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전 칼럼] 5만장의 부고 앞에서

등록 2022-06-21 14:38
수정 2022-06-22 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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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은 지금 당장 ‘아무런 조건 없이’, ‘감염병 위기 시 서로 돕기로 한 2018년 정상 간 약속’과 ‘동포애적 마음으로’ 1984년 서울 홍수 때 북이 조건 없이 쌀 5만석 등을 보냈던 것처럼, 이번에는 우리가 우선 보건일꾼들을 위한 백신, 의료보호장비, 항생제, 해열제, 결핵약, 어린이들을 위한 영양식을 보내겠다고 직접 발표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북한에서 코로나19 검사소 직원으로 보이는 이가 중국산 안면보호구를 쓰고 검체를 채집·분석하는 모습. 조선중앙텔레비전 화면 갈무리, 연합뉴스

신영전 | 한양대 의대 교수

비극은 비극이 되지 못할 때 가장 비극적이다. 차로 20분이면 갈 수 있는 북녘땅, 4월부터 시작된 코로나는 21일 현재 누적 유열자 수가 465만명을 넘었다. 북 당국 공식 사망자 수는 73명이지만, 이는 피시아르(PCR) 검사로 확인할 수 있는 사망자 수일 뿐, 현재까지 최소 5만명이 사망했고 앞으로도 또 5만명 이상 사망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세상은 너무 조용하다.

왜 이런 비극이 진행되고 있을까? 일차적으로는 북 당국의 대응에 문제가 있었다. 백신도 없이 2년3개월을 강력한 국경봉쇄로 버틴 것은 놀라운 성과지만, 그사이 어떻게 해서든 전 국민에게 백신 접종을 해야 했고, 충분한 의약품과 식량 등을 안정적으로 확보했어야 했다. 뒤늦게 중국에서 백신을 들여왔다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겨울철 2차 유행은 더욱 혹독할 수 있고 유행이 일상화할 것이므로, 이제부터는 중국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 적극적으로 백신, 의약품, 보호구, 기초 식량 협력을 요청하는 실용적 전략으로 신속히 전환해야 한다. 재난 상황에서 국제사회에 협력을 요청하는 것은 인류의 권리다. 특히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는 남쪽 단체들의 교류 바람에 호응해야 한다.

하지만 이 비극을 전적으로 북 당국에 돌릴 수만은 없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 국제협력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가난한 나라에도 20%의 백신을 제공하자고 만들어졌던 코백스-퍼실리티 프로젝트는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애초 의사결정 구조에서 빈곤국이 제외됐고, 제약회사와의 공공민간협력은 제약회사 이익을 보장하는 것으로 귀결됐다. 2021년 3월 최대 백신 생산국인 인도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모든 백신의 수출을 중단했다. 부자 나라들의 백신 싹쓸이에, 국경없는의사회 케이트 엘더는 “(백신 구매를 두고) 부자 나라와의 경쟁에서 코백스가 졌다”고 말했다. 코백스에 백신을 요청하는 많은 나라의 간절한 전화와 이메일은 끝내 답을 받지 못했다. 그 결과는 참혹하다. 백신회사는 엄청난 이익을 챙기고, 백신이 남아도는 이 시점에도 빈곤국 국민 중 한번이라도 백신을 맞은 사람은 17.8%에 불과하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국제백신 협력의 ‘치명적인 도덕적 실패’를 인정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부자 나라가 백신을 살 때 10% 빈곤국 이양을 의무화하는 등의 새로운 국제규범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 비극에 최강대국 미국 책임은 없을까? 1991년 이래 미국이 주도하고 유엔이 시행하고 있는 몇겹의 대북제재는 공식적으로는 인도적 지원을 금지하고 있지 않지만, 금융제재, 선박 확보 어려움 등으로 인해 사실상 인도적 지원을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 가톨릭 교리서조차 “경제봉쇄는 기간이 한정적이어야 하며, 그에 따른 효과가 뚜렷하지 않을 때는 정당화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지금처럼 초장기화한 경제제재는 비인권적이고 작금의 비극과 무관하지 않다. 핵을 포기하면 제재도 풀고 막대한 지원을 해준다는 말은 인도주의를 무기화하는 것이다. 또한 “미국의 약속을 믿고 핵을 포기했다 죽은 리비아의 카다피를 보라”는 북쪽 반론에 미국의 책임 있는 답변도 필요하다.

이번 세상을 떠난 이들은 한두명만 건너면 우리의 친척이라는 점에서 한국 정부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북이 요청하면’이란 단서를 붙인 윤석열 대통령 발언과 아직 약 한알 전달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심히 우려스럽다.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에서 나름 역할을 시도했으나 구체적인 성과를 내는 데 미흡했다면, 윤석열 정부의 대북전략은 파격적인 전향이 없는 한 한국은 한반도에서 아무런 존재감도 발휘 못하고 미국의 ‘졸병’ 노릇만 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윤 대통령은 지금 당장 김정은 위원장에게 직접 ‘아무런 조건 없이’, ‘감염병 위기 시 서로 돕기로 한 2018년 정상 간 약속’과 ‘동포애적 마음으로’ 1984년 서울 홍수 때 북이 조건 없이 쌀 5만석 등을 보냈던 것처럼, 이번에는 우리가 우선 보건일꾼들을 위한 백신, 의료보호장비, 항생제, 해열제, 결핵약, 어린이들을 위한 영양식을 몇월 며칠까지 보내겠다고 직접 발표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지금 북녘에서 죽어가고 있는 이들은 80대 이상 고령자가 대부분일 것이다. 이들이 누구인가? 만주벌판에서 함께 일본군과 싸웠고, 해방의 기쁨에 함께 거리로 뛰어나와 만세를 불렀던 이들이다. 5만장의 부고 앞에 우리는 이렇게 무력해도 될까? 그러나저러나 “죽어서라도 고향으로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상봉장을 떠나간 늙은 아버지는 이제 그 소원을 푸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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