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기업들이 ‘산재사망 처벌’ 두려워하는 까닭은

등록 2022-07-07 05:00
수정 2022-07-07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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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처벌법 모태 영국 ‘기업살인법’
전문 법학자 빅토리아 로퍼 교수 인터뷰

빅토리아 로퍼 영국 노섬브리아대 교수가 5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 바이 케이트리’ 호텔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신다은 기자

“지금까지 기업살인법으로 처벌된 회사는 안전관리를 전혀 하지 않은 ‘최악의 기업들’이었다. 안전에 대한 최소한의 성의를 보이라는 취지다.”

빅토리아 로퍼 영국 노섬브리아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조교수(사진)는 지난 5일 <한겨레>와 만나 중대재해처벌법 모태가 된 영국의 ‘기업과실치사법 및 기업살인법’(기업살인법)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로퍼 교수는 ‘법인과실치사법 제정 10년의 평가’ 연구논문을 내기도 한 법학자로 지난 4일부터 열린 산업안전보건공단의 ‘산업안전보건강조주간’ 국제 세미나 참석을 위해 방한했다.

그는 기업살인법 유죄 판결을 받은 기업이 33곳뿐이라는 이유로 일각에서 주장하고 있는 ‘무용론’에 대해 “적용 사례가 적지만 한번 기소되면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200만파운드(약 31억원)에 달하는 벌금도 부과된 적이 있어 그 무게가 가볍지 않다”며 “기업도 소비자 평판과 처벌 위험 때문에 산업안전보건법보다 기업살인법으로 기소되는 것을 더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지난 2007년 영국에서 제정된 기업살인법은 개인만을 대상으로 한 기존 법체계로는 산재 사망을 예방하기 어렵다고 보아 법인에 대해서도 책임을 묻는다. 고위 경영진이 중대한 안전관리 의무를 위반해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규명되면 범죄가 성립된다. 중대재해처벌법과 거의 유사한 구조이나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는 한국과 달리, 법인을 처벌하며 벌금 상한선이 없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노동자 사망 원인이 안전관리 소홀로 판명될 경우 경영책임자는 1년 이상 징역이나 10억원 이하 벌금을 물릴 수 있도록 했다. 지난 6월 박대출 국민의힘 의원은 ‘과도한 처벌로 선량한 자의 억울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며 중대재해 예방 기준을 고시하고 기업이 이에 따른 인증을 받은 경우 처벌을 감경·면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윤석열 정부는 법의 불명확성과 기업에 대한 과도한 처벌 부담을 이유로 중대재해법 시행령 개정을 검토하고 있다.

로퍼 교수는 법만이 산재 감축의 “요술방망이”일 수 없다며 근로감독과 기업의 안전관리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영국은 건설업 기업들이 자주 발생하는 재해 유형을 분석하고 (사업장 근로조건을 확인하는) 근로감독관이 작업중지를 명령하거나 위험한 설비를 개선하도록 강력히 요구한다.”

최근 윤석열 정부는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에서 근로감독관의 주요 권한인 ‘작업중지 명령’을 현행보다 축소할 뜻을 내비쳤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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