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이재용, 에피스 나스닥 상장에 직접 관여했다

등록 2020-06-25 16:05
수정 2020-06-25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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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부양’ 에피스 상장 발표 추진
이재용, 공동투자사 대표와 직접 통화
합의 불발에도 미전실 주도 ‘상장 발표’
변호인 “내용 모르고 메모대로 읽은 것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8일 오전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으러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서관 1층에 들어서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바이오에피스(에피스)의 나스닥 상장 추진 발표 직전 공동투자사인 바이오젠 대표와의 통화에서 ‘상장 뒤 지분구조’를 직접 논의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던 사실이 확인됐다. 하지만 이로부터 몇주 뒤 에피스는 “내년 상반기에는 상장이 가능하다 “고 발표해, 이 부회장이 바이오젠과의 합의 불발로 상장이 당분간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성사를 위해 상장 추진 발표를 용인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엘리엇 공시 뒤 에피스의 나스닥 상장 발표 검토

25일 바이오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2015년 6월5일 무렵부터 삼성은 한동안 중단됐던 에피스의 나스닥 상장 추진 발표를 검토하기 시작한다. 미국의 헤지펀드인 엘리엇이 돌연 삼성물산의 주식 7.12%를 보유하고 있다고 공시(6월4일)한 직후였다. 엘리엇의 반대로 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 성사가 불투명해지면서, 에피스의 공동투자사인 바이오젠과의 협상 난항으로 장기과제로 젖혀뒀던 에피스의 나스닥 상장 추진 발표를 검토하게 된 것이다. 에피스의 나스닥 상장 추진 사실이 알려지면, 에피스를 손자회사로 둔 제일모직의 주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거라는 판단에서다.

에피스의 나스닥 상장을 위해서는 공동투자사인 바이오젠과의 합의가 필수적이었다. 바이오젠은 삼성바이오(85%)에 비해 지분은 15%로 적었지만, 싼값에 지분 절반가량을 사들일 수 있는 콜옵션을 보유하고 있었다. 게다가 바이오젠은 제삼자에게 에피스 신주를 발행할 때 먼저 사들일 수 있는 우선매수권도 가진 상황이어서, 바이오젠 동의 없이 상장이 추진되면 바이오젠이 지분을 대거 사들여 경영권을 가져갈 수 있었다. 바이오사업을 ‘이재용의 사업’으로 여겨 경영권 확보가 절실했던 삼성은 바이오젠에 ‘콜옵션 행사 뒤 지분을 사들이는 방안’을 거듭 타진했지만, 바이오젠은 수차례 말을 바꿔가며 이를 거부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두 회사가 ‘상장 뒤 지분구조’ 문제로 합의를 보지 못해, 신주발행·구주매출 등 구체적인 상장 일정이 정해지지 않아 사실상 상장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검찰은 2014년 말∼2015년 초에 삼성이 ‘상장은 당분간 어렵다’고 결론 내린 물증을 다수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용과 바이오젠 대표의 통화

이런 난항 속에 2015년 6월 나스닥 상장 추진이 재개되자, 이 부회장은 바이오젠의 조지 스캥고스 대표와 직접 통화한다. 이 부회장은 스캥고스에게 “에피스의 나스닥 상장 뒤에 지분구도를 어떻게 보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이에 스캥고스 대표는 “콜옵션을 행사해서 지분 절반을 차지한 뒤 구도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선을 그은 것으로 전해졌다. 스캥고스 대표가 지분을 팔아서 경영권을 삼성에 넘길 계획이 없다고 명시적으로 알린 셈이다.

이 부회장의 직접 통화에도 합의에 이르지 못하자, 고한승 에피스 대표는 미국 바이오젠사를 직접 찾아가 스캥고스 대표를 만난다. 이 자리에서 고 대표는 “상장 뒤 삼성이 지분을 사들일 수 있도록 결정해달라”고 거듭 설득하며 그 시한을 그 해 7월17일로 잡았다고 한다. 이날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여부가 결정되는 주주총회가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바이오젠은 고 대표의 요청을 거부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홍순탁 회계사(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는 “바이오젠이 콜옵션과 우선매수권을 이용해 지분을 절반 넘게 사들이게 되면 52% 동의권 조항이 무력화되면서 바이오젠이 에피스를 단독 지배할 수 있는 상황이므로, 바이오젠과의 합의가 없으면 상장은 객관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고 짚었다.

