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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공동체 `광야에서'가 마련한 세종호텔 해고노동자 고진수 지부장 고공농성 지지 기도회가 16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호텔 건너편 명동역 1번출구 인근에서 진행돼 고 지부장이 기도회를 지켜보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예배공동체 `광야에서'가 마련한 세종호텔 해고노동자 고진수 지부장 고공농성 지지 기도회가 16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호텔 건너편 명동역 1번출구 인근에서 진행돼 고 지부장이 기도회를 지켜보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한때 잘나가는 4성급 세종호텔 일식집 ‘후지야’의 주방장이던 고진수씨는 16일 점심밥은 동료들이 올려보내준 자장면으로 때웠다. 서울 중구 명동 세종호텔 앞 도로 위 10여m 높이 지하차도 진입 차단시설에 지난 13일 설치한 고씨의 1인 고공농성장에선 조리를 할 수 없는 탓이다. 농성장 바로 아래로는 하루에 차량 수만대가 씽씽 달리며 먼지를 피워 올리지만, 3년3개월 전 정리해고를 당하며 조리실을 빼앗긴 고씨 가슴은 답답하기만 하다.

2021년 11월 세종호텔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영 위기를 명분으로 20년차 고씨 등 15명을 정리해고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관광레저지부의 고진수 지부장을 포함한 조합원들이 주요 대상이었다. 고씨 등은 세종대학교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대양학원의 주명건 전 이사장이 2009년 세종호텔 회장으로 온 뒤 노조 탄압이 거세졌다고 말한다. 호텔은 계속 규모를 줄여갔다. 한때 270여명이었던 정규직은 이제 20명 남았다. 호텔 안에 있던 일식당, 중식당, 한식당, 외식사업부 등도 모조리 정리하는 바람에 고씨 등은 돌아갈 일터까지 잃었다. 그새 세종호텔은 4성 호텔에서 3성으로 떨어졌다.

코로나19 국면이 지나고 호텔 경영이 나아진 만큼 정리해고된 이들을 복직시켜달라는 게 고씨 등 남은 조합원 6명의 요구다. 객관적 여건은 녹록잖다. 중앙노동위원회와 서울행정법원, 서울고법에 이어 지난해 12월 대법원까지 이들에 대한 정리해고엔 문제가 없다는 판결을 내놓았다. 하지만 고씨는 이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호텔이 연회장 문만 열어도 호텔 등급이 올라가고 모든 조건이 괜찮다”며 “세종호텔이 정리해고를 철회하고 해고자를 복직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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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구조물 위에 선 고씨를 지탱하는 것은 시민들의 연대다. 12·3 내란사태 이후 확산된 노동자·농민에 대한 시민들의 연대는 세종호텔 앞까지 이어졌다. 한화오션 하청노동자 등 전국금속노동조합 투쟁에 연대하며 스스로 ‘메탈(금속) 말벌’이라 불렀던 시민들 가운데 10여명은 ‘호텔 말벌’로 이름을 바꿔 매일 밤 고씨를 찾고 있다. 직장과 학교를 마친 뒤 농성장을 찾아 밤을 새우며 그를 응원한다. 지난 15일 서울에서 열린 탄핵 찬성 집회 참가자 수천명 역시 고씨 농성장 쪽을 찾아와 힘을 보태기도 했다.

고씨는 “호텔 말벌들을 비롯한 시민들의 연대를 보며 ‘이 싸움 한번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매일 농성장을 찾아 밤을 지새우는 분들을 보며 어디에서 저런 열정이 나오는지 내가 놀랄 지경이다”라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