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새콤달콤한 수영풀 언제까지나 함께하기를

등록 2021-05-01 09:56
수정 2021-05-01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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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당 일기 21: 수영

수영바게트

봄의 걸음걸이가 빨라졌다. 올핸 봄꽃들도 거의 한꺼번에 후다닥 피어버렸다. 마을을 가로질러 흐르는 개울 옆 둑길의 벚나무들도 다른 해보다 일찍 꽃을 피웠다. 벚꽃 소식을 들은 도심에 사는 시인 후배가 꽃들의 향연을 보고 싶다며 불편당으로 놀러 왔다. 감염병으로 혼자 지내던 나는 모처럼 놀러 온 후배를 반갑게 맞이하여 벚꽃 만개한 둑길을 함께 걸었다.

호기심 많은 후배는 둑길을 걷다 낯선 식물들을 만나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식물 공부 삼매경에 빠져 지내는 나는 내가 아는 만큼 그 식물의 이름이며 생태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일러주었다. 마을의 자랑인 녹색농촌체험관을 둘러보고 그 부근의 밭 옆을 지나는데, 후배가 밭두렁에 피어난 한 식물을 손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저건 뭐냐고?

“아, 그건 수영이란 풀이야!”

나는 이름을 알려주며 수영 한 잎을 뜯어주며 먹어보라고 건네주었다. 푸른 잎 하나를 씹어본 후배가 환한 표정을 지었다.

“엄청 새콤하네……맛이 매혹적인데요.”

“어릴 적에 난 많이 뜯어 먹었는데, 요즘도 이 새콤한 맛이 땡기면 뜯어다 요리를 해 먹곤 하지.”

“아, 그래요? 좀 뜯어가도 되죠?”

요리를 좋아하는 후배는 샐러드를 만들어 보겠다며 수영을 뜯기 시작했다. 먹을 만큼 수영을 뜯고 난 후배가 말했다.

“제가 박완서 작가를 좋아해 지난해 소설 한 편을 읽었는데, 그 소설에 시큼한 풀 얘기가 나오더라구요. 싱아라고!”

“그래. 맞아. 어렴풋한 내 기억으론, 그 소설에 나오는 싱아는 이 수영의 사촌쯤 된다네. 하지만 우리 마을엔 싱아가 자라질 않아.”

긴 산책을 마치고 후배 시인을 배웅한 후 집으로 돌아온 나는 서가에서 박완서의 소설을 찾아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오래전에 읽었던 소설을 한참 뒤적이다 보니, 싱아와 관련된 대목에 밑줄이 쳐져 있었다. 작가는 어린 시절 서울의 친구들과 아카시아 꽃을 따먹고 헛구역질이 났는데, 그때 문득 시골 고향에 살 때 먹었던 새콤한 싱아가 떠올랐다. 헛구역질이 날 때 싱아 잎을 뜯어먹으면 헛구역질이 멎곤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주위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싱아를 찾아볼 수 없자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고 중얼거린다.

수영샐러드

수영과 싱아, 이 둘 사이는 사촌쯤 된다고 했는데, 잎과 줄기에서 신맛이 나는 공통점 때문이다. 신맛이 나는 식물들은 대체로 옥살산을 함유하고 있다. 옥살산은 해충이나 병균으로부터 식물이 제 몸을 보호하기 위한 성분으로 적당한 산미(酸味)를 머금고 있어 씹으면 금방 침이 고인다. 내 어릴 적 먹을 것이 부족한 시골 아이들은 학교를 오가는 길에 피어 있던 수영 잎을 간식 대용으로 맛있게 뜯어 먹곤 했다.

그런데 싱아와 수영은 그 생긴 모양이 다르다. 싱아는 키가 100cm 이상 자라는 데 비해 수영은 대개 30〜50cm 정도이고 땅이 비옥한 곳에서는 80cm까지 자라는 경우도 드물게 있다. 또 싱아는 6〜8월에 흰색 꽃이 피지만, 수영은 5〜6월에 홍록색 꽃이 핀다.

지금 내가 사는 원주 지역에는 싱아를 찾아볼 수 없지만, 수영은 산과 들에 지천으로 널려 있다. 여러해살이 풀인 수영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데, 괴싱아, 산시금치, 산모라고도 한다. 강원도 영월 토박이인 우리 어머니는 시금초라고 불렀다. 수영은 이른 봄 굵은 뿌리에서 긴 잎자루를 지닌 잎이 돋아나와 둥글게 땅을 덮는다. 어린잎은 홍자색을 띠며 장타원형으로 길이는 3〜6cm, 폭은 1〜2cm이다. 아랫부분의 잎은 잎자루가 있으나 위로 갈수록 없어지면서 원줄기를 감싼다. 다 자란 잎은 짙은 녹색이다.

수영은 다른 식물들과 달리 암수딴그루[雌雄異株]이다. 대부분의 식물들은 한 그루에 암수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데, 수영은 수술 그루와 암술 그루가 따로 있다. 일본의 한 연구자에 의하면 놀랍게도 수영은 인간처럼 XY형의 염색체를 갖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난 암수딴그루의 수영을 보면 사람과 비교하게 되고 자연스레 이런 의문이 들곤 했다. 인간세계에서 남자와 여자는 영원히 서로를 알 수 없다고 말하는데, 수영의 암수는 서로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이나가키 히데히로, 『잡초 캐릭터 도감』 참조)

수영의 열매는 7〜8월쯤에 익는데 둥글고 납작하게 생겼으며 줄기 끝에 주렁주렁 달린다. 수영은 열매의 모양이 특이한데, 가지 끝의 가장자리는 분홍색이고 안쪽은 녹색인 둥글둥글하면서도 납작한 열매가 수없이 달려 바람에 대롱거리는 모습이 매우 이채롭다. 꽃에는 꿀이 많아 양봉업자들이 좋아하는 식물이기도 하다.

