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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햇발] 어느 리더의 죽음 / 안영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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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1-06-10 17:34
수정 2021-06-11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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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네이버 그린팩토리 앞에서 열린 '‘동료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노동조합의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네이버 노조 ‘공동성명’ 관계자가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영춘ㅣ논설위원

‘리더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문장을 써놓고 보니, 패전한 사무라이 우두머리가 맞았을 법한 최후의 순간이 일본 막부 시대를 배경으로 연상된다. 그 정조는 단연 비장함이었을 것이다. ‘비장’이라는 낱말에서 비(悲)와 장(壯)은 대등하지만, 죽음마저 자신의 결단임을 내세우는 저 미학적 행위에서만큼은 장엄함이 슬픔을 압도한다. 얼마 전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리던 한 젊은이가 세상을 등졌다. 그 또한 리더였다. 이 글 첫 문장을 그대로 옮겨도 사실관계에 어긋남은 없다. 하지만 그의 죽음 어름엔 장엄함의 옅은 그림자 한 조각 어른거리지 않았다.

‘리더’는 네이버가 그에게 부여한 직책이었다. 한국 아이티(IT) 업계를 선도한다는 기업답게 직함 하나도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그에 관한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내 감정은 그 ‘리더’ 앞에서 머뭇거렸다. 조직의 폭력 구조에 희생된 약자로 애도해도 되는가. ‘리더’가 여느 조직의 어떤 자리에 해당하는지 알 수 없었으나, 적어도 이런 큰 조직을 앞에서 이끄는 일원(리더)이라면, 그가 당한 괴롭힘은 대단히 이례적이고 예외적이었을 개연성을 배제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어지는 보도를 통해 드러난 실상은 딴판이었다.

고인을 괴롭혀온 존재로 어느 ‘책임리더’(임원)가 지목됐다. 그는 고인에게 폭언을 써가며 실적 등을 압박했다고 한다. 가령 이런 식이다. “□□ 팀원이 이직하면 ○○님(고인)은 나한테 죽어요.” 먼저 눈에 띄는 사실은, ‘리더’라는 기표가 이 조직에서는 우리 언어 상식과 사뭇 다른 기의를 품고 있는 점이다. 리더의 실제 위치는 사원과 임원 사이 어디쯤인 듯한데, 영예로운 그 이름이 폭력에 의해 생의 의지를 잠식당해가는 제 주인에게 아무런 보호 수단도 제공하지 못했다는 건 슬픔 못지않은 놀라움과 의구심을 남긴다.

그런데 의문을 풀어줄 단서 또한 책임리더의 폭언 속에서 찾을 수 있다. 협박성 발언을 하면서 깍듯이 ‘님’이라는 존칭 접미사를 붙이고 ‘나한테 죽어요’라고 존대 서술어를 쓰고 있는 건, 기표와 기의가 단순한 불일치를 넘어 적대적 공모관계를 이루고 있음을 암시한다. ‘정중한 폭언’이 억압과 폭력의 현장부재증명(알리바이)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당사자가 어찌해볼 수 없는 제3자의 행위(팀원 이직)에 연대책임을 묻는 ‘연좌제’ 카드까지 내밂으로써 오싹한 소름과 함께 끝 모를 공포심을 자아낸다.

네이버류의 직제와 언어가 수평적 소통 문화의 상징이 되고, 내로라하는 기업들 사이에 상식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창의성이 경쟁력인 4차 산업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상명하복의 권위주의 문화와 분야별로 단절돼 있는 직제를 극복해야 한다는 당위와도 깊이 닿아 있을 터이다. 하지만 네이버에서 일어난 비극적 사건은 영예로운 직함이나 곰살맞기까지 한 말투와 수평적 소통 사이에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없음을 일깨운다. 반면 직원들을 ‘스파르타식 창의성’이라는 형용모순의 요구로 내몰 우려는 현실적이다.

그 책임은 예외적으로 질 나쁜 책임리더에게만 있지 않다. 직원들은 특정 책임리더의 부당한 행위를 다른 책임리더들에게 전했는데도 시정되는 것은 없었다고 한다. 결국 리더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리더의 죽음에는 더 영예로운 직함을 가진 복수의 관계자가 직간접으로 연루돼 있다. 그런 의미에서 리더의 죽음은 공모에 의한 희생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공모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묻는 데서 죽음의 본질을 밝히기 위한 탐문은 시작돼야 한다. 그들이 눈앞의 문제를 외면하면서까지 함께 지키고자 했던 건 무얼까.

기업의 첫번째 목표는 이익이지만, 이익을 내기 위한 과정 또한 결과 못지않게 중요하다. 수평적 조직 문화를 지향한다면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익 목표를 설정하는 것과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솔루션을 찾는 건 분리될 수 없는 과정이며, 두 과정 모두 수평적 소통을 거칠 때 목표 실현 가능성도 커진다. 이때 ‘리더’는 자발적 주체의 다른 표현이다. 리더의 죽음도 그 지평 위에서 다시 해석될 수 있다. 리더는 기업이 조직이라는 자동기계의 지배에 함락되는 것을 경고하기 위해 알람을 울렸다, 책임리더들의 침묵을 뚫고.

리더의 죽음은 비장했다. 다행히 네이버는 ‘아직’ 젊은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기업 중 하나다.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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