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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쌤, 페미죠?” 교실도 휩싸인 백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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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1-05-17 04:59
수정 2021-06-13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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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교육 안 통하면 왕따’
진위 확인 안된 청와대 청원 20만명
박나래 등 논란 학교에서도 이어져

2018년 11월3일 서울 파이낸스 빌딩 앞에서 열린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 학생회 날 스쿨미투 집회에서 참가자가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교사 집단이 은밀하게 페미니즘을 학생들에게 주입하고자 사상 주입이 잘 통하지 않는 학생들에겐 따돌림을 당하게 유도하고 있다.’

지난 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와 하루 만에 답변 기준(20만명)을 넘긴 글의 일부다. 이 청원글이 올라온 뒤 서울대 사범대 대표자연석회의는 ‘사범대 학우들이 분개하고 비판하는 사안인 만큼 사실 규명을 촉구하기 위해 아동세뇌대응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겠다’는 의결 내용을 밝혔다가 학내 비판을 받고 지난 10일 사과 성명을 내놓는 웃지 못할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최근 방송인 박나래씨가 유튜브 예능에서 남자 인형을 이용해 성적 묘사를 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고발당하고 지에스(GS)와 경찰청 홍보물의 집게손가락 이미지가 ‘남성 비하’의 의도를 담아 제작됐다는 주장이 일파만파 확산하는 등 페미니즘 ‘백래시’(반발성 공격) 현상이 잇따르면서 학교와 관련해서도 진위가 확인되지 않은 백래시성 주장이 나와 파장이 일고 있다.

교육부는 발빠른 대응에 나섰다. 교육부는 지난 12일 경찰청에 이 글의 진위를 확인해달라며 조사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아직 피해자가 없어 수사 의뢰 요건에는 부합하지 않지만, 빨리 진위를 가려 불필요한 논란을 가라앉히자는 취지다. 경찰 조사로 청원글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교육당국이 심각하게 다뤄야 할 사안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지난 14일 성명서에서 “교사가 학생의 따돌림을 조장하는 행위는 어떠한 목적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으며 아동학대”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학교 현장에선 이 청원글의 진위와 상관없이 이미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 교사에 대한 비난이나 공격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대전의 한 고등학교 3학년인 진아무개(17)양은 16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얼마 전 남학생들이 쉬는 시간에 모여서 박나래씨를 두고 ‘분명히 메갈(지금은 문을 닫은 온라인 커뮤니티 ‘메갈리아’의 줄임말)일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 학교에는 무작정 페미니즘 관련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들도 있다. 진양은 “페미니즘은 여성이 남성보다 우월하다는 게 아니라 성평등을 이야기하는 것인데도 성평등 수업에서 페미니즘을 주제로 토론하면 무조건 ‘군대’ 이야기를 꺼내면서 싸우려고만 한다”며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영어 수업 시간에는 남학생들이 선생님이 들릴 정도로 ‘메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최근 들어 교실 안에서의 백래시가 굉장히 심해졌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손지은 전교조 여성부위원장도 “중·고등학생들이 교사에게 대놓고 ‘선생님 페미(페미니스트)죠’라고 조롱하듯 묻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정지원 대표도 “백래시 이슈들이 직접적으로 학교 안에서 많이 언급되지 않더라도 온라인에서 백래시가 심해질수록 학교에서 진행하는 성평등 교육 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남학생들 중심의 백래시 현상은 2010년대 중후반 ‘미투 운동’ 등이 일어나면서 본격화했다. 청소년 성교육·성상담 전문기관인 ‘아하! 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아하 센터)가 2018년 9월 전국 13~18살 청소년 33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 ‘미투운동을 지지하고 응원해주고 싶다’는 문항에 여학생이 92%가 ‘그렇다’고 대답한 반면, 남학생은 60.5%에 그쳤다. ‘모든 남자를 성폭력 가해자로 보는 것 같다’는 문항에는 남학생의 49.2%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여학생은 18.1%에 불과했다. 특히 ‘성폭력 예방을 위해 학교에도 페미니즘 교육이 필요하다’는 문항에는 남학생 4명 가운데 1명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당시에도 남학생들이 페미니즘 동아리 홍보 벽보를 찢어 엉덩이 깔개로 사용하거나 페미니스트 교사에 대한 교원평가에 인신공격 또는 혐오 표현을 도배하는 사례가 있었다.

더욱 우려되는 지점은 남학생들의 성평등 의식 수준이 학교급이 올라갈수록 역행해 오히려 초등학생 때보다 더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초등학교 6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남·여학생 892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 ‘여성은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서 권리만 내세운다’는 문항에 ‘그렇다’고 답한 비율이 초등학교 6학년 남학생은 11.6%지만, 고등학교 2학년 남학생은 20.8%에 달했다. ‘여성의 권리가 강조되는 분위기가 남성의 권리를 위협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초6 남학생은 12.5%가 동의했지만 고2 남학생은 33%가 동의했다. 조사에 응한 전체 남학생 4명 가운데 1명은 ‘우리 사회에는 성평등 정책이나 페미니즘이 필요없다’고 답했다.

이런 현상이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일고 있는 여성혐오적 ‘고발’ 움직임들과 맞물리면서 학교 내 백래시 현상이 더 심각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교육계에서는 성평등 교육이 학교 현장에서 더 단단히 뿌리내릴 수 있도록 교육당국이 강력한 메시지를 내놓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당시 ‘성평등·인권교육을 공교육에 포함시키겠다’는 공약을 내세웠고 이후 교육부는 2018년 12월 학교 양성평등 교육 강화안 등을 담은 ‘교육분야 성희롱·성폭력 근절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성평등 교육은 여전히 교사 개인의 의지에 기대어 있는 게 현실이다. 성평등 교육은 범교과 학습 주제(교과와 창의적 체험활동 등 학교 교육활동 전반에 걸쳐 통합적으로 다루는 교육 내용) 가운데 인권교육의 하나로 포함돼 있지만 성폭력예방교육이나 재난안전교육처럼 법정 의무교육 시수가 정해져 있지 않다. 정책적인 지원도 아직 부족하다. 교육부는 학생 발달단계별 양성평등교육 프로그램과 교원용 양성평등교육 가이드라인을 2020년부터 개발·보급하기로 했지만 여태껏 미완성 상태다. 손지은 전교조 여성부위원장은 “교육당국이 단기적 봉합에 그친다면 혐오의 말을 하는 학생 등에게 용기를 주는 것밖에 안 된다”며 “교실 안팎의 백래시를 제대로 문제화하고 심도 깊은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지은 이유진 기자 quicksilv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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