 수차례 협의해왔다. 대부분 나라에서 한국이 빠져 있는 게 이상하다고 본다. 아·태 기술·산업 강국인 한국이 들어와야 공급망이 완성되고 강해질 수 있다고 보는 거다. 메가(초대형) 에프티에이에선 ‘네트워크 효과’라고, 좋은 멤버(회원국)들이 더 들어와야 개별 멤버들에게 돌아갈 이익도 커진다. 일본이 티피피 공동체 일원으로서 국제적 책임도 있다. 일본이 결국은 국제사회 일원으로 책임을 다하리라 기대한다. 양자 관계에서는 몰라도 다자 틀 속에서 보고 해결해야 할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기대한다.”

여 본부장은 시피티피피 가입 시기에 대해선 아직 “예측할 수 없다”고 했다. “싱가포르가 올해부터 의장국을 맡았다. 연초에 회원국들이 모여 후보국들의 가입 여부를 검토하고, 논의할 거라고 본다. 알셉 협상에는 7년가량 걸렸다. 현재 영국이 (시피티피피 가입) 협상을 진행 중이다. 올해 말까지 마무리할 전망이라고 한다. 영국은 작년에 신청했다. 영국 이어 그다음 여러 후보국에 대해 어떻게 할지 결정할 거다. 알셉은 극단적인 예였다. 그보다는 빠는 시일 안에 돼야겠죠.”

― 올해로 발효 10주년을 맞는 한·미 에프티에이에 대해 평가한다면?
“미국 측과 1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우리한테는 ‘게임 체인저’(전체 흐름·판도를 바꿔놓은 계기)였다고 볼 수 있다. 아시아 지역에서 우리 같은 산업 강국이 미국과 최초로 체결한 에프티에이였다. 상당 기간 국제 통상에서 ‘골드 스탠더드’(척도의 기준)였다. 티피피도 한·미 에프티에이를 기반으로 삼았다. 거기서 좀 업그레이드(격상)시킨 것이었다. 티피피 탄생의 모체가 한·미 에프티에이였다. 그 이후 한국은 글로벌 통상 무대에서 ‘덩크슛’을 했다. 이전까지 군소 상대국들과 ‘스파링 파트너’ 역할을 하다가 바로 ‘메이저 리그’로 나간 거다. 우리는 현재 58개국과 18개 에프티에이 맺고 있다. 에프티에이로 커버(포괄)하는 글로벌 지디피(GDP)가 85%에 이른다. 한미에프티에이는 이렇게 되는 데 ‘게임 체인저’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 올해 수출 전망은?
“지난해 역대 최대 기록을 세웠는데, 올해 사정은 녹록치 않다. 물류, 선박 이런 데서 병목 현상이 있다. 코로나 확산도 불안 요소다. 코로나 위기를 기회로 승화시킨 것처럼, 어려운 요소 있지만 수출 7천억달러 시대를 조기에 열도록 통상에서 적극 지원하겠다.”

김영배 선임기자 kimyb@hani.co.kr

1/ 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