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가 폭력’ 형제복지원, 35년간 지연된 정의

등록 2022-08-24 18:01
수정 2022-08-25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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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열린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한 피해 생존자 박경보(오른쪽)씨가 정근식 위원장과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군사독재 시절이던 1970~80년대 이른바 ‘부랑인 선도’를 명목으로 불법 감금과 강제노역, 성폭행 등 심각한 인권유린을 자행한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 191명이 24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로부터 진실규명 결정을 받았다. 이 사건을 ‘국가 폭력에 따른 인권침해 사건'으로, 수용자들을 ‘인권침해 피해자’로 공식 인정한 것이다. 1986년 검찰 수사와 1987년 야당의 진상조사 활동으로 이 사건이 공론화된 지 35년 만이다. 너무나 늦게 이뤄진 진실규명이다.

추가로 드러난 참상은 충격적이다. 형제복지원 수용자 가운데 사망한 사람은 지금까지 알려진 552명보다 105명이나 많은 657명으로 확인됐다. 관할 당국에 사망자 발생 보고를 빠뜨리거나 일부 사망자를 형제복지원 뒷산에 암매장한 것으로 드러났다. 부적응자나 반항하는 이들에게 정신과 약물을 과다 투약해 통제한 정황도 나타났다. 수많은 어린이가 형제복지원에 수용됐다가 해외로 입양 보내졌다는 증언도 나왔다고 한다. 1975년부터 1986년까지 형제복지원에 수용됐던 피해자는 총 3만8천여명에 이른다.

이 사건은 ‘국가의 총체적 실패’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만하다. 마구잡이식 부랑인 단속과 강제수용이 이뤄진 근거는 바로 정부가 만든 훈령이었다. 진실화해위는 이 훈령이 명확성·과잉금지·적법절차·영장주의 원칙 등을 모두 위반했다고 밝혔다.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위반자를 강제수용하고 감시하는 등 정부가 형제복지원을 적극 활용한 정황도 발견됐다. 인권침해에 대한 진정이 제기돼도 묵살하고 검찰 수사가 외압에 휘둘리는 등 사후적 대처에서도 국가는 제 역할을 다하지 않았다. 2018년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가 진상규명과 피해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한 뒤로도 4년이나 지나서야 진실화해위의 결정이 이뤄졌다.

진실화해위는 “국가는 형제복지원 강제수용 피해자와 유가족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피해회복과 트라우마 치유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정부는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는 국가의 책무를 방기한 데 대해 철저히 반성·사과해야 한다. 피해자들은 그동안 국가를 상대로 일일이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해왔는데, 정부의 전향적인 피해회복 방안이 필요하다. 박인근 전 형제복지원장 일가의 불법 축적 재산 환수에도 정부와 국회가 특별법 제정 등을 통해 적극 나서기 바란다. 더 이상 정의가 지연돼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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