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충격의 ‘미국대사 피습’, 한-미 관계 훼손 안 돼야

등록 2015-03-05 18:18
수정 2015-03-05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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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 한복판의 행사장에서 주한 미국대사가 흉기로 공격당하는 전례 없는 사건이 5일 벌어졌다. 일어나선 안 될 일이 일어난 것이다. 주최 쪽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와 정부의 책임이 크다. 하지만 개인적 돌출행동으로 보이는 만큼 한-미 관계에 영향을 주거나 사건을 불필요하게 확대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마크 리퍼트 대사는 민화협 주최 조찬 강연회에 참석해 강연을 준비하던 중 김기종씨로부터 느닷없이 흉기로 공격당했다. 외교사절을 습격하는 이런 행위는 용납할 수 없는 만행이다. 길이 11㎝, 깊이 3㎝의 얼굴 상처를 비롯해 여러 곳에 자상을 입은 리퍼트 대사가 빨리 치유되기를 기원한다. 김씨는 민화협 쪽의 초청장을 받긴 했으나 사전 예약이나 접수도 하지 않은 채 대사와 가까운 자리에 앉아 있었다고 한다. 주최 쪽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리퍼트 대사에 대한 경찰 등의 경호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것도 문제다. 대사관 쪽 요청이 없었다고 하지만 최근 웬디 셔먼 미 국무차관의 ‘과거사 발언’ 등으로 미 대사관 부근에서 집회가 이어지는 등의 상황을 고려하면 더 그렇다.

김씨는 극단적 민족주의자로 보인다. 그는 5년 전에도 한 행사장에서 주한 일본대사에게 콘크리트 조각을 던져 실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독단적이고 과시적인 성격도 나타난다. 그는 ‘혼자 범행했으며 열흘 동안 계획을 짰다’고 했다고 한다. 그가 작성해 현장에 가지고 온 유인물에는 한-미 합동 군사훈련 중단과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등의 주장과 함께 자신의 과거 활동을 소개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그는 오래전부터 문화운동 관련 활동을 하면서 통일문화연구소, 독도지킴이 등 여러 단체를 결성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독선적인 판단을 무모하게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다.

지금 한-미 관계는 이런 돌출 사건에 흔들릴 정도로 허술하지 않다. 한-미 사이에 여러 현안이 있긴 하지만 두 나라는 상호 존중과 대화를 통해 해법을 찾아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특히 리퍼트 대사는 지난해 10월 부임 이후 소탈한 행보로 한-미 관계를 증진시키기 위해 애써왔다. 누구든 한-미 관계의 안정과 발전을 바란다면 폭력에 기대려고 해서는 안 된다. 김씨가 시도한 것과 같은 방법은 오히려 현안을 논의하는 데 걸림돌이 될 뿐이다.

이번 사건을 잘 처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엄정한 수사가 이뤄져야 하겠지만 섣부른 예단은 금물이다. 이와 관련해 여권 일부에서 ‘친북’ ‘종북’ 등을 거론하며 이번 일을 빌미 삼아 공안몰이를 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우려스럽다. 이번 사건을 ‘주한 미국대사에 대한 신체적 공격일 뿐만 아니라 한-미 동맹에 대한 공격’이라고 확대해석한 박근혜 대통령의 언급도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김씨의 공격 행위 자체에 초점을 맞춰야지 무리하게 논점을 확대해서는 정부 부담이 커지는 것은 물론 한-미 관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미 두 나라는 이번 일이 한-미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도록 긴밀히 협력해나가기로 했다고 한다. 현명한 태도다. 정부 당국자의 말처럼 이번 일은 ‘한-미 관계 등 다른 문제와는 무관한 단발사건’이다. 충격적 사건이긴 하지만 ‘비 온 뒤 땅이 굳는다’는 말처럼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도록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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