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로시 방문 ‘결정적 선’ 지킨 미·중…후폭풍은 대만에

등록 2022-08-04 17:27
수정 2022-08-04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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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시·차이잉원 “민주주의 지켜야”
마지노선 ‘대만 독립’ 언급 안해
중국도 펠로시 대만 방문 사실상 허용

중국군 헬리콥터가 4일 대만과 마주한 푸젠성 앞바다를 비행하고 있다. 푸젠/AFP 연합뉴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이후 대만을 향한 중국의 보복이 본격화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양국 간 직접 충돌을 피하기 위해 서로 결정적인 선은 넘지 않으면서, 미·중 갈등이 결국 대만에서 펼쳐지는 형국이다.

지난 3일 중국은 물론 전 세계의 시선이 펠로시 의장과 차이잉원 대만 총통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중국의 거센 반발에도 대만을 방문해 이번 위기를 초래한 펠로시 의장은 이날 대만 대통령궁과 입법원, 징메이인권문화원구 등을 방문해 연설과 기자 인터뷰 등을 수차례 하면서 “대만과 민주주의를 지키겠다”고 했다. 차이 총통 역시 “중국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키겠다”고 발언했다.

어느 때보다 정교하게 검토한 뒤 나왔을 두 사람의 이날 발언에 ‘대만 독립’은 들어가지 않았다. 중국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중국은 대만을 본인들의 영토로 간주하며, 대만 통일을 건국 100주년인 2049년까지 반드시 이뤄야 할 핵심 과제로 여긴다. 대만 문제에 있어 중국은 ‘무력 사용’도 불사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이는데, 그 결정적인 시점이 바로 대만의 ‘독립 선언’이다. 중국은 지난 2000년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민주진보당(민진당) 천수이볜 후보의 당선을 막으려고 주룽지 총리가 “대만의 독립 선언은 전쟁”이라고까지 발언했다. 천수이볜은 총통에 당선된 뒤 “대만 독립을 선언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만약 펠로시 의장이나 차이 총통이 ‘대만 독립’을 화두로 꺼냈다면, 중국은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행정부도 펠로시 의장의 대만행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군은 좋은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하며 펠로시 의장의 대만행에 반대 뜻을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런 태도는 펠로시 의장의 대만행이 갖는 무게를 낮추는 역할을 했다. 다만, 미국 내에서는 미 행정부가 공개적으로 반대하면서 펠로시 의장이 다른 선택을 할 여지를 차단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중국은 펠로시 의장의 대만행 계획이 알려진 뒤부터 외교부와 언론 매체는 물론 시진핑 국가주석까지 나서서 “불장난을 하면 타죽는다”는 표현까지 쓰며 비판했지만, 험한 말과 달리 실제 방문을 용인하는 모습을 보였다. 올 가을 시 주석의 3연임 확정을 앞두는 등 민감한 시점에, 미 하원의장의 대만행 정도로 세계 최강 군사대국 미국과 맞붙기에는 감당해야 할 리스크가 너무 크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25년 전인 1997년 뉴트 깅리치 당시 미 하원의장이 한 차례 대만을 방문하는 등 전례가 있었던 것도 고려됐을 수 있다.

펠로시 의장이 떠나고 이제 중국의 시간이 다가왔다. 올가을 당대회를 앞둔 시 주석이 이번 사건을 대만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중국은 4일부터 대만 주변 바다 여섯 면을 72시간 동안 포위한 채 육해공군 합동 훈련을 벌이기 시작했다. 대만 상공을 가로지르는 미사일을 발사하고, 중국군이 대만 해협의 중간선을 넘는 것이 일상화될 것으로 보인다. 미·중 갈등의 한 복판에서 대만에 그 압력이 쏟아지고 있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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