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속 세상 바꾸는 판결 잇따라…한국서도 승소 나올까

등록 2022-08-01 08:00
수정 2022-08-01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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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기후소송 중]
판결 어떻게 나오고 있나?
1980년대부터 소송…2천건 넘어
과거엔 행위극, 현재는 변혁수단
‘위르헨다 판결’ 이후 잇단 승전보
‘국가→기업’ 소송상대 확장 추세
기본권 침해·정부 재량권 등 쟁점
국내선 “미래세대 보호” 헌소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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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기후소송은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됐습니다. 지난 5월까지 모두 2002건인데, 이 가운데 4분의 1이 최근 2년 사이에 제기됐어요. 특히 기후변화로 기본권이 침해됐다는 주장이 늘어났죠.”(조효제 성공회대 교수)

과거 기후소송은 상징적인 ‘퍼포먼스’(행위극) 성격이 강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네덜란드, 아일랜드, 독일 등에서 시민과 환경단체가 국가와 기업을 상대로 잇달아 승소하면서, 기후변화 소송은 현실을 바꾸는 강력한 수단으로 떠올랐다. 기후변화에 관한 대중의 의식을 일깨우는 수준을 넘어, 정부와 기업의 태도를 바꾸는 ‘힘센’ 소송이 된 것이다. 기후위기 대응 비영리단체인 플랜 1.5의 윤세종 변호사는 “2018년 기후변화 정부간 패널(IPCC)이 ‘1.5도 특별보고서’를 내면서, 기후변화의 다급성이 과학적으로 인정됐다”며 “(최근 경향을 보면) 기후변화가 시민 생존을 위협한다는 사실을 법원이 받아들이고 개입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기후변화와 관련한 법·제도와 정책을 국회 입법권 행사나 정부 재량으로만 보던 법원의 시각이 바뀌면서, 유럽을 중심으로 국가기관의 방어적인 대응에 브레이크가 걸리기 시작했다. 2019년 네덜란드 위르헨다 판결(온실가스 감축 책임이 정부에 있다는 것을 명시한 판결)을 시작으로 아일랜드, 독일로 시민들의 ‘승전보’가 이어졌다. 영국 런던정경대, 미국 컬럼비아대 등의 산하 연구기관은 기후변화 소송을 실시간으로 분석하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기후변화 소송의 개혁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기후소송단 등 청소년들이 2019년 5월24일 오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524 청소년기후행동’ 집회를 열어 정부에 기후변화에 대한 제대로 된 대응을 촉구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기후소송의 쟁점은 크게 3가지로 좁혀진다. ①미래세대의 권리가 직접적이고, 현재적으로 침해되는가? ②(기후변화 대응 정책이) 정부의 재량권으로서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되는가? ③정부의 불충분한 감축 목표가 시민 기본권을 침해하는가? 등이다.

이 가운데 의견이 첨예하게 맞서는 대목은 정부 정책의 재량권과 관련한 부분이다. 2016년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각국의 합의를 담은 ‘파리협정’이 발효되면서, 인류는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출구를 마련했다. 그런데 출구가 맞긴 할까? 파리협정은 ‘톱다운(하향식) 방식’이 아니라 ‘보텀업(상향식) 방식’이다. 지구 전체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하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나라별로 할당량을 분배하는 방식이 아니라는 얘기다. 파리협정은 산업화 대비 지구 지표면 기온 상승을 1.5~2도 아래로 묶어두자는 목표를 세웠지만, 각 나라가 ‘자발적으로’ 감축 계획을 세워 제출하는 선에서 타협했다. 파리협정이 각국에 온실가스 감축 계획을 자발적으로 제출하라고 한 만큼, 경제 여건과 재생에너지 보급, 기술 수준 등 사정에 따라 각 나라는 온실가스 감축 속도를 달리할 수 있다. 그런데도 온실가스 감축에 늑장을 부리는 정부의 기후변화 대응이 인권과 생존을 위협한다면, 법원이 나서 ‘주의 의무’를 위반했다고 판결할 수 있다는 게 원고들의 생각이다. 2019년 네덜란드의 위르헨다 소송이 대표적이다. 네덜란드 대법원은 이 소송에서 국가의 주의 의무 위반을 인정했다. 반면 오스트레일리아 청소년들이 같은 취지로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1심은 국가의 주의 의무 위반을 인정했으나, 항소심은 지난 3월 1심 판결을 뒤집고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국내에서는 2019년부터 지난달까지 모두 네 건의 헌법소원이 제기됐다. 네 건 모두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가 미흡해 시민과 미래세대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취지다. 청소년기후행동이 2020년 3월 청구한 헌법소원과 청소년 2명 등이 같은 해 11월 청구한 헌법소원, 그리고 지난 6월 5살 이하 아이 40명 등 62명이 제기한 ‘아기기후소송’은 태아부터 청소년에 이르는 미래세대의 권리를 중시한다. 지난해 10월 기후위기비상행동과 녹색당 등 130여명이 청구한 헌법소원은 시민의 피해를 다룬다. 다만 이들 헌법소원 사건의 진행 상황은 더디기만 하다. 헌재는 2020~2021년 제기된 사건들을 여전히 심리 중이다.

‘아기기후소송’을 대리하는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의 김영희 변호사는 미래세대가 기후정의 관점에서 ‘약자’이자 ‘희생자’라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태아와 어린아이 등 미래세대는 기성세대에 견줘 탄소중립기본법의 보호를 충분히 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제출한 헌법소원 청구서를 보면,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로 제한할 경우, 2017년에 태어난 아기가 배출할 수 있는 탄소량은 1950년에 출생한 성인이 배출했던 양에 견줘 8분의 1로 줄어든다. 어린 세대일수록 지금보다 훨씬 세게 허리띠를 졸라매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여름에는 빵빵하게 틀었던 에어컨, 저가항공을 타고 가는 외국여행 등 지금까지 누려왔던 문명의 호사를 미래세대는 누릴 수 없다. 아기기후소송은 영국 <가디언>, 독일 <도이체 벨레>가 보도하는 등 외국 언론의 관심을 받고 있다.

최근 기후소송 경향은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기업을 상대로 한 소송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2021년 네덜란드의 ‘지구의 벗 대 로열더치셸’ 판결이 신호탄이었다. 1심 재판부인 헤이그지방법원은 로열더치셸의 자체적인 탄소 감축 계획이 인권을 침해한다며 “2019년 대비 2030년까지 탄소 45%를 감축하라”고 결정했다. 윤세종 변호사는 “기후변화 대처는 착한 기업, 나쁜 기업의 문제가 아니다. 사법부 힘을 빌리지 않으면 안 될 생존과 인권의 문제가 됐다”고 말했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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