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일 경북 문경 폐채석장에서 예수처럼 십자가에 못박혀 숨진 50대 남성 김아무개씨 사건에 대한 의문이 꼬리를 물고 있다.
일단 경찰은 자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김씨가 십자가에 매달린 채 발견됐지만 여러 정황으로 봤을 때 스스로 해낼 수 있는 수준의 자살방법이라는 것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김씨의 오른쪽 옆구리에서 발견된 자창 흔적(날카로운 것 등으로 찔린 흔적)이 각도와 방향으로 봤을 때 김씨 스스로 낸 상처일 가능성이 크다는 1차 소견을 경찰에 보냈다.
경찰이 4일 오전 설명한 수사내용을 종합하면, 김씨가 사용한 못은 보통의 ‘못대가리가 있는 못’과 ‘못대가리가 없는 송곳 같은 못’(무두못) 두 종류다. 김씨의 발에는 일반 못이 사용됐고 손에는 무두못이 사용됐다. 김씨는 먼저 자신의 발등에 일반 못을 박아 십자가에 고정시켰다. 그다음 전동 드릴을 이용해 자신의 손에 미리 구멍을 내어놓은 뒤 십자가에 박아둔 무두못에 손을 끼워넣었다는 것이다. 두 팔은 붕대 따위를 이용해 십자가에 걸었다.
현장에서 발견된 십자가 설계도면과 십자가에 매달리는 법 등이 적힌 메모지 글씨 등도 김씨 자필인 것으로 김씨 가족이 확인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그러나 경찰은 이러한 끔찍한 자살 방식 때문에 타살, 자살 방조 가능성 등 여러 경우의 수를 두고 사망 경위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있다.
김씨는 숨지기 직전까지 종교에 심취해 있었다고 한다. 경찰은 지난 4월 초 김씨가 자신의 동생을 만나 “‘교회에 꼭 나가라, 하늘나라에 가면 편히 살 수 있다’는 등의 말을 했다”고 전했다. 또 경찰은 김씨가 숨진 문경의 폐채석장이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골고다 언덕과 유사한 느낌을 주는 것에 주목해 이번 사건과의 관련성을 분석하고 있다. 경찰은 김씨가 부활절인 지난 24일 전후로 문경에 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편, 경찰은 김씨를 최초로 발견한 주아무개(53)씨가 종교 관련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는 점을 주시해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주씨는 “주검을 발견하고 보니 몇 년 전에 나와 만난 적 있던 김씨였고, 그는 지난 1월에도 내가 운영중인 인터넷 카페를 방문했었다”고 경찰에 진술한 바 있다.
“기독교 교리와는 아무 관련 없는 불행한 일”

이번 사건이 알려지자 기독교계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자살의 형태 자체가 워낙 괴이해 이번 일로 기독교에 대한 일반인의 시선이 또 한번 왜곡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교계에서는 이번 ‘십자가 사건’이 기독교 가르침과는 아무 관련 없는 행위라고 설명한다.
손봉호 고신대 석좌교수는 “시대착오적인 열광주의자의 행위처럼 보이는데 예수의 죽음을 흉내내는 것은 사람이 할 일이 아니다”라며 “이번 일로 기독교가 또 많은 비판을 받을까 염려스럽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그러나 “너무 수준 낮은 광신행위들이 교계 안에서 정화되지 않는 것은 한국 기독교의 큰 문제다”라며 교계 내부의 개선노력도 필요하다는 견해를 보였다.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는 “일부 광신적 신도들에게서 십자가를 주술적 능력이 붙은 것으로 보는 물신숭배적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오히려 예수의 십자가 정신을 우스꽝스러운 조롱대상으로 만들게 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십자가는 자기 비움, 자기 희생, 자신을 낮춰 타인을 높이는 등 사랑실천의 상징이었다”고 덧붙였다.
남오성 교회개혁실천연대 사무국장은 “예수의 ‘십자가 정신’을 재현하며 살아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것을 물리적으로 똑같이 재현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희생해 타인에게 도움을 주는 방식으로 실현해야 하는 것”이라며 “이번 ‘십자가 사건’은 기독교 교리와는 아무 관련 없는 불행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름을 밝히기 원하지 않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소속의 한 목사는 “(십자가 사건은) 종교의 본질도 아니고 일반 기독교인의 상식으로도 어긋나는 일”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대구/박주희, 허재현 기자catalunia@hani.co.kr