수영풀

수영은 우리 조상들이 오래전부터 약초로 이용해 왔다. 『약용식물사전』을 보면 “신선한 뿌리와 줄기는 짓찧어 즙을 내어 옴에 바르면 효과가 있고, 꽃을 따서 말려서 달여 마시면 위장이 튼튼해지고 열을 내리며, 생즙을 내어 바르면 상처 난 곳의 피를 멎게 하는 데에도 효과가 있다.”고 하였다.

우리나라 어디에나 흔하고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 이 풀이 위궤양, 위하수, 소화불량 등을 치료하고 위장을 강화하는 놀랄 만한 약효가 있다는 것이 한 민간의학자에 의해 밝혀진 바 있다. 『신약』(神藥)이란 저서로 유명한 인산 김일훈 선생은 수영으로 위장병을 치료한 경험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인산 선생이 어느 깊은 산골에서 약초를 캐며 지낼 때,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 중에는 위궤양, 소화불량, 위하수 등 위장병 환자들이 많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병을 앓는 환자들이 사는 곳에 그 병을 쉽게 고칠 수 있는 약초가 널려 있는 것이었다. 바로 수영이었다. 인산 선생은 그들에게 수영을 뜯어다가 푹 삶은 뒤 엿기름을 넣어 삭힌 다음 찌꺼기는 짜서 버리고 감주를 만들어 복용하라고 일러주었다. 이런 처방을 따른 이들은 놀랍게도 모두 위장병에서 치유되었다는 것이다.

꽃핀 수영초

이런 자료를 접한 뒤 우리 가족은 봄철이면 수영을 뜯어 각종 요리를 해 먹는다. 다만 요리할 때 주의할 것은 신맛이 강한 수영에는 옥살산 성분이 많이 들어 있으므로 익히지 않고 날것으로 먹는 것이 좋다. 옥살산 성분이 든 식물을 익혀서 먹으면 우리 몸에 담석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가족이 많이 해 먹는 요리는 날것의 잎으로 하는 수영 무침이다. 잎을 뜯어다가 식초 물에 담가 살균을 한 후 쪽파나 마늘을 넣은 된장 소스를 만들어 무쳐 먹으면 된다.

아주 간편한 요리는 수영 샐러드다. 수영은 신맛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잘 익은 홍시를 넣고 샐러드를 만드는데, 신맛을 싫어하는 이들도 거부감 없이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우리 가족은 또한 인산 선생의 레시피를 따라 봄이면 감주를 자주 담가서 먹는다.

사실 수영은 우리나라보다는 유럽이나 미국 사람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갖는 풀이다. 그들은 수영을 관상식물로 정원에 심어 가꿀 뿐만 아니라 고혈압이나 당뇨병, 만성위장병 등의 성인병에 좋다고 하여 생즙을 내어 마시기도 한다고 한다. 우리 집에서도 봄철에 종종 수영 주스를 만들어 먹는다. 수영을 깨끗이 씻은 후 꿀이나 설탕을 같이 넣고 믹서기로 갈아서 마시면 몸의 피로가 싹 풀려버린다. 온몸이 나른해지는 춘곤증도 사라진다.

수영쥬스

후배 시인이 다녀간 지 열흘쯤 지났을까. 우리 집 셰프가 수영 요리를 해 먹겠다며 두세 움큼만 뜯어다 달라고 했다. 난 곧 산책길에 봐둔 수영 군락지로 바구니를 들고 갔다. 마을의 야산 밑에 있는 공터였는데, 아무도 뜯어가지 않아 수영이 촘촘히 모여 자라고 있었다.

그런데 이럴 수가! 며칠 새 쑥 자란 수영이 꽃대를 뽑아 올리고 꽃들이 활짝 피어 있었다. 5월 초순이나 되어야 피기 시작하는 꽃들이 4월 중순에 만개해 있었던 것. 올해 들어 유난한 봄꽃들의 잰걸음의 대열에는 수영 꽃들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 지구 온난화로 기후 위기에 대한 얘기가 지속적으로 들려오고 있지만, 기후 변화가 정말 심상치 않은 것 같다. 홍색과 녹색이 섞인 홍록색 꽃들은 탄성을 지를 만큼 예뻤지만, 너무 이른 개화를 보며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난 문득 한 생태 시인의 시가 떠올랐다.

아침잠을 깨우는 수다스런 새들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있기를.

언덕에 핀 못 생긴 끈적끈적한 꽈리꽃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있기를.

일찍부터 웃자란 맛이 쓴 상추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있기를

―다이앤 디 프리마,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있기를> 부분

난 조금 늦게 돋아나 아직 꽃을 피우지 않은 수영 잎들을 먹을 만큼 뜯어 돌아오며 하늘을 향해 빌고 또 빌었다. 새콤달콤한 맛으로 매혹하는 수영,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있기를!

글 고진하 목사 시인

***이 시리즈는 대우재단 대우꿈동산과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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