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은 결자해지하라

등록 2021-11-25 18:19
수정 2021-11-26 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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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온 뒤 무지개] 한채윤 |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

얼마 전, 차별금지법 연내 제정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위해 아침 8시에 국회 정문 앞에 섰을 때의 일이다.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분은 더 일찍 와서 시위 중이셨는데 내가 팻말을 들고 서자마자 “동성애? 에이 더러워. 미친 거야” 등을 비롯해서 나라를 망하게 할 참이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속이 뒤집어지는 것 같았지만 참아야 했다. 마침 경찰이 지나가길래 “저분이 저에게 욕 못 하게 해주세요”라고 요청했다. 경찰이 제지하자 “내 앞을 가리고 있어서 그런다. 저 사람부터 치우라”고 더 큰 소리를 쳤다. 경찰이 어딜 가리고 있냐고 일축하자 더 이상 큰소리를 치진 못했지만 내 귀에 들릴 듯 말 듯 한 웅얼거림은 그가 다른 사람과 교대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나는 궁금했다. 처음 본, 잠시 옆에 있을 뿐인 사람에게 내뿜는 그 적개심은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동성애를 혐오하는 사람은 없다. 특정한 집단에 속해 있다는 이유만으로 미워하는 건 본능이 아니다. 편견을 학습한 결과다. 하지만 편견이 있다고 해서 누구나 서슴없이 저주를 퍼붓진 않는다. 그는 진심으로 차별금지법이 만들어지면 나라가 망할 수 있다는 걱정과 위기감에 치를 떠는 것 같았다. 누가 이런 불안과 공포를 심어주었을까? 누가 이런 증오를 드러내도 괜찮다고 격려했을까? 자신을 악에 맞서는 정의의 사도로 여기게 만들었을까?

사상가 랠프 월도 에머슨은 ‘공포는 무지에서 온다’고 했다. ‘동성애는 죄’라는 건 믿음이지 지식은 아니다. 동성애가 죄니까 동성애자는 죄인이란 주장은 맹신이지 합리적 판단이 아니다.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미워하지 않아야 한다며 동성애자가 회개하도록 돕겠다는 건 위선이지 사랑이 아니다. 무지와 맹신, 위선에서 비롯되는 공포와 혐오, 차별이 사회의 한 현상일 수는 있지만, 공론장에서 다루어야 할 의견이 될 수는 없다. 국회에서 ‘노키즈존’에 대한 토론회를 열면서 평소에 ‘아동에겐 인권이 없다’고 주장한 사람에게 발표를 시켜도 될까? 다양한 의견을 들어야 하지 않냐고? 그렇다면 누가, 왜, 그런 주장을 하는지를 객관적으로 연구한 사람이 발표를 하면 된다. 그렇지 않고 아동이 있는 식당은 더럽고 시끄러우며, 내 주변인들도 다 싫어한다며 편협한 근거를 들이대는 사람이 바로 마이크를 잡으면 아동도 인간인지 여부부터 찬반거리가 되어버린다.

지금 이 글은 바로 이런 어이없는 일이 실제로 국회에서 벌어졌기에 쓴다. 더불어민주당이 11월25일 개최하는 차별금지법 토론회는 비겁한 생색내기다. 최악이다. 동성애와 트랜스젠더를 자신의 신앙에 비추어 혐오하는 이들을 다섯명이나 토론자로 불러냈다. 인권 옹호자들은 비토해야 할 토론회지만 토론회 무산 자체를 핑계로 차별금지법 논의를 미룰 것임을 알기에 가슴을 치며 어쩔 수 없이 나섰다.

이것은 국회와 정부가 해야 할 최선이 아니다. 답은 있다. 국가 차원의 연구 조사다. 대규모의 성소수자 인권실태 조사를 실시하고, 나라 걱정을 하는 이들을 위해서는 정말 나라가 망할 가능성은 없는지 철저히 연구하면 된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한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정말 에이즈가 확산되었는지, 성범죄가 늘어났는지, 군대의 기강이 무너지고 사회 질서가 혼란해져서 망한 곳이 있는지를 조사하고, 왜곡되고 과장된 가짜 뉴스가 떠돈다면 국민들이 불안과 공포에 떨지 않도록 명백히 밝히고 널리 알려야 한다. 사회적 합의가 없어서 시기상조라면, 조사 연구를 기반으로 정책의 방향을 정하는 일부터 당장 하면 된다.

더불어민주당은 차별금지법에 책임이 있다. 민주당이 집권 여당이었던 2007년에 차별금지법은 정부입법안으로 처음 세상에 나왔고 그때 혐오에 무릎 꿇어서 지금까지 지지부진한 상태다. ‘결자해지’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국민의힘 핑계 대지 말고 묶은 자가 풀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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