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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짬뽕이 1000원인데 국물은 3000원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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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1-03-18 04:59
수정 2021-03-18 20:24

짬뽕 국물. 클립아트코리아

요즘은 거의 없는 듯한데, 한때 술자리를 상징하는 이런 말이 유행했다. 이국적이면서 염가인. 오늘 값싸게 알코올에 좀 젖어보자. 뭐 이런 뜻의.

“짬뽕 국물에 소주나 한잔할까.”

중국집이 대중식사를 주로 파는 밥집이 되고 말았을 무렵, 저녁에 요리를 팔기가 힘들어졌다. 난자완스도, 짜춘결도, 유산슬, 해삼주스도 아는 사람이 드물어졌던 때의 일이다. 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어떤 주방장이 이런 생각을 해냈다. 다음과 같은 순서였다.

‘한국인은 술을 좋아한다―중국집 요리에 술 마시는 것도 당연히 좋아한다. 그러나 좀 비싸고 기름지다―얼큰한 국물 안주를 사랑한다…. 중국요리에는 그런 맵고 저렴하며 친숙한 국물 안주가 없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무릎을 팍 치는 주방장이 있었다. 짬뽕 국물을 팔자! 안 그래도 중국요리에 서비스로 짬뽕 국물을 내주는 중국집이 있었다. 한국에서 국물은 서비스니까. 그러니까 중국요리를 망쳤다고 지탄받는 군만두 서비스 유행 전에 이미 짬뽕 국물 서비스가 있었던 것이다.

내가 군대나 겨우 갔다 왔을 나이, 1980년대 후반은 안주의 춘추전국시대였다. 삼겹살이 술안주 세계에 등장한 지 10년차쯤 되었을 때인데, 당시 이미 최강자로 올라섰었다. 전통의 학사주점은 쇠퇴 기운을 보였다. 치킨이 ‘조끼’ 생맥주와 짝을 이뤄 음주계의 신성으로 기름지게 반짝였다. 여담이지만, 그때 치킨집에서 아재답게 가오 잡는 법은 이랬다.

“촌스럽게 무슨 생맥주냐. 아줌마 여기 두꺼비!”

치킨집 주인장 입장에서 소주 시키는 손님은 좀 진상이었다. 생맥주 한 조끼와 소주 한 병 값은 같은데, 술값 총액이 차이가 났다. 도수가 다르니까. 생맥주는 ‘마른논에 물 대기’ 급의 손님이라면 열 잔, 스무 잔(1만㏄)도 거뜬했는데, 소주는 아무리 마셔봐야 세 병을 넘기기 힘들었다. 매출 차이가 존재하니 주인이 별로 좋아하지 않았을 수밖에. 그때 소주 시키는 아재들의 변명은 대체로 두 가지로 압축되었다. 하나는 생맥주는 싱겁다(물을 탄다고 소곤거렸다), 다른 하나는 취하기 전에 배가 불러서 글렀다는 주장이었다. 그 시절, 생맥주 대신 소주를 ‘크라스’에 따른 후 치킨 ‘퍽퍽살’을 소금 찍어서 호기롭게 마시던 아재들이 기억난다. 얼근해지면 저렴하게 그 자리에서 2차를 때우기도 했다.

“야, 생맥주 한 잔씩 시켜서 입가심하고 가자.”

입가심이란 ‘숭늉’스러운 낱말의 성인용 버전을 거기서 처음 들었다.

다시 짬뽕 국물로 가자. 원래 서비스이던 짬뽕 국물을 팔자면 ‘업글’이 필요했다. 오징어와 홍합 몇개 띄워주던 국물과 정식 판매용은 달라야 했으니까. 맛보기 데모 버전과 정식 유료 버전의 차이 같은 것이었다. 우선 갑오징어가 들어갔다. 옛날, 우리가 먹던 살오징어(보통 오징어)는 워낙 싸고 흔해서 귀한 줄 몰랐다. 갑오징어 정도 되어야 유세를 부릴 수 있었다. 낙지를 넣기도 했고, 봄에는 주꾸미도 썼다. 다, 해물이 엄청 싸던 옛이야기다. 새우는 그 당시에 비싸서 그리 넣지 않았다. 동남아에서 양식 새우가 들어오기 전이었다. 돼지고기를 가늘게 썰어서 볶고 버섯이며 채소, 간혹 자투리 해삼과 채소를 듬뿍 넣어 육수를 부어내는 짬뽕 국물. 멜라민 그릇에 사람 수만큼 숟가락을 푹 꽂아서 내주던 전설의 저렴한 중화풍 국물 요리인 짬뽕 국물. 숟가락으로 침을 섞어가며 먹다가, 취하면 얼큰한 국물이 훅 당기게 되고, 이때는 누군가 먼저 그릇을 들어서 꿀꺽꿀꺽 마시기도 했다. 국물과 함께 건더기가 흐름 따라 유체역학적으로 입안으로 쓸려 들어가게 마련인데, 그 정도를 넘어서 입술과 혀를 사용하여 흡입을 과도하게 시도하는 녀석들이 있곤 했다. 미처 흡입되지 못한 낙지 다리와 양파 건더기 따위가 입가에서 주춤거렸다. 벌건 고추기름에 입술은 번들거렸다. 참 꼴불견이 아닌가. 당시 불문율이었던, ‘냉삼’(냉동삼겹살) 먹을 때 두 점을 한꺼번에 먹는 행위와 함께 지탄받는 최악의 안줏발이었다. 그런 놈은 즉석에서 응징하기도 했다.

“야, 넌 앞으로 다꽝이랑 양파만 먹어, 새꺄!”

그 자리에 장차 요리사가 되어 장안의 양식 술집을 휩쓸게 되는 박아무개가 있었다. 그는 일찍이 ‘돈가스는 2000원인데 돈가스 안주는 5000원, 짬뽕은 1000원인데 짬뽕 국물 안주는 3000원이 되는 현상’에 대해 심오한 고민을 시작했다. 밥값은 500원만 올라도 초민감한데도, 술안주에는 관대한 한국인의 특성을 진즉 간파했다. 안주는 왕이다. 그런 깨달음. 절대로 밥 대신 술을 팔아야 먹고살 수 있다는 ‘현타’(현실자각타임)가 온 것이었다.

짬뽕 국물에 곁들이는 술은 늘 파란색의 두꺼비였지만(그 무렵의 진로 디자인이 요새 복고풍으로 다시 나온다), 그 아성을 허물기 위해 야심 차게 출시된 동해백주란 술이 있었다. “사나이 가슴에 불을 당긴다!” 이 멋진 카피와 함께 사나이들의 야성을 일깨우는 30도짜리였다. 백주란 배갈이란 뜻이었으니, 꽤 독했다. 돈이 없어 오직 짬뽕 국물 한 그릇에 백주나 소주 여러 병을 마시고 오바이트를 할 때도 우린 불문율을 지켰다. 이를 악물어서 건더기 유출은 방지한다! 압력에 의한 노즐의 분수 효과를 그때 배운 이공계들도 있었다. 아아, 유체역학을 몸으로 실험하던 시절이여.

박찬일(요리사 겸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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