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원인조사’ 건너뛰고 재발방지대책 만든다는 행안부

등록 2023-01-25 09:00
수정 2023-01-25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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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 지원 업무도 유명무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설 연휴 첫날인 21일 예고 없이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았다.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제공 동영상 갈무리

재난안전 총괄부처인 행정안전부가 이태원 참사 재난원인조사를 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으로 24일 드러났다. 이태원 참사 책임을 회피해온 행안부가 비슷한 재난의 재발을 막기 위한 출발점인 재난원인조사마저 손 놓으면서 재난안전 총괄 기능을 사실상 포기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을 보면 이태원 참사처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거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꾸려진 재난에서 조사·분석·평가가 필요하면, 행안부가 재난원인조사를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재난원인조사는 원인 조사뿐 아니라 관계기관에 재발 방지를 위한 개선사항을 권고하고, 이행사항을 점검하는 절차다. 하지만 행안부는 이태원 참사의 경우 ‘수사나 재판이 진행 중인 경우’ 조사하지 않을 수 있다는 재난안전법 시행령을 근거로 재난원인조사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행안부 관계자는 “경찰 특별수사본부(특수본)가 조사했기 때문에 별도의 (재난원인)조사는 불필요하다”며 “복수의 기관에서 동시에 같은 건에 대해서 조사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행안부는 이날 설명 자료를 내어 “추가적인 원인조사보다는 (경찰에서) 이미 실시한 원인조사 결과를 감안해 유사 재난 및 사고 방지를 위한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며 관련 대책을 이달 말에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경찰 수사를 이유로 재난원인조사를 하지 않겠다는 행안부의 해명은 과거 사례에 비춰 설득력이 떨어진다. 2014년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 사고’부터 2022년 ‘물류창고 화재 원인조사’까지 행안부는 지난 9년간 총 31건의 재난원인조사 보고서를 작성했는데, 대부분 검경 수사가 이뤄진 사례였기 때문이다. 또한 전문가들은 경찰 수사가 재난대응체계의 점검과 제도 개선 등에 방점을 두는 재난원인조사를 대체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이동규 동아대 교수(재난관리학)는 “경찰 수사와 국정조사가 있었지만, 재난대응 시스템이 왜 작동하지 못했는지 등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정부 기관의 재난 대응 타임라인마저 정확하게 정리된 것이 없다. 이런 상태로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겠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윤복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10·29 이태원 참사 대응 태스크포스팀 단장 역시 “대형 인명 피해 사건마다 전문가를 중심으로 원인조사를 하던 행안부가 159명을 잃은 이태원 참사만 누락하는 것을 누가 납득할 수 있겠냐”며 “행안부의 직무유기”라고 말했다.

행안부의 유가족 지원 업무도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행안부는 지난해 11월30일 ‘이태원 참사 행안부 지원단’(지원단)을 구성해 유가족과 수시로 소통하겠다고 밝혔지만 유가족협의회 쪽은 제대로 된 연락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이종철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는 “지난해 12월 초 행안부 쪽에 전화해 ‘지원단에 어떤 계획이 있냐’고 물었더니 ‘아직 계획이 없다’고 답하더라. 그 뒤로 지원단 쪽에서 연락이 없었다”고 말했다. 고 최민석씨의 어머니 김희정씨 역시 “참사 초기 주민센터에서 연락 온 것이 전부”라고 했다.

한편 행안부가 재난안전 주무부처로서 제구실을 하지 못하는 가운데 야당은 유가족 피해를 지원하고 독립적인 진상조사 기구를 설치하는 내용을 담은 ‘이태원 특별법’을 추진한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가 조만간 이태원 특별법 추진 방향을 발표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 정환봉 기자 ga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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