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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최대’ 인도 농민시위, 석달째 계속되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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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1-01-26 04:59
수정 2021-01-26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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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준의 DB_Deep
작년 11월 상경시위 나선 지 석달
하루에 2억5천만명 거리 나서기도

지난해 12월4일(현지시각) 인도 농민들이 뉴델리 북쪽 경계 싱후에서 농민법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싱후/로이터 연합뉴스

벌써 석 달 째다. 주황색, 보라색, 자주색, 흰색… 형형색색의 터번을 쓰고 수염을 기른 수만 명의 인도 농민들이 수도 뉴델리 외곽의 황량한 벌판에 텐트를 친 채 모여있다. 정부의 친기업적 농업개혁 법안에 반대해 지난해 11월부터 상경 시위에 나선 농민들이다. 겨울비를 동반한 매서운 추위에 수십여 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버티고 있다. 시위 초반인 11월26일(현지시각)에는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로 추산된다는 2억5천만명이 전국에서 24시간 동안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를 필두로 한 인도 정부 역시 농민들과 10차례 협상을 하면서도 정책을 되돌리지 않은 채 버티고 있다. 농업 분야 발전을 위해 민간 경쟁력 도입이 필수라는 정부의 주장과 이들 법안대로라면 미래는커녕 당장 삶의 터전을 잃게 될 것이라는 농민들의 주장이 맞부닥치고 있다.


농산물 판매·유통 민간기업에 개방

해법이 보이지 않는 싸움이 그렇듯이, 인도 농업의 문제는 오랜 시간 누적된 구조적 모순과 농민 문화의 변화, 정부의 오판 등이 두루 깔려 있다.

지난 9월 인도 의회는 3건의 농업 관련 개혁 법안을 통과시켰다. △가격보장 및 농업서비스 계약법 △농산물 무역 및 상거래 촉진법 △필수식품법이다. 법안 명칭은 다르지만, 세 법안 모두 농산물 판매와 유통 등에 민간 기업을 끌어들여 경쟁력을 높인다는 취지가 담겼다.

23일(현지시각) 인도 보팔의 라즈 바완에서 열린 새 농업법 도입 반대 시위에서 경찰이 시위대에게 몽둥이를 휘두르고 있다. 보팔/EPA 연합뉴스

인도에서는 국가기구로서 농산물 유통을 전담하는 농산물시장위원회(APMC)의 관리 아래 농산물 유통이 독점적으로 이뤄져 왔다. 농민의 첫 농산물 판매는 이곳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생산가와 소매가의 차이를 줄여, 농민을 보호하고 농산물 가격을 안정시키자는 취지였다. 194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래 식량부족 국가였던 인도는 1960년대부터 이 제도를 본격 실행해, 쌀과 밀 생산을 장려했고 비교적 단기간에 식량부족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특히 이번 시위를 주도하는 펀자브주와 하리아나주의 농민들이 쌀과 밀 생산에 주력해, 이 제도의 혜택을 누렸다.

새로 도입된 법안은 농민들이 민간 도매시장에 농산물을 판매할 수 있게끔 제도를 바꿨다. 민간기업과의 영농 계약을 허용하고, 특정 작물에 대해 엄격히 관리했던 농산물 비축 규제도 느슨하게 풀었다. 이 법들은 의회 통과 직후 람 나트 코빈드 인도 대통령이 승인해 효력이 발생했다. 농민들은 새 법안이 도입돼, 영세한 소농인 자신들이 대기업을 상대할 경우 동등한 위치에서 협상할 수 없고, 농업의 주도권이 대기업에 넘어갈 것이라고 우려한다. 농민들은 더 나아가 이번 법안 통과가 인도의 핵심 농민 보호책인 ‘최저가격제도’(MSP)를 흔들 수 있다고 본다. 인도는 정부가 농민 생계를 위해 농산물 품질과 관계없이 최저가격을 보장해 왔는데, 이번 조처가 최저가격제 변동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인도의 GDP 비중과 고용비율. <인도의 농업·농정 현황 및 과제>(원지은, 세계농업 2019년 2월호)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영세농민 “삶의 터전 잃는다” 반발