이렇듯 마지막 순간까지 나스닥 상장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에피스는 합병 주총을 2주가량 앞둔 2015년 7월1일 “나스닥 상장이 내년(2016년) 상반기에는 가능하다”고 알린다. 상장 과정을 잘 아는 업계 관계자는 “‘7월1일’은 에피스의 실무진이 아니라 당시 미래전략실에서 골랐다”고 전했다. 바이오젠은 에피스의 일방적인 발표 직후 삼성에 항의의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겨레>는 삼성이 합병을 앞두고 주가 부양을 위해 나스닥 상장 발표 날짜를 택일한 문건을 작성한 사실을 보도한 바 있다. ( ▶관련기사 보기 : [단독]삼성, 물산 합병 때 주가 띄우려 ‘에피스 나스닥 상장’ 발표했다)

에피스 임원 “상장 내용 이재용에게 보고”

삼성은 이 부회장이 에피스 상장에 관여됐다는 정황을 숨기는 데 필사적이었다. 에피스의 나스닥 상장 추진은 ‘삼성물산·제일모직 불공정 합병’과 ‘삼성바이오 회계사기’ 사건의 교차점에 있는데, 이 부회장의 관여 사실이 드러나면 두 사건 모두에 직접 연루된 정황이 짙어지게 된다. 삼성은 이 부회장과 바이오젠 대표와의 통화에 대해서 ‘신약 개발에 관한 통화이지 지분재매입 등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고 주장해왔으나, 이 부회장이 직접 ‘상장 뒤 지분구조’를 물은 것으로 드러나면서 직접 관여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삼성은 2018년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 회계사기’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가시화되자 삼성바이오와 에피스 직원들의 노트북에서 ‘제이와이(JY·이재용 부회장을 지칭)’, ‘나스닥’, ‘상장’, ‘지분재매입’ 등의 열쇳말이 들어간 문서들을 삭제하도록 했다. 삼성바이오 등의 증거인멸 사건 판결문을 보면, 양아무개 에피스 상무는 검찰 조사에서 “상장 관련 내용은 이재용 부회장에게 대부분 보고됐기 때문에 지우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관련 내용이 이 부회장이나 미래전략실에 보고됐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단어들을 (삭제할 검색어로) 선택했다”고 진술했다. ( 관련기사 보기 : 이재용 수사 최대 승부처, 에피스 나스닥 상장 발표 ‘허위’ 여부)

이 부회장이 엘리엇의 공시로 합병이 무산될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직접 에피스의 나스닥 상장 협상에 나선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 부회장 본인이 ‘허위 상장 발표’에 관여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이 부회장이 에피스 나스닥 상장이 사실상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도 주가 부양을 위한 상장 발표를 용인하거나 지시했다면, 자본시장법 위반(부정거래)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이 부회장 변호인은 “스캥고스 바이오젠 사장이 이 부회장과 통화를 원했고, 이 부회장은 고한승 에피스 사장으로부터 콜옵션 행사할 건지, 지분구조 어떻게 할 건지 등 궁금하다고 한 내용을 메모로 전달받아 물어본 것이다. 이 부회장은 내용을 잘 모르는 상황에서 고 사장이 적어준 것을 스캥고스 사장에게 질문해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당시 스캥고스 사장은 상장에 원칙적으로 동의한다고 했다. 이 통화가 2015년 4월이고 7월에 상장 계획을 발표했다. 그런데 뒤로 갈수록 바이오젠이 그걸 빌미로 에피스가 만든 약의 판권을 달라고 하는 등 무리한 요구를 해와 그해 12월에 상장이 결렬된 것이다. 그사이에 상장 주관사로 시티그룹이 선정되고, 미국 뉴욕에서 설명회도 열고, 증권신고서도 준비하는 등 실무적으로 움직였다. 검찰이 파악하고 있는 내용은 사실관계 자체가 틀렸으며, 이를 범죄로 의율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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