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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월세만 남긴 채…벼랑끝 세 모녀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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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4-02-27 21:35
수정 2014-02-28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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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고를 비관한 세 모녀가 26일 저녁 8시30분께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은 70만원이 담긴 새하얀 봉투를 남겼다. 방세 50만원과 가스비 12만9000원, 전기료·수도료 등을 어림한 돈이었다. 봉투 겉면엔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이들이 숨을 거둔 비좁은 방(오른쪽 사진)은 작은 침대와 이불, 각종 세간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정환봉 기자, 서울지방경찰청 제공

송파 반지하방서 동반 자살
주인에 “정말 죄송”…70만원 봉투 담아
30대 두 딸 ‘신불자’…큰딸은 병까지
남편은 12년 전 암으로 떠나
한달 전 다쳐 식당 일마저 끊겨

하얀 봉투엔 5만원짜리 14장이 들어 있었다. “주인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조차 그들은 ‘미안하다’고 봉투에 적었다. 60대 어머니와 30대 두 딸은 돈봉투를 남기고 이승을 떠났다.

박아무개(61)씨와 큰딸 김아무개(36)씨, 작은딸(33)이 숨진 채 발견된 건 26일 저녁 8시30분께였다. 서울 송파구 석촌동의 2층짜리 단독주택에 딸린 반지하집이었다. 27일 오후 <한겨레> 기자가 찾아간 이들의 집은 33㎡(10평) 남짓했다. 방 2개와 주방이 전부였다. 큰방은 세 모녀가 숨을 거둔 이불 두채와 작은 침대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침대 머리맡에는 이들에게 몸을 비볐을 작은 고양이 한마리가 몸을 웅크린 채 숨져 있었다.

허름한 방 한쪽 벽에 걸린 액자 속 사진은 이들의 단란한 한때를 떠올리게 했다. 12년 전 방광암으로 숨진 박씨의 남편과 세 모녀는 가족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남편과 아버지를 잃은 이들은 2005년 이곳으로 이사왔다고 한다.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8만원이었다. 큰딸은 당뇨와 고혈압에 시달렸고, 작은딸은 편의점 아르바이트 등 불안한 일자리를 떠돌았다. 큰딸의 수첩에는 1년 전부터 당뇨 수치가 기록돼 있었다. 경찰은 “돈이 없어 병원도 못 가고 약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오롯이 박씨의 식당일로 생계를 꾸렸다. 두 딸은 신용불량자여서 일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세 모녀의 비극은 박씨가 1월 말께 넘어져 오른팔을 다치면서 비롯됐다. 이들이 떠나버린 집엔 박씨가 썼던 ‘석고붕대 팔걸이’가 걸려 있었다. 박씨는 팔에 깁스를 하고 나서 식당일을 나가지 못했다. 큰방과 맞붙은 폭 1m가량의 좁은 주방에는 먹다 남은 밥이 놓여 있었다. 주전자 등 세간 살림도, 이들의 마지막 절망을 보여주듯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이들이 삶을 마치기로 마음먹은 것은, 지난 20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집에서 발견된 영수증에는 20일 600원짜리 번개탄 2개와 1500원짜리 숯, 20원짜리 편지봉투를 산 기록이 남아 있었다. 번개탄은 간이침대 밑 냄비 속에서 재가 돼버렸고 숯은 싱크대 위에 봉투도 뜯기지 않은 채 놓여 있었다. 봉투는 70만원이 담긴 채 큰방 서랍장 위에 놓여 있었다. 지난해 초부터 50만원으로 오른 이달치 방세와 가스비 12만9000원, 전기세·수도세 등을 어림한 돈이었다.

집주인 임아무개(73)씨는 “이번달 전기요금이 얼마인지 알려주려고 일주일 전부터 찾아갔지만 인기척이 없었다”고 했다. 이들의 죽음은, 임씨가 “텔레비전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문과 창문을 두드려도 아무런 대답이 없어 경찰에 신고”하면서 발견됐다.

집주인 임씨는 “모녀가 조용한 편이라 교류가 없었고 집에 찾아오는 사람은 9년 동안 한번도 없었다”고 전했다. 박씨의 외삼촌은 “가끔 전화를 하면 ‘잘 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죽음을 선택할 정도로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세 모녀는 정부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 송파구청 관계자는 “박씨가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으로 수급 신청을 한 기록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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