인도 정부는 ‘최저가격제는 법안에 포함되지 않았고, 계속 유지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지만, 농민들은 이를 믿지 않는다. 특히, 농민들은 15년 전 비슷한 법안이 통과된 인도 동부 비하르주 사례를 들어 정부 주장을 반박한다. 비하르주는 유통 시장을 민간에 개방한 뒤, 정부가 지정한 도매시장이 87% 줄었고, 농산물 가격은 당국의 약속처럼 오르지 않고 오히려 떨어졌다. 현재 펀자브주에서는 쌀 도매가가 100㎏당 25달러지만, 비하르주에서는 쌀 100㎏당 16달러다. 같은 제품의 가격이 시장 상황에 따라 크게 달라진 상황을 직접 본 농민들이 사활을 걸고 정부의 민간 개방 정책에 반대하고 있다.

열악한 인도 농민들의 상황은 이들의 반발 강도를 높인다. 인도는 전체 노동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47%가 농업 분야에 종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7%에 그친다. 게다가 대부분의 농민은 영세하다. 농가 1곳당 평균 경작지는 1.15ha(3400여평)에 불과하고, 이들의 연평균 소득은 1천달러를 조금 넘는다.

23일(현지시각) 인도 보팔의 라즈 바완에서 새 농업법 도입에 반대하는 시위대에 경찰이 물대포를 쏘고 있다. 보팔/EPA 연합뉴스

이는 인도 산업의 구조적 문제와도 관련돼 있다. 제조업 발전이 지체된 상황에서 인도 농민들이 이동할 마땅한 산업이 없다. 인구가 비슷한 중국의 경우 농민 인구는 2억8500만명으로 전체 인구(14억명)의 20% 수준이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라 불릴 정도로 공업화를 진행해 많은 농민들이 도시로 이동해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하지만 인도는 제조업 발전이 뒤쳐진 가운데 서비스산업과 정보기술(IT)산업 발전이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정보기술산업의 경우 인도 국내총생산의 8%를 차지하지만, 고용 인원은 전체 인구의 0.3%에 불과한 390만명에 불과하다고 <포린폴리시>는 전했다.


정부 “시행 연기” 농민들 “완전폐지”

모디 정부의 성급한 법안 처리 역시 불신을 키웠다. 인도의 농업에 수술이 필요하다는 데는 농민들도 동의하지만, 정부는 농민들의 엄청난 반발이 예상되는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농민 단체나 농업 조합 등과의 의견 조율을 제대로 거치지 않았다. <포브스>는 “농업을 제외하면 선택할 일자리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농촌을 개혁하려는 정부의 어설픈 시도가 이번 사태를 야기했다”고 분석했다.

1일(현지시각) 인도 수도 뉴델리와 하리아나주 경계에서 농업법 개혁 반대 시위에 나선 농민들이 캠프의 체력단련 시설에서 운동을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모디 정부가 농민들을 얕잡아 봤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맹자들이 많고 조직력이 떨어지는 과거 인도의 농업 사회를 상정한 채 법안을 밀어붙였다는 것이다. 시위 초반, 피자를 먹는 시위 농민들의 모습을 놓고 소셜미디어에서 이들이 정말 농민이 맞는지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비비시>(BBC)는 “도시에 사는 인도인들이 시골 형제들에 대해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이 드러났다”고 전했다. 현재 인도 농민들은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소통하고, 영어를 하며, 해외 여행을 한다. 가족 중에 한 두 명은 대학 교육을 받았거나, 대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이들은 현재 시위 현장에 병원과 구급차, 부엌, 도서관, 체력단련장을 갖추고 심지어 자체 신문까지 발행하는 등 잘 조직돼 있다.

농민들의 분노는 정부의 후퇴 제스처에도 가라앉지 않고 있다. 최근 인도 대법원은 법안 효력을 중단시키고 당국과 농민 대표가 만나 협상하라고 했지만 농민들은 이를 거부했다. 정부는 농민들과 벌써 10차례나 마주 앉았고, 향후 18개월 동안 법 시행을 미루겠다고 했지만, 농민들은 완전한 폐지를 주장하며 시위를 이어나가겠다는 입장이다. 농민들은 오는 26일 헌법 발효 기념일인 ‘리퍼블릭 데이’에 뉴델리 시내에서 대규모 트랙터 시위도 시도할 예정이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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