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낡은 집 한 채 탓 탈락도…기초수급 신청자 45% 고배

등록 2022-09-23 07:00
수정 2022-09-23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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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의료·주거·교육 급여현황 보니

서울 중구 만리동1가 만리동공원에서 한 노숙인이 그늘을 찾아 짐수레를 끌며 이동하고 있다. 사회 안전망 밖 ‘빈곤한 비수급자’들은 스스로 고립을 택하기도 한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올해 들어 생활고를 호소하며 행정복지센터(옛 읍·면사무소, 동주민센터)를 찾아 국민기초생활보장을 신청한 10명 가운데 4.5명은 생계·의료·주거·교육 등 단 한 종류의 급여도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생활이 어려워도 도움받지 못하는 빈곤층이 다수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숫자다. 최후 안전망 밖 위기 가구를 지원하기 위해선 재산 기준을 완화하는 등 대책이 필요하다.

22일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실이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올해 1~7월 41만5890명이 기초생활보장을 신청했으나 소득·재산 조사를 거쳐 18만5202명(44.5%)이 4개 급여 수급자 선정에서 모두 탈락했다. 기초생활보장 신청을 위해선 거주지 행정복지센터 상담을 거쳐야 한다. 담당 공무원이 통장 사본·임대차계약서 등을 참고하기도 하는데, 그만큼 급여 수급이 가능한지 가늠한 뒤 신청이 이뤄진다는 의미다.

기초생활보장 신청자는 2017년 45만4507명에서 2021년 94만3720명으로 최근 5년 동안 갑절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 1개 이상 급여를 받은 수급자는 18만9278명에서 56만3136명으로 세배가량 증가했다. 반면, 아무 급여도 받지 못한 탈락자 비율은 소폭 감소했다. 2017년 신청자 58.4%(26만5229명)가 4개 급여 선정에서 탈락했다. 이러한 비율은 2018년 49.6%(38만5086명), 2019년 50.2%(35만7453명), 2020년 42.6%(33만7964명), 2021년 40.3%(38만584명)로 감소세를 보이다, 올해 7월 기준 44.5%로 늘었다. 4개 급여를 모두 받은 신청자는 2017년 2335명(0.5%)에서 2021년 1611명(0.2%)으로 되레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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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생활보장 신청 급증한 까닭

기초생활보장 신청이 급증한 건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화했기 때문이다. 부양의무자 기준이란 가난해도 일정 이상의 소득·재산을 가진 부모·자녀(부양의무자)가 있으면 급여를 받을 수 없도록 한 제도다. 생계급여의 경우 2017년 1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다섯차례에 걸쳐 기준을 완화해, 현재 부양의무자 가구 연 소득이 1억원(월 834만원)을 넘거나 재산이 9억원을 초과할 경우에만 적용한다. 주거·교육급여는 각각 2015년과 2018년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됐고, 의료급여엔 아직 남아 있다.

수급 조건을 개선했음에도 40%가 넘는 신청자가 급여 선정에서 탈락한 까닭은 무엇일까?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기초생활보장을 신청했다는 건 행정복지센터 상담을 통해 어려운 사정이 어느 정도 인정됐다는 이야기”라며 “전체 신청자 40%가 아무 급여도 받지 못한 건 선정 기준이 여전히 까다롭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기초생활보장을 받기 위해선 각 급여 기준선보다 월 소득인정액이 적어야 한다. 소득인정액은 가구 구성원의 모든 소득을 월 단위로 계산한 ‘소득평가액’과 재산을 월 소득으로 변환한 ‘재산의 소득환산액’을 합한 금액으로, 계산이 복잡하며 가난한 현실을 반영하는 데 한계가 있다. 김태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불평등소득정책연구실장은 “생계급여 부양의무자 기준이 거의 다 없어져 올해엔 본인이 미처 몰랐던 (가구원) 소득이 있거나 재산 기준 때문에 수급에서 탈락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허물어져가는 낡은 집 탓에 수급 탈락

올해 4월 서울 종로구 창신동 허물어져가는 낡은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된 80대 어머니와 50대 아들은 한달 소득이 50만~60만원에 그쳤음에도 생계급여조차 받지 못했다. 살던 집(공시가격 1억7천만원) 소득환산액 약 250만원과 매달 받은 기초연금 등을 합친 월 소득인정액이 317만원이었기 때문이다. 2인 가구가 생계급여를 받으려면 월 소득인정액이 97만8천원을 넘으면 안 된다.

재산의 소득환산액은 기본생활을 위해 필요한 재산(기본재산액)을 공제하고 남은 재산가액에 일정 비율을 곱해 산정한다. 정부는 생계급여 재산 환산에서 공제 금액을 내년 9900만원(대도시 기준)으로 올리기로 했지만 이러한 조처만으론 사각지대를 대폭 좁히긴 어렵다. 류만희 상지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지금은) 재산을 모두 소진해야 생존권을 보장해준다”며 “재산의 소득 환산 비율을 과감히 줄여 (지원이 필요한 취약층이) 수급을 받지 못하는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재희 기자 lim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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