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려서 일대일로?…중국이 서쪽으로 가는 까닭은

등록 2022-04-16 09:59
수정 2022-04-19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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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기획연재
유라시아의 재발견 ② 중국의 일대일로

144개국 얽힌 150년짜리 계획
세계 패권 차지 위한 시도이자
미국의 견제·포위에 맞선 대응
한국도 현 상황 냉철히 분석해야

1. 2019년 4월27일 베이징에서 열린 일대일로 포럼 폐막 기자회견에서 연설 중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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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대일로’는 시진핑 현 중국 국가주석의 대표적인 대외정책 브랜드다. 크게 ‘일대’(하나의 띠)와 ‘일로’(하나의 길)로 구성된 이 프로젝트는 중국과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유럽의 무역, 금융, 문화 차원의 교류 확대와 일체화를 추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각각 육상과 해상의 실크로드라는 별칭으로도 불리고 있다. 2013년 시진핑의 집권 1년차부터 공식화되기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대략 150년 정도를 예상하고 있고, 현재는 초기 단계로서 주로 철도, 항만, 고속도로 등 인프라 건설에 집중하고 있다. 그 규모도 역대급이다. 2021년 기준으로 포괄하는 나라만 65개국이고, 각종 사업에 참여하는 나라만 해도 144개국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약 32%, 세계 무역의 39%, 인구의 63%를 차지하는 지역이다.

노골적 ‘서진 정책’ 나선 중국

‘일대’는 과거의 육상 실크로드 지역, 즉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아제르바이잔, 이란, 터키, 우크라이나, 독일 등을 주된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일로’는 과거 해상 실크로드의 노선인 말레이시아, 타이, 미얀마, 방글라데시, 인도, 스리랑카, 몰디브, 파키스탄, 예멘, 케냐, 탄자니아, 그리스, 이탈리아를 포괄한다. 이 프로젝트의 성공 가능성, 효과 등에 대해 여러 견해가 존재하지만, 분명한 것은 중국이 본격적인 서진(西進)에 나섰다는 것이다. 1500여년 전 ‘달마가 동쪽으로 왜 왔을까’가 불교계의 대표적인 화두라면, ‘중국은 21세기에 왜 서쪽으로 가려 할까’가 국제 정치·경제계의 중요한 물음 중 하나다.

일단 미국은 어떤 반응일까? <포린 어페어스>라는 잡지로 유명하고, 미국의 ‘그림자 국무부’로 불리는 외교협회(CFR)는 2021년 ‘중국의 일대일로: 미국에 주는 함의’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를 통해 미국의 속내를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이 보고서는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정치·경제 등 여러 측면에서 미국의 이익에 중대한 도전의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중국이 본격적으로 세계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세력을 확장하고 시진핑이 자주 강조하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이뤄내기 위해 일대일로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1840년 아편전쟁으로 심각한 내상을 입고 폐관수련에 들어갔던 무림의 초고수 중국이 무공을 회복하고 무림에 다시 등장하니 현재 무림의 패자인 미국이 긴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중국의 서진에 대한 절반의 진실만을 대변한다.

다른 절반의 진실은 미국의 본격적인 견제와 봉쇄라는 ‘대응’에 대한 대외 전략 차원에서 중국의 ‘맞대응’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시진핑이 집권하기 직전인 2012년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왕지쓰 원장의 ‘서진: 중국 지전략의 재균형’이라는 제목의 논문은 참고할 가치가 있다. 그는 2011년 미국의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 즉 아시아에서의 재균형 전략을 본격적으로 추진한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현실화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 중국은 1970년대 말 개혁·개방 정책 이후 미국과의 우호적 관계 유지를 중심으로 하는 동진 전략에 대한 재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선공을 가해오니, 지금 정면 대결하지는 않되 곧 있을 ‘전쟁’에 대비해 주력 병력을 이동하자는 주장이다. 실례로 미국은 2011년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을 중심으로 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를 연결하는 선상에 있는 국가들의 경제적 재건을 추진하겠다는 ‘신실크로드’ 전략 구상을 발표하기도 했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미국의 대중국 견제와 포위는 불가피하고,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서 서진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중국의 서진은 미국의 아시아로의 재균형 전략에 대한 ‘역균형’(counter balancing) 전략으로 이해할 수 있다.

