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냄새까지 담는다…우주로 간 고고학

등록 2022-01-24 10:04
수정 2022-01-24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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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장 크기 다문화 우주서식지
우주에서 형성된 생활문화 추적

국제우주정거장이 퇴역하기 전에 우주의 생활과 문화를 역사적 기록으로 남기는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ISSAP 제공

인간의 우주 서식지에 대한 고고학적 탐구라는 이색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일종의 우주고고학이다.

그 첫 대상은 현재 유일한 우주 서식지인 국제우주정거장(ISS)이다. 이제 20년이 지나 노후화한 우주정거장이 퇴역해 사라지기 전에 우주정거장에서의 생활과 문화를 역사적 기록으로 남겨두자는 취지다.

오스트레일리아의 플린더스대 앨리스 고먼(Alice Gorman) 교수와 미국 캘리포니아의 채프먼대 저스틴 월시(Justin Walsh)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축구장 크기의 미세중력 시설인 국제우주정거장의 우주비행사 사회를 관찰해 분석하는 국제우주정거장고고학프로젝트(ISSAP)를 최근 시작했다. 2015년 아이디어가 처음 나온 지 7년만이다.

월시 교수는 “이번 프로젝트는 우주에 거주하는 인간과 사물 사이의 관계를 알아보는 최초의 시도”라며 “고고학적 관점으로 우주라는 활동 영역을 들여다봄으로써 사람들이 전혀 새로운 환경에 어떻게 적응해가는지 보여줄 계획”이라고 밝혔다.

연구진은 2000년 11월 우주정거장에 우주비행사들이 머물기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그 안에서 어떤 문화가 생겨나 어떻게 진화해왔는지, 그리고 이것이 장기체류 중에 부닥치는 기술, 공학, 의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떤 효과를 냈는지를 조사한다.

왜 이런 문제를 연구할까? 연구진은 “모든 문제엔 사회적, 문화적 측면이 있지만 대부분은 이를 자각하지 못한다”며 이를 파악하면 어떤 문제가 닥쳤을 때 최선의 해법을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주비행사들은 지상의 다른 문화권에서 온 사람, 장비, 공간(모듈)과 어떻게 교류하고 접촉하는가? 물질 문화는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성, 인종, 계층, 지위를 어떻게 반영하는가? 우주정거장의 공간과 사물은 우주정거장 내의 갈등이나 협력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가? 우주비행사들은 우주정거장을 어떻게 자신의 필요나 욕구에 맞도록 바꿨는가? 우주정거장의 사회문화에 미세중력은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연구진은 이번 연구에서 지상의 고고학에서는 제기할 수 없는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는다.

사진 촬영 지역으로 선정된 일본 실험모듈의 과학실험장 ‘익프레스 랙5’(EXPRESS Racks 5). ISSAP 제공

 매일 정해진 시간에 사진 촬영해 분석

지난 14일 시작된 이번 프로젝트의 첫 단계는 우주정거장의 일상을 사진에 담는 스퀘어(SQuARE=Sampling Quadrangle Assemblages Research Experiment) 실험이다. 일종의 표본 수집이다.

고고학은 과거 사람들이 살던 유적지를 파헤쳐 고대 사회의 생활상을 파악한다. 하지만 우주고고학은 연구진이 직접 현장에 갈 수 없다. 연구진은 대신 현장에 있는 우주비행사들에게 우주정거장 실내 사진을 찍도록 부탁했다.

이를 위해 고고학자들이 유적지에 시굴갱(test pit)을 파듯, 사진에 담을 가로-세로 1미터 크기의 공간을 정해 경계지점에 테이프를 붙였다. 우주정거장의 일과 휴식 공간을 대표해 작업 선반, 조리실 탁자, 화장실 맞은편 벽 등 6곳을 사진 촬영 지역으로 선정했다.

고먼 교수는 “역사적 유적지에서는 토양의 층별로 각기 다른 시기가 담겨 있지만, 우리는 우주비행사들이 매일 찍는 사진을 통해 우주정거장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퀘어 실험은 60일간 진행된다. 처음 30일 동안은 매일 정해진 시간에 사진을 촬영하지만, 그 이후엔 시간을 따로 정하지 않고 촬영한다.

우주정거장은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온 사람들의 복합 공동체다. ISSAP 제공

 향후 우주 생활·시설 설계에 활용

연구진은 다음 단계에선 그동안 우주정거장을 방문한 우주비행사 19개국 250명에 대한 인터뷰와 설문을 진행하고, 이를 그들이 찍은 수십만장의 사진과 함께 분석하는 작업을 할 계획이다.

연구진은 이와 별도로 우주비행사들의 우주정거장 기억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냄새, 공기, 소리 수집도 추진한다. 우주정거장 1년 연속 체류 기록을 세운 우주비행사 스콧 캘리는 우주정거장에서 나는 방부제, 쓰레기, 몸 냄새를 감옥 냄새에 비유한 바 있다. 우주정거장 냄새 보존을 위해선 내부 벽면에 낀 때를 벗겨내 수집하는 방법이 있다. 때에는 먼지, 머리카락, 피부세포, 기름, 음식물 찌꺼기 등 갖가지 냄새 물질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선 장비를 가져가야 하고 복잡한 승인 절차도 거쳐야 해 후순위로 밀렸다.

우주정거장에서 바라본 태평양. 나사 제공

연구진은 이번 연구를 통해 향후 달이나 화성을 포함한 인류의 우주 생활과 거주지 설계에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또 장기간 고립 생활을 해야 하는 남극 연구기지나 핵잠수함 운영에도 응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누리꾼이 프로젝트팀의 소셜미디어에 “우주정거장의 생활과 문화 연구를 왜 인류학자가 아닌 고고학자가 하느냐고 의문 제기 겸 질문을 던졌다. 연구진은 이에 대해 “고고학의 전통 영역인 물질 문화를 조사하기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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