2013년 본격적으로 집권한 시진핑은 서진 전략의 구체적인 프로그램으로 중국인의 역사적 향수를 자극하고 대상국들에도 친숙(?)할 수 있는 실크로드의 서사를 가져와서 일대일로로 명명했다. 이런 측면에서 중국이 서쪽으로 간 까닭은 원해서라기보다 밀려서이기 때문이고, 공격보다는 수비 내지 자구책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시진핑은 2012년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로 선출되기 전만 해도 대표적 혁명원로인 아버지 시중쉰의 후광을 입은 말 잘 듣는 평범한(?) 정치 엘리트이고, 차기 최고지도자군에서는 주목을 별로 받지 못하는 언더독으로서 평가받았다. 당시 중국공산당 내의 주요 세력 간 다툼의 어부지리로 최고지도자가 된 측면이 분명히 있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엇갈린 반응

이 때문에 마오쩌둥에 버금가는 역사적 지도자로 선전되며 3연임의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의 성공(?)의 요인은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작정하고 중앙보다는 지방 단위에서 꾸준히 정치 커리어를 쌓으며 획득한 대중 선전과 조직 능력을 그중 한가지로 들 수 있다. 선출 직후 바로 중국인이라면 모두가 마음속 응어리로 가져왔고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중화민족의 부흥’이라는 화두를 던지면서 대중의 마음을 획득하고, 최전선에서 미국의 갖은 방해와 훼방 속에서 중국의 꿈을 이루려는 언더독 국가의 지도자 이미지를 확립해나간 것이다. 그 이미지 메이킹은 우선 국내적으로는 성공한 것으로 평가되며, 그 바탕 위에서 중국의 서진은 별다른 반발 없이 진행된 것이다.

그렇다면 아시아·태평양 국가가 아니라 유라시아 국가로서의 정체성 전환을 의미하는 이런 중국의 서진에 대해 다른 국가들, 특히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반응은 매우 중요하다. 중앙아시아는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대상 지역 중 지리적으로 중국과 가장 가깝다. 또 일부 동남아시아, 서아시아 국가들과 겪고 있는 영해나 영토 분쟁이 없기 때문에 중국 서진 전략의 초기 성패를 평가하는 시금석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서진이 시작된 지 약 10년이 지난 현재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처해진 상황과 의도에 따라 다소 상이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카자흐스탄이 제일 적극적이다. ‘누를리 졸’(광명의 길)이라 불리는 자국의 인프라 개발 프로그램을 2016년에 일대일로 구상과 통합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은 원조 수혜국인 만큼 일대일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협력함으로써 더 많은 지원을 얻어내고자 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은 자국의 폐쇄적인 경제정책과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지 않다는 점 등 때문에 소극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투르크메니스탄 역시 매우 폐쇄적인 정치 체제와 천연가스 수출로 풍부한 재정 상황을 가진 까닭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한편 중앙아시아 국가들에 있어서 일대일로로 대표되는 중국의 서진 전략의 긍정적인 면뿐만 아니라 부정적 측면이 가시화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대부분 차관 형태로 투자 등이 진행되는 탓에 국가 재정 상태의 악화, 중국 노동자의 대거 유입으로 인한 자국 노동시장의 경색과 실업 증가 등이 대표적이다. 이 중앙아시아 국가들에서 나타난 문제점들을 중국이 어떻게 해결해나가느냐가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초기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5. 2021년 4월13일 중국 북서부 산시성 시안에서 카자흐스탄으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열차. 신화 연합뉴스

2. 2019년 4월27일 베이징 일대일로 포럼 미디어센터에 설치된 중국의 건설 프로젝트 조감도. AP 연합뉴스

미-중 대결 ‘정중동’ 자세로 관찰해야

중국이 서쪽으로 간 까닭은 선제공격이 아닌 맞대응을 하기 위해서다. 선공을 당하고 카운터펀치를 날린 것이다. 중국에는 조금 더 힘을 키울 시간이 필요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미국이 ‘선공’을 한 것은 시간은 중국의 편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인지 아니면 그동안의 실수로 이완된 자국 중심의 세계 질서에 긴장감을 불어넣어 패권 유지를 지속하기 위해서인지 분명치 않다. 그러나 실제로 중국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중국은 이미 냉전 시기 같은 진영이던 소련과의 관계 악화로 인한 위기 극복을 위해 적대 진영인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추진했던 것처럼 아웃파이팅을 기본으로 하는 복서다. 이번에는 여러 국가들과의 합종을 추구함으로써 위기를 돌파하려 하고 있다. 중국 고대 전국시대는 이런 합종(合從)책은 연횡(連衡)책에 무용지물이 되었다. 21세기는 과연 그 결과가 어떻게 될까? 유라시아는 당분간 중국의 합종과 미국의 연횡책의 공방으로 혼란해질 전망이다. 유라시아의 변방에서 새로운 강자로 등장하고 있는 한국에 무엇이 더 국익 신장이라는 목표에 부합할 것인가? 정중동의 자세로 냉정하게 현실을 관찰하면 그 답이 나올 것이다.

주장환 한신대 중국학과 교수·유라